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형은 저랑 2살터울이지만 군대를 일찍가서 98년에 군대를 갔습니다 (저는 2001년)
형은 홍천에있는 11사단 일명 젓가락부대라고 하는 화랑부대에갔고 군대 전역한 형의 모습은 너무나 멋지고 늠름해보였고 그런 형에게 군대생활에대해 많이 들었는데, 군대엔 욕은 팽배하나 구타는 절대 없으니 걱정하지말고 2년2개월간 잘하고 오면된다고 늘 얘기해줬습니다.
2001년 드디어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또래와 다르게 늘 농촌일을 해왔기때문에 조금은 더 성숙하고 힘든일도 잘 견딘다고 생각했습니다.
22사단 뇌종부대를 거쳐 제1야수교에 4주 후반기교육을받고 화천에 있는 27사단 이기자부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첫날 행정실에서 고참이 데리고 나온뒤부터 지옥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첫날부터 엄청난 욕과 갈굼 협박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더라구요.(지금 생각해보면 첫날부터 그럴필요가 있었을지...)
저희 부대만 있는 희한한 파병시스템때문에 중대가 2개가 되고 운전병이라 타중대에 있는 모든 운전병까지 모두 다 합치니 제가 외워야할 이름이 120명이 넘었습니다. 중대도 2개라 뭐든 2배의 양으로 2주간의 대기기간때 외워야했습니다.
2주뒤 대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상병들이 이리저리 구석에 데리고 가면서 구타를 시작하더군요.
이병이라 모르고 숙지하지 못하는것들을 구타로 해결하는 것이죠.
동기는 8명인가 했는데 잘생기거나 잘보인 1~2명 빼고는 다들 같은 신세였습니다.
중대 내에서도 수송부하면 절래절래 고개를 돌릴정도로 구타가 심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중대장및 간부들도 알면서 모르는척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굴, 몸, 다리 참 많이도 맞았습니다. 그 흔적이 곧 40줄인데 아직도 있으니까요. 그때 맞은 정강이 뼈는 아직도 뒤틀려있습니다. 동기포함 후임병들도 맞는거 많이 보았습니다.
강원도에서 영하 30도넘게 떨어지는 1월.
동기중 한명이 그 구타를 못참고 탈영을 했습니다.
부대는 뒤집어졌고 부대내에서 찾는다고 전 부대원들을 동원하였고 헌병대가 출동하여 고작 5시간도 안되어 그 엄동설한에 논바닥에서 붙잡혔습니다. 차라리 잡혀서 그 친구는 살았습니다. 아니면 얼어죽었을겁니다.
강원도는 주변이 모두 산이라 추운겨울에 산을 넘을수가 없습니다. 행여 산으로 도망갔다가는 시체로 돌아올것입니다.
저같은 후임병들은 그 친구가 모든걸 밝혀주길 기대했고 실제로 며칠간은 구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둘러댔고 이를 안 고참들은 더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구타의 강도는 더 심해졌고 지금도 군생활때 기록한 일기장 (수양록)을 보면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느낄수 있으며 자살을 시도하려고 한것도 보입니다.
후임병은 결국 마지막 선택을 하며 초소에 올라가 자살을 했습니다....
제가 상병이 되고 저를 무지막지하게 구타했던 고참들 (1살차이혹은 동갑)은 전역을 앞두고 굳이 제가 파병간곳까지 찾아와서 용서를 빌더군요. 마치 짠것처럼 한명씩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때가 2002년이니 다 잊을만도 하지요.
하지만 가끔 생각이 납니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군생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 참고로 저희부대는 상병 6호봉까지 맞았습니다)
ㅡㅡㅡㅡㅡ
첨부사진은 제가 이등병때 다쳤는데 정말 제 인생에서 가장 크게 다쳤습니다. 신경이 다 끊어지고.... 너무 죽을만큼 아파서 손까닥하면 지옥을 봤는데 지금생각해보니 중대장이 왜 의가사전역을 안했을따하는,,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제 손목엔 저렇게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그때는 밤에 집합이 없으면 불안했죠.
저는 그런적 없는데 맞다가 기절한 놈이
있으면 "이새끼가 빠졌네. 기절을 해?"
하면서 더 때리던 고참놈들이 생각 나는군요.
사과? 제대후 그놈들 중 한놈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동안 잊고 있던 복수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더군요.
똑같은 놈 되기 싫어서 "착하게 살아. 이개새끼야."라고 했더니 어이없어하던 그 개새끼의 얼굴에 진짜 면상을 뭉게버릴려다
와이프도 있고 해서 참았습니다.
그새끼가 도발했다면 그날 저와 개새끼 둘 중 하나는 아마 죽었을 겁니다.
물론 그 시발새끼가 뒈졌겠죠.
3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 개새끼를 다시 마주친다면 똑같이, 아니 더 심하게 얘기해 줄 겁니다.
"이 개새끼야. 너의 그런 모습을 네놈 마누라와 새끼들은 아니?" 인간같지도 않은 개새끼죠.
그 개새끼 말고도 몇새끼 더 있는데, 그 개새끼들을 언젠가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두들겨 맞았었습니다. 그때는..
다행히 구타는 없었지만(부대마다 다르니까요..)
허구헌날 집합및 가혹행위, 욕설에 시달렸고,
글쓴이님 말처럼 악마같은 녀석들이 제대할때쯤되자,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ㅎ
저는 제대환송회할때 악수를 청하길래 손을 쳐버렸어요 밖에서 마주치지맙시다 라는말도 했고요^^
상병말호봉때 유격조교로(양성조교)로 지원해서
코스조교로 활동하며 한달간 사단 병사들을 굴렸는데..우리부대 왔을때 .. 고참들 엄청 굴렸네요
그때 참 속이 후련했었네요^^
군대가 아무리 편해졌고 짧아졌다해도,
옛날 군생활이나 요새 군생활이나
다들 힘들죠.
고생하는 병사들이 더욱 좋은 환경에서
우리때보다 더욱 혜택받고 맛있는것도 먹고
돈도 더받고 무사히 몸건강히 다녀왔으면
좋겠습니다.
더 웃긴건 이 개같은걸 없앨라고 왕고차고 노력했드만...바로밑에 놈들이 싫다더군요...나도 이제 받아 먹을라고 하는데 왜 없애냐고...하...개새끼들...그넘이 그넘임..
사령부 운전병인데 저도 고참 이름120명 외우느라 개갈굼 당했던 기억이 있네요
생각나는게 내고추 만진 개시키 얼굴도 기억나고 ㅜㅜ
그래서 일부러 안씻고 다녔던 기억인 ㅜ ㅜ,,
그때는 밤에 집합이 없으면 불안했죠.
저는 그런적 없는데 맞다가 기절한 놈이
있으면 "이새끼가 빠졌네. 기절을 해?"
하면서 더 때리던 고참놈들이 생각 나는군요.
사과? 제대후 그놈들 중 한놈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동안 잊고 있던 복수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더군요.
똑같은 놈 되기 싫어서 "착하게 살아. 이개새끼야."라고 했더니 어이없어하던 그 개새끼의 얼굴에 진짜 면상을 뭉게버릴려다
와이프도 있고 해서 참았습니다.
그새끼가 도발했다면 그날 저와 개새끼 둘 중 하나는 아마 죽었을 겁니다.
물론 그 시발새끼가 뒈졌겠죠.
3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 개새끼를 다시 마주친다면 똑같이, 아니 더 심하게 얘기해 줄 겁니다.
"이 개새끼야. 너의 그런 모습을 네놈 마누라와 새끼들은 아니?" 인간같지도 않은 개새끼죠.
그 개새끼 말고도 몇새끼 더 있는데, 그 개새끼들을 언젠가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두들겨 맞았었습니다. 그때는..
저는 제가 죄짓고 교도소 온 줄 착각했습니다 진짜 디지게 맞습니다ㅠㅠ
저는 2003년도에 방위산업체에서 대체복무를해서 구타는 잘모르고 군생활(?)했습니다 거의 외노자 필리핀,조선족 대우 받으며 개같이 더러운환경에서 노동한거뿐 기초군사훈련은 9월에 강원도 원주에서 받았습니다
부랄친구 해병대 백령도로 간 친구는 휴가나와서 술먹으며 이야기 하더군요 하루라도 안 맞는날이 없다 오히려 안 맞은날은 불안하다며
하루는 그친구 동기가 그날따라 피곤했는지 자면서 코를 골았는데 바로 윗 선임이 자고있는놈 코에 뜨거운 컵라면 물을 부어버렸답니다
그얘기듣고 와 내가 군대가서 그리 당했으면 한놈 칼로 담구던지 자살하던지 하지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안좋은시절에 고생 많이하셨습니다
그 새끼도 여기서 더 때리면 내가 막 갈거라는거 알았는지 잡지는 않더라구요.
1995년 12월 제대 저는 군생활중 후임 딱 2번 좋은게 좋은거다라고 생각하고 생활 했더니만 개기더라구요. 싸대기 2대 끝. . .
죽고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번 들었죠
생각도하기 싫을만큼ㅠ
그때 그 고참들은 왜 그렇게 구타를 했을까요
직업군인이라 말뚝박았어요
제발. 좀 살아요
이제 알았으니 맘을 바꾸시길
힘내시오... 내가 해줄건 이것밖에 없소..
공군이다보니 병장 기간이 엄청나게
길어서 병장때 대가리 박아본 기억이
있네요.
그런데 육군.. 병장이 5개월인데
병장 2호봉에 존나게 맞는다면 이거야
원.. 어이가 없었겠습니다..
지발 가지마
쇠파이프..
쌍칼교육대..
저도 죽어볼려고 마움먹고 나쁜생각 3번해봤습니다.
결론은 사람 쉽게 죽지 않더이다. 덕분에 제몸엔 그흔적들 훈장아닌 훈장만 남았고요.
제발 살아계시길
참 힘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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