정통성의 마약을 복용하고 제 정신을 못 차리던 김영삼 정부 이래 약 15년 동안 그렇게도 줄기차게 식자연하고 애국자연하는 무리들이 박정희를 욕하고 저주하고 뭇매를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심인 민심은 변함없이 ‘대통령은 박정희, 박정희는 대통령’이란 공식을 애오라지 간직하고 있다. 2위를 차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기는 허수일 가능성이 높다. 길어야 5년 안에 골수팬들이 어쩔 수 없이 환상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의 인기는 전두환 전 대통령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 때는 아마 박정희에 대한 평판은 90%로 치솟을 것이다.
민주와 평화란 블루칩을 들고 명예와 권력과 부를 한꺼번에 차지한 자들은 하나같이 박정희라면 이를 간다. 출발도 X, 중간도 X, 마지막도 X, 딱 하나 암살된 것만 0! 이들에 의하면 출발이 잘못되었으니 모든 게 X다. 그 출발은 바로 정통성의 결여이다. 이들에 따르면 ‘박정희 아니라도 누구든 할 수 있었던’ 경제개발조차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생겨난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친일파 출신으로 민주주의를 짓밟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못지않은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콤플렉스가 큰 만큼 경제개발에 더욱 매달렸고 그런 무리수를 두는 과정에서 독재를 더욱 강화하고 정경유착으로 재벌위주의 모래성 경제구조를 구축했다고 한다. 외환위기도 따지고 보면 박정희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리산이나 계룡산에서 태어나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조선이 망한 지 100년이 되도록 임금님께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조상님께 제사 드리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서 후천개벽을 꿈꾸는 자들과 반(反) 박정희파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미륵불을 자처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다 꿰뚫어본다던 궁예와도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박정희는 정통성 콤플렉스가 없었다. 스스로 불행한 군인이라고 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정통성 콤플렉스를 에둘러 표현한 말이 아니다. 안정된 나라에서 군인의 길을 끝까지 걷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는 국가와 개인 중에 국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열 번 스무 번 같은 기회가 왔더라도 그는 그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그가 문경보통학교 교사 시절에 소풍 가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학생을 보고 다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에 서슴없이 뛰어들어 그 아이를 구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들 내 소관이 아니라며, 내 목숨이 아깝다며, 내 수영실력이 보잘것없다며, 멀뚱멀뚱 쳐다보거나 끌끌 혀만 차는 것을 보고, 평소에 익힌 수영실력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그 아이를 구했던 것이나, 망할 게 뻔했던, 민주란 허울로 무법천지가 된 나라를 위해 평소에 닦아 두었던 지도력과 과학기술에 대한 안목과 임란 이후 300년의 뼈저린 한민족의 가난을 물리칠 방법은 조국 근대화밖에 없다는 확신으로 뚜벅뚜벅 한강대교를 건넌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박정희는 오히려 민주투사를 자처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멸했다. 민주의 가면을 쓰고 민주가 뭔지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사탕발림과 거짓으로 국민들을 선동하여 표를 긁어모아 권력을 잡은 후에 명예와 부마저 걸머쥐려는 자들을 경멸했다. 그들을 정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철없는 청년이나 한심한 어른으로 보았다. 언젠가는 그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알고 산업화를 이해하고 공산주의의 허구를 깨닫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국민이나 야당이나 학자나 언론인에게 민주주의에 대해서 설교하길 주저하지 않았으며 한편으로는 천심인 민심을 가슴속에 간직한 국민을 존중하여 선거를 거르지 않았다. 야당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적이 없다. 아무리 국내외에서 야당 인사들이 험담을 해도 고문을 한 적은 있고 가택 연금한 적은 있었지만, 단 한 명도 죽인 적이 없다.
2차대전 이후 100여개 개도국 중에 박정희만큼 비판자에게 너그러웠던 지도자가 없었다. 그들을 조선시대의 당쟁에 여념이 없던 양반들이나 무조건 반항하는 사춘기 청소년으로 보았기 때문에, 상대가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훈계하거나 훈방하거나 침묵했지, 비행기에 실어 태평양에 떨어뜨린다든지 쥐도 새도 모르게 영원히 실종시킨다든지 하는 짓은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아서도 할 수가 없었다.
박정희는 정통성 콤플렉스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정통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었다. 박정희에겐 조국근대화가 곧 정통성이었다. 농업사회를 산업사회로 바꾸고 봉건주의를 민주주의와 과학적 합리주의로 바꾸고, 명분사회를 실리사회로 바꾸고,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을 달성하는 조국근대화야말로 박정희는 정통성이라고 보았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유행가 가사인 이 말로써 박정희는 자신이 죽고 나서도 철들지 않은 자들이 있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무덤에 침을 뱉으려면 뱉어라, 단 그렇게 하면 민심의 돌팔매질을 받을 것이다, 라는 강한 자부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정통성이 뭔지 알려면 제대로 알아라, 나는 죽어서도 너희들이 철들 때까지 지켜보겠다, 끝내 철들지 않은 자들은 언젠가 민심의 바다가 일으키는 거센 파도에 통통배를 타고 가다가 일제히 물에 빠질 것이다, 라는 강한 자부심을 은연중에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