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자동차가 사상 최고의 수출실적을 기록하며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먼 것으로 나타났다. 품질의 바로미터인 중고차 값에서 아직도 세계적인 수준에 한참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KOTRA 디트로이트 무역관이 8일 입수한 미국 전문조사기관인 ‘오토모티브 리스 가이드’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 판매중인 세계 20개 자동차 브랜드 중 현대·기아차의 중고차 수준은 11위와 19위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는 출고된 지 3년 된 중고차의 신차 대비 잔존가치율(중고차의 현재가치)을 파악한 것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판매된 주요 자동차 브랜드의 중고차 잔존가치율은 평균 44.5%였다. 그러나 현대차는 42.9%로 평균에 못 미쳤고 기아차는 38.1%로 거의 꼴찌 수준이다.
국산차는 미국 현지에서 출고된 지 3년이 지나면 거의 3분의 1로 값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우리의 경쟁상대인 일본차에 비해 같은 차령(車齡)이라도 80% 수준밖에 받지 못하는 셈이다.
잔존가치율이 높은 차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혼다와 도요타, 폭스바겐, 스바루, 닛산 순으로 일본차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미국 소비자들은 자동차를 구입할 때 ‘리세일 밸류’(resale value)인 중고차 가격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이는 내구성 품질을 좌우하는 지표이자 가장 중요한 구매 결정 요소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중고차 값은 해당 브랜드의 품질 및 가격경쟁력과 직결된다. 중고차 시장이 활성화돼 있는 미국에서는 중고차 값을 제대로 받아야 신차 역시 제값을 받을 수 있다.
국산차는 대당 평균 수출가격이 최근 5년 사이 40% 가량 올라 신차 시장에서는 제값을 받고 있다.
2000년 7,386달러이던 수출가격이 지난해 1만3백53달러로 높아져 ‘국산차는 싸구려’라는 인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그러나 자동차의 품질을 결정하는 중고차 시장에서는 여전히 푸대접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현대·기아차의 잔존가치가 지난해 조사와 비교할 때 각각 3%와 2.1% 높아진 것으로 파악돼 미국 시장의 평가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트로이트 무역관 엄성필 관장은 “차량의 품질뿐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이 차량 잔존가치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상위 브랜드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브랜드 마케팅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와 비교해 잔존가치율이 크게 오른 차는 머큐리(5.6%), 폰티악(5.2%)이었다. 반면 재규어(-6.7%)는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박경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