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의 한국학 내게는 눈물의 한국학으로 다가오는구나...
꿩이 로이드형 색안경을 착용을 한다면???? 왜일까?
앞을 못보게 하여 야성을 죽이기 위함이니 우리 선조들은 매에게 안경을 씌어 맹조로 만들었다.
조정에서는 웅방을 두고 웅장에게 매를 훈련시키게 하였는데 매에게 사냥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가 받은
교육과 별반 다를것이 없더라~~!!
야성의 매는 회초리에 의한 체벌에 의해 웅장에게 복종하게 되고 이어서는 눈에 검정 안경이 착용되어 앞
을 보지못하고 조롱에 몇달간 감금되나 조롱에서 풀려나면 다시금 야성의 매처럼 횡포해 지는데....
이때 부터가 중요하다!!! 체벌은 없이 대화를 통해 매를 교육하는것이다. 이것은 속박을 받았던 시절의
세뇌되고 체질화된 습관들이 웅장의 말에 의해서 원초적 신경을 자극하여 나오는 판단이 생긴다는 것이
다. 예전에 삼청교육대라는 순화교육이란 것과 비슷한 원리일 것이다.
좌전의 저자 좌구명은 " 중년에 장님이 되지 않았던들 좌전은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오"라 했는데 이것은
안경의 시기에 대해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년에 실명한 사르트르도 "너무 늦게 실명해 큰 수
확을 놓쳤다"고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그 뜻이 어디에 있겠소?
교육에는 매의 안경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과하면 자신의 판단이라 여기는것 조차도 자신의 것이 아닌 조
련사의 것이니 조화란게 어렵다는 뜻이오. 남의 말과 글을 접할 때 자신이 그정도의 스키마가 없다면 굴복
당할 것이오.
요즘 나에게 질문을 던져 보는데 " 왜 일까? 왜 일까? 왜 왜 왜 왜 왜?"
원인과 결과라는 사실속에서 진실이 아닌 사실로써의 접근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소?
원인도 그 과정속에서의 결과로써 내부적으로 해결해야지 문제가 단순화 되고 명료화 되는 것이오.
결과를 놓고 해결하려하니 하나의 원인이라는 결과가 오히려 두개 세개의 원인이라는 결과를 만드는 것
이오. 어쩌면 조롱에서 평생 검정 안경을 쓰고 있어서 이조차 가능할지 모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