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준비태세걸려서 전쟁났다 생각하고 군장싸고
2개월동안 산에서 살았습니다 오대산 ㅋ
동기는 전쟁공포증으로 후송가고 밤에는 매복 낮에는 수색 듸지는줄 알았음 ㅋ
우리 사단에서 2명 전사.. 지금은 추억이지만 그땐 끔찍했죠 오발사고도 많이나고
전쟁나면 피아식별 안되서 서로 쏴죽일듯
9월 18일 일병휴가 복귀 그날밤 천둥치면서 비 엄청 오더니,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난리가 났음. 공병대 공사하는데도, 총기 휴대하고, 시멘 공구리 비비고, 11월 5일 우리소대가 매복나가는 날이였는데, 작전종료 다행이였습니다. 엄청 걱정했었는데... 작전끝나고, 군축령 넘어 복귀하던 60트럭들 1시간넘도록 쭉 줄서서 넘어가더군요. 엄청 많은 군인들이 작전에 참가 했었습니다.
무슨 그쪽 지역에 원수졌나
광주 민주화 운동하면 개거품물고 남좋은꼴 보기 배알꼴리는 애들
그래도 못잡은 간첩새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음..
2개월동안 산에서 살았습니다 오대산 ㅋ
동기는 전쟁공포증으로 후송가고 밤에는 매복 낮에는 수색 듸지는줄 알았음 ㅋ
우리 사단에서 2명 전사.. 지금은 추억이지만 그땐 끔찍했죠 오발사고도 많이나고
전쟁나면 피아식별 안되서 서로 쏴죽일듯
그러게요, 참으로 안따까운 죽음이 많았습니다.
거의 헤드샷으로 당했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북한군입니다.
검정색으로 바뀌었죠...
북에서 가슴과 모자에 달린, 계급장을 조준해서 쏜다고..
홍천까지 동원되고 양평이랑 여주는 아직 대기중이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상황종료되어 마무리된 사건이죠.
저때 검문 검색이 어마어마해서 잠시 범죄율이 낮아졌다는 소문도......
실제 수색에 투입되었던 특전사(당시 중사였던걸로 기억)가 쓴 글 읽었습니다.
며칠동안 공비들을 쫓았고 산 중턱에 포위되어서 숨어있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
산 아래 입구쪽엔 보병사단. 산 위아래로 압박수색은 특전사가 맡고 산 정상에서 레펠강하 한것 맞습니다.
특전사들 정상적으로 다 강하했고 3인1조 수색작업중 낙옆으로 몸을 숨기고 있던 공비를 10여미터 전방에서
발견했고 이 중사보다 앞서있던 다른조도 이미 발견해서 조준하려는 찰라 공비가 먼저 한명한테 헤드샷
쏜것이고 총에 맞은 사람은 글쓴 중사의 동기였답니다. 헤드샷 당하고 헬멧이 뚫린 상태에서 한동안 숨이 붙어있었는데
헬기로 병원 이송중 사망했답니다.
이 후 추가 수색중 3명 사살했던 건도 이 중사가 포함된 조 였다네요. 바닥이 물컹거려서 순간 낙옆을 치워보니
공비3명이 숨어있었고 그 중 한명은 권총으로 자신들을 조준하고 있었다고..(극도로 긴장상태였다고 함)
그 조의 중대장이 10셀동안 투항하라고 했지만 2명은 투항 의사가 있었는데 1명이 끝까지 총을 버리지 않아서
9까지 세고 어느순간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탄창 다 비울때까지 방아쇠 당기고 나니 사방이 연기로 가득찼고
잠시후 연기가 걷히고 나니까 인형3개가 걸레가 된 모습이었다고 함.
공비와 전투중에 총맞고 온사람이랑 이야기를 좀 해볼일이 있었죠
뭐.. 자기인생중 가장 힘든기억이었다고하고..
약간은 과장된 기억도 있었을수 있긴하지만
그사람말에 의하면 북한군이 도망가다가 뒤돌아서 총한방쏘면
우리쪽 누군가가 쓰러졌다고 하더군요..
물론 북한군에서도 최정예에 속하는넘이었으니 더 그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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