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1일 북한이 핵무장의 명분으로 내세워온 '안보위협론'에 대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대단히 과장된 것"이라고 밝힌 것은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북핵문제에 대한 상황인식과 접근법의 근본적 변화를 압축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노 대통령은 취임후 보수층을 비롯한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북핵해법을 놓고 그동안 북한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일방적인 대북 제재와 압력기조를 설득시키는 데 쉼없는 노력을 경주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이른바 'LA 발언'은 북핵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인식과 해법을 담은 결정판이었다.
노 대통령은 당시 "핵무기가 자위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말했고, 이 같은 인식은 6자 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법의 기조로 작동해온 게 사실이다.
LA 발언은 당시 비등점에 다다랐던 미국내 대북 강경론을 겨냥한 메시지였지만, 동시에 북한은 핵무기 등 일체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미국은 그 조건으로 북한 체제 인정과 경제지원을 하는 것이 북핵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는 한국 정부의 뜻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었다.
때문에 노 대통령이 이날 민주평통 해외자문위원 초청 간담회에서 "북한이 말하는 안보의 위협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대단히 과장된 것"이라고 말한 것은 당시 LA 발언과는 다른 입지에 서 있는 것으로 북핵실험후 인식의 변화를 상징하는 언급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안보위협 과장론'은 "미국의 반공화국 고립 압살책동에 대한 억지력 확보를 위해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북한 핵무장론의 근거와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나아가 "지나친 무장력은 평화의 질서를 해치고, 주변국의 신뢰를 해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북한의 핵무장이 북한의 주장대로 체제를 보호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안보를 위협하는 '족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북한정권은 무장력만으로 안보를 말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평화적 행동, 신뢰있는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안보를 기해 나가는 방향으로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핵무장 정책 방침의 대전환을 촉구했다.
북한의 핵무장론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자, 대북 포용정책의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노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제반 상황이 바뀐 데 따른 불가피한 대응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지난 9일 북한핵실험 발표 후 특별기자회견에서도 "지난날처럼 모든 것을 인내하고 양보하고 북한이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다 수용하고, 이제는 이렇게 해나갈 수 없게 된 것 아닌가"라며 기존과는 다른 대북정책을 펼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우리가 그토록 노력해서 대화와 평화적 해결 방향으로 북핵 해결의 모멘텀을 잡아왔는데, 북한이 두 차례에 걸쳐 국제사회의 노력과 전혀 반대 방향으로 나옴에 따라 북한에 분명히 촉구할 것을 촉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해 2월 핵보유 선언에 이어 이번 핵실험 강행으로 일관되게 유지해오던 대화.설득 노력에 역행했고, 상황변경이 생김에 따라 노 대통령으로선 앞으로 북한의 처지를 마냥 포용하고, 이해하는 입장을 취할 수는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 핵실험 직후 노 대통령이 후속 대응조치로 밝힌 '전략적으로 조율된 조치'에는 대화 노력과 함께 제제와 압력 등 강경책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 도발에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데 이어 북핵에 관한 시각에 변화가 온 만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조율 결과가 향후 대북 대응 방향에 중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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