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30개월 차인
1979. 10. 26. 박정희 저격사건 있었고,
제대특명 받은
1979. 12. 12. 전두환 구테타 사건이 있었습니다.
1980. 1. 17. 전역하였는데
전두환이 정권을 잡는 것을 막고자 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 나라 전역이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전역 4개월만에 5.18이 일어났고
다음날인 1980. 5. 19. 이때부터
광주는 폭도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는 신문 방송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며칠 지나자
광주에 독침사건이 일어났다.
불순분자들이 총기를 빼았아 어떻게 했다
~~~~ 라는 식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국민들은
광주는 폭도들에 의하여 무법천지가 되었다.
그래서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군이 투입되었으며 외부 불순세력의 개입을 막기 위하여
광주 전역을 봉쇄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송강호가 시위하는 걸 보면서 말한 것처럼
본인도 광주시민들을 비난하였습니다.
한편으로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어떻게 했다라는 식의
이야기도 있었으나 신문 방송에 그런 보도가 없으니 풍문인양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다 1980년 중반
우연한 기회에
천주교(정의실천 사제단 ?) 측에서 당시의 광주를 찍은 영상을 상영하는 것을 보게되었고
본인은 실로 상상하지 못할 장면들로 치를 떨면서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광주 실상을 조금이라고 알게되었습니다.
'택시 운전사'
지난 일요일에 영화 보았습니다.
당시 광주에서 직접 겪은 분들의 고통, 분노, 슬픔을
감히 함부로 이해하느니 어쩌니 할 수 없으나
감정 이입으로
집사람 몰래 몇번이나 눈물을 훔치면서 보았습니다.
우리는
발포명령자를 사형대에 세웠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발포 명령이 내렸다고 하지만
내 국민을 향하여 총을 쏘았던 그날의 군인들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네요.
좋은 영화인지, 아니면 잘만든 영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시대의 아팟던 과거를 돌이켜 다시금 생각케하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대구에서도 예매율이 상당히 높았으며(예매하지 않고 갔다가 1회자 밀려서 봄),
관객이 빈자리없이 꼭차는 것으로 볼 때
여전히 당시의 광주를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 대구 사람들에게
실상을 바로 보게하는 역활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3년부터 광주로 이사 가게 되면서 3년정도 살았습니다.
물론 5.18 당시 만큼의 급박한 상황은 아니였지만
어렸던 저에게는 너무 생생할 정도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살벌한 장면들이 떠오르네요
엄마와 함께 버스에 탓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생 형,누나 정도 되보이는
젊은 남녀들이 우르르 올라타고 곧이어 몽둥이를 든 군인들이 올라타서
남자들 몽둥이로 때리면서 질질 끌고가고 누나들 옷 잡아당기면서
옷은 다 찢어지고 속살 다 드러내는데도 어떤 군인은 일부러 가슴을 부여잡는놈도 있고
울 엄마는 나 끌어안고 군인들 보면서 내 아들입니다를 외치고 계셨죠
여튼 발포명령자는 꼭..
시민에게 조준사격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네요.
저당시 군인들에게 마약같은거 먹였다고하던데요 맹정신에 자국국민들을 어떻게 쏘겠어요
83년부터 광주로 이사 가게 되면서 3년정도 살았습니다.
물론 5.18 당시 만큼의 급박한 상황은 아니였지만
어렸던 저에게는 너무 생생할 정도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살벌한 장면들이 떠오르네요
엄마와 함께 버스에 탓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생 형,누나 정도 되보이는
젊은 남녀들이 우르르 올라타고 곧이어 몽둥이를 든 군인들이 올라타서
남자들 몽둥이로 때리면서 질질 끌고가고 누나들 옷 잡아당기면서
옷은 다 찢어지고 속살 다 드러내는데도 어떤 군인은 일부러 가슴을 부여잡는놈도 있고
울 엄마는 나 끌어안고 군인들 보면서 내 아들입니다를 외치고 계셨죠
중학교 시절 5.18때 찍은 비디오를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뒤로 몇날며칠을 잠을 못잤었죠. 잔인하게 갈기갈기 찢겨져 죽은 시신들의 비디오는 저로써는 어마어마한 충격이였습니다.
당시 선인재단부터 제물포역,박문로터리까진 늘 자욱한 최루탄연기로 가득했었고,동인천역 광장주변도
굉장했던 기억입니다.당시엔,힘들게 들어간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데모하는게 어린눈에는 당췌
이해가 되질 않았었는데, 돌이켜보니 그분들덕분에 이렇게 살고있단 생각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동시대 같은 기억을 갖고 여기까지 살아왔네요.. 당시엔 이해 않되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 선배님들이
진정 깨어있는 사람들 이었네요
사형이면 더좋고 ㅡㅡ^
저는 살던곳이 순창 그리높지않은 산을 2개정도 넘으면 담양 메타세콰이아나무 초입이 나오는 담양과 가까운거리에 깊은 시골에 살고있었습니다
5월 동네샘근처에서 놀고있을때 하늘에서 무언가 소리에 하늘을 봤을때 난생처음 비행기를 보았습니다
그저 신기한 마음에 고개가아픈지도모르고 한없이 넉놓고 보고있던 큰 프로펠라 비행기는 그렇게
담양쪽 산으로 날라가더군요
그당시에 동네 아주머니들은 담양쪽에서 대나무로만든 소쿠리.채등등 담양에서 사다가 장날에 가져다 파시곤 했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후 정확하진 않았지만
동네분들 담양에서 물건사러 다녀오시던분들이 동네 마을회관에 모여서 하시는말씀이 광주 난리났다고들 하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거짓이 아니고 저녁에는 제가시는곳에서도 멀리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그후 전주로 나와서 살던 제가
국민학교5학년때쯤
전주 금암동에 금암교회가있었는데
그곳에서 광주사태관련 영상을 틀어준다 하여
본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어린나이에 너무 무섭고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나서 김대중불법체포로인한 시위가 광주에서 일어났습니다 헌대 장세동이가 전두환에게 이르기를 부마사태보다
더하다 그러니 빨리 대책을 세워 막아야한다고 회의를합니다 (5공화국) 그리고나서 공수부대 전격투입 -광주 ㄱㄱ
헬기에서 무차별 시민들에게 기관포 발사 이에 광주시민들 학생들 할것없이 죄다 시위참가 먼저시비걸고 불을지른건
군인들 위대가리들이였음 하지만 나중에 전대갈 재판때 자기는 발포명령한적없다고 했죠? 다 거짓말입니다 절대로
발포명령없이는 공수부대 투입도 못했죠 왜냐고요? 대통령이 아니라 쿠데타로일으킨 군대통령이였기에 말도안되는
소리죠. 광주시민들로 인해서 민주주의가 앞당겨졌고 지금 공화국에서 핍박받는 나라에서 자유를 만끽할수있는
민주주의국가에서 사는걸 감사하게 생각하고있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존경합니다
택시운전사 / 변호인 등등 영화 재미있게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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