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산림 수탈[편집]
일본은 식민지 지배를 위한 재정을 마련하고 일본인의 토지 수탈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1912년부터 시행된 토지조사사업을 진행하면서 기한부 신고제로 시행, 이를 잘 알지 못한 농민들의 토지를 침탈하였고, 소유권이 불분명한 마을이나 문중의 토지, 정부와 왕실의 토지 등도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겼다. 침탈된 토지는 일본 이민자들에게 싼 값에 팔렸고 이 때에 종래의 관습적 경작권인 도지권 개념이 무시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외에도 조선총독부의 허가에 의해서만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는 회사령이 공포되었는데 이것은 민족 자본의 성장을 억제하여 결국 일본 기업이 대부분의 중요산업을 독과점하고, 일부 한국인이 정미과 피혁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조선총독부 농림국은 산림령과 임야 조사령, 어업령, 광업령 등을 발표했으며 자원 개발이나 회사 설립 인허가 등을 일본인들에게 유리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자본을 유출시키고, 경제적 지배권은 대부분 일본인에게 넘어가 한국을 원료 공급지와 상품 시장으로 전환시키려고 하였다. 담배과 인삼, 소금의 전매제를 실시하여 식민지 재정 수입 증대를 꾀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신작로와 간선 철도, 항만 시설을 정비하여 한국의 식량과 원료를 일본으로의 수송 편의를 돕고, 일본 상품의 한국 판매를 효율화하였다. 한편 1920년 17만여 명이던 일본인 거주자들의 숫자는 불어나서 1940년에는 70만 명에 이르렀다.
일부 한국인 지주도 생산성 향상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삼성 그룹의 창립자인 이병철이다. 그는 경남 지주의 차남으로 태어나 일제에 쌀의 유통으로 얻은 거액의 자금을 밑천으로 1938년에 대구에서 삼성 상사를 설립하였던 것이 오늘날 삼성의 시초이다.[5]
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C%A0%9C_%EA%B0%95%EC%A0%90%EA%B8%B0#%ED%86%A0%EC%A7%80,_%EC%82%B0%EB%A6%BC_%EC%88%98%ED%83%88
아놔 수탈기록이 17만건~
개 시바 쪽바리싱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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