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검찰청에 근무할 때의 사건이다.
20년이 더 지난 사건이지만 교통사고 관련 강의에서
이 사건의 조사과정을 사례로 몇번 사용한 적이 있어 사건의 흐름은 대체로 정확하다.
지금은 도로가 상당히 개선되어 예전의 커브길은 짜투리 흔적만 남아 있으나
울산 범서 선바위 방면에서 경주 봉계 방면으로 오르막으로 올라가는 길은 급커브가 많아서
운전에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 도로이다.
하루는 검사가 “계장님 이 사건 조사해 보세요”라고 하면서
도시락 2개를 포개 놓은 두께의 기록을 건네주었다.
교통사고 진정사건
봉계 방면에서 울산 방면으로 내려오던 소나타 승용차가 급 커브길에 커브를 타지 못하고
그대로 진행하여 마침 오르막을 올라가는 25톤 화물차량의 운전석 바퀴부분을 들이받았고
그 충격으로 소나타 운전자가 사망한 것으로 송치된 사건이다.
소나타 차량에는 4명이 타고 봉계에서 식사를 하고 울산으로 오던 길이었다.
충격시점에 조수석에 탄 동승자는 안전벨트를 하고 있어 가벼운 뇌진탕을 입었고,
뒷좌석에 동승자 2명은 몸이 앞으로 쏠리긴 하였으나 뇌진탕을 입은 외에 별다른 외상이 없었으나
사망자가 후송될 때 119로 후송되어 가벼운 치료를 받았다.
운전자는 안전벨트를 하지 아니하여 충격으로 앞으로 튕겨나가 전면 유리에 머리를 충격하여
뇌진탕으로 사망에 이른 사건이었다.
교통사고 사건은 소나타 운전자의 과실로 발생하였으나 사망하였으므로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종결되었다가
유족들이 교통사고의 조사가 잘못되었다. 억울하다는 진정서를 제출한 사건이었다.
이 진정사건은 검사의 지휘를 받은 경찰의 조사를 거쳐 송치되었으나 송치이후에도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다가 검사 인사이동과 겹쳐 재배당의 재배당으로 3명의 검사를 거쳐
송치이후 3개월 만에 우리방 검사에게 배당되었고 본인이 조사를 맡게 된 것이다.
건네받은 기록의 왼쪽 윗부분에 ‘대검차장님’이라 적힌 노란색 점착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검찰의 넘버 2인 대검차장검사가 사건을 봐달라는 청탁을 받았거나,
사회적 이목을 집중 시킬만한 사건이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는 것인가
하지만 이사건은 사회적 이목을 끌 사건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검차장검사가 누군가로부터 사건을 잘 봐달라는 청탁을 받았고,
그래서 지청장(현재는 지검장) 또는 차장검사, 부장검사에게 ‘잘 챙켜보라’ 라는 식으로 압력을 가하였을 것이고 지시를 받은 말단검사는 수많은 사건 중에서 지시사항을 잊어버리지 않고자 ‘대검차장님’이라고 메모지를 붙여 놓은 것이리라
그랬거나 아니거나
누구의 관심사항이든, 청탁이든, 압력이든 간에
사람이 사망한 교통사고에서 사람보다 더 중요할 수 없으니
본인의 오로지 ‘눈푸른 납자’가 되어 진실만을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었다.
우선 경찰이 조사한 조서, 의견서, 현장약도, 사진 등 기록을 3, 4회에 걸쳐 정독하여 본다.
기록을 통한 선입감은 ‘내리막 커브길에서 소나타 운전자가 커브를 돌지 못하여 그대로 직진하였고
마침 올라오는 25톤 화물차량을 들이받은 것이 맞구나’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화물차량이 멈춘 위치가 뭔가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양차량이 충돌 후 그대로 운전 상태가 더 진행되어 20여미터 직진한 후 멈추어 있었던 것이다.
25톤 화물차량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커브길에 빠른 속도를 낼 수는 없을 것이어서
충격 즉시 멈추어야 정상인데 ‘아귀가 맞지 않는다’ 라는 느낌...
소나타 차량이 바퀴를 들이 받았다면 바퀴에 문제가 생겼을 것인데
‘충격 후 20미터나 계속 진행할 수 있나’ 라는 의심이 계속 맴돌았다.
기록 정독으로 모든 상황을 머리속에 그려 넣어 입력한 다음
토요일 퇴근 후 시간을 잡아서 사고차량과 같은 차종, 같은 배기량의 소나타를 빌려 현장검증을 해 보았다.
친구들을 불러
조수석에 1명, 뒷좌석에 2명을 태워
사고 당시 소나타 차량 무게 조건에 근접하게 맞추어 사고 현장으로 갔다.
경찰이 조사에서 특정한 그 속도에 맞추어 커브길을 운전해 보았다.
어라 !
이게 뭐야 !
첫 번째 운전에서 눈이 번쩍 뜨인다.
이도로는 커브길의 바깥쪽이 높도록 경사를 준 도로여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차량이
억지로 직진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차량은 약간의 조향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커브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이것 봐라’ 라는 전율이 왔다.
다시 그 속도보다 더 빠르게, 더 늦게 커브길을 운전해 본다.
같은 속도로 2회, 더 늦은 속도로 2회, 더 빠른 속도로 2회
총 6번을 운전하여 본 결과 소나타가 커브를 돌지 못하고 그대로 직진하여
올라오는 화물차량을 들이받았다는 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오히려 올라오는 화물차량이 사고지점의 아래쪽 커브를 돌아 올라오면서 중앙선을 침범하여 진행하다가
자기 차선으로 돌아가지 못한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커브를 타고 내려오는 소나타를 충격한,
즉,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것이 아닌가 ?
라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거기다가 화물차량이 제대로 운전한 것이라면 사건을 잘 봐달라는 청탁은 왜 ?
무언가 있다.
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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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 계속됩니다.
앞서 올린 '방화살인사건의 추억' 편도 못보신 분들을 위하여 다시 올리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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