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결국은 전화로밖에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혼란과 여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의 어려움을 해결할만 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와서 덮치고, 그 어려움 해결하기도 전에 또 어려움이 오는 그런 최악의 뫼비우스 띠 같은 인생 몇년을 살았습니다.
면목이 없고, 전화기 너머로는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그 수많은 어려움들을 해결하거나 얼마라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정도로 이겨내기까지는 제 양심이 더 이상 어머니를 울게 하여 드릴 수는 없더군요.
그럼에도 저는 이번에 노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만 것이 아닌가 또 죄책감에 휩싸입니다.
쉽지 않은 정식 재취업이지만 그 재취업은 이뤄질 것이구요.
어디서든 일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도 다른 문제로 만약 어떤 시련을 겪어야만 한다면 도시에서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튼 대도시 생활만을 해보았던 제가 어머니께 나지막히 부탁을 드려보았습니다.
해드린 것도 없는데 부탁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너무 힘들었고 그럴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금전적인 부탁은 물론 당치도 않은 것이구요. 정보를 얻고자 했습니다.
혹시 어머니, 아버지 아시는 옛날 시골 어른들 사시는 마을 중에 남는 집, 좀 마을과 떨어진 외딴집이 있다면 알아볼 수 있겠냐고 여쭈었습니다.
어머님이 눈치를 채신 것인지 흐느끼는 소리가 조금 더 커졌습니다.
그러다가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으시고 '자연인'같은거 말하는거냐고 물으시길래 전 결국 그렇다고 답하여 드렸습니다.
전원활동을 부친과 함께 가끔 즐기시는 어머니는 정보가 있어 이미 아시기로도 불가능한건 아니니 아는 이장님들께 기별은 넣어두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할 것이지만 그것을 조금 더 빨리 하느냐 늦게 하느냐의 차이가 되겠지요.
그리고 저는 현실을 조금 더 인내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최선은 다해보고 아니라면 남은 삶을 위해서라도 그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을 단순하고 쉽게 하는 방법보다는 어렵고 너무 진심을 투영한나머지 제 자신을 혹사하는 삶을 살아왔고, 결국 그 헌신과 열정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참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하더군요.
최근은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오래 전 일을 시작했던 손님으로부터 일비도 결국 2명에게 뜯길 상황인 것 같더군요.
끝까지 받아내야 하는게 맞는데 투지가 안 생긴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 사람들이 싫습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사람들.
결과가 나오면 잔금 처리할 때 계약서마저 자신의 구미에 맞게 해석하고 고치려 하는 사람들.
이렇게까지 피곤하고 약게 살지 못해서 도시에서 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을 두고 천천히 블로그나 구축해봐야겠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그 역시 도시를 떠나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가지 희망의 길을 열고 긍정을 가지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좌절할 생각은 없습니다.
좌절은 최선 이후 결과가 나타났을 때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위로할 방법이 있다는 것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런 현실 탈출욕구가 노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 가슴이 시립니다.
제가 여행을 시켜드릴 수 있는 날까지만이라도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천!!
원래 사람에게 상처받은 건 사람에게 치유받는게 맞는 거지만 님은......그 한계를 넘어선 거 같습니다.
앞으로 행운이 함께하길 바라겠습니다.
예컨데 누구는 한 번에 시험에 통과하는데 왜 나는 두 번 세 번을 시험봐도 불가능할까 같은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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