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침-
그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어디 가지 않겠느냐고.. 지금 사람을 다짜고짜 놀래켜 놓구선
씻지도 않은 제 맨얼굴을 보여주니까, 상당히 어디론가 가고 싶지 않은것은 물론,
이사람 당장 내쫒아야할것만 같았습니다.
"나 씻지도 않았어요! 어딜 나가요!"
저는 그 사람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는 조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저를 보더니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넌 씻지 않은 얼굴도 예뻐 괜찮아"
저거 80년대때 유행하던 느끼한 말 아닙니까? 오히려 정말 씻지 않은 저에겐
부담스러운 말과 함께 놀리는듯한 느낌만이 가득할뿐, 도저히 칭찬으론 들리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화장을 안해도 이쁘다는 말이 나을듯 싶지만,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야야 정말 안나갈꺼야?"
제가 아무말도 안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버리자, 그는 저를 뒤쫒아 오면서 말했습니다.
지금은 그냥 침대 위에서 자고 싶습니다. 모처럼만에 온 휴일인데, 어떻게 이 사람과
같이 보내겠습니까? 정말 아까는 간떨어질뻔 했다구요. 영화 '주온' 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야야~ 미안해 미안해~ 응? 응? 아잉~"
어라? 이사람좀 보세요. 어디서 아양입니까? 정말 죽고 싶은건지, 아니면 다시는
제 얼굴 보고 싶지 않은지,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짜증난다는 표정과 함께
그에게 말했습니다.
"한번만 더 그래봐요"
"아잉~"
그는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애교를 피웁니다.. 아 애교로 보기에는 너무
끔찍하군요..
"하지말라구요!!"
저는 소리치며 배게를 그에게 던졌습니다. 그는 던진 배게를 잡아내더니, 조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한번만 더 해보라고 할땐 언제고 이젠 하지 말래?"
"아 몰라요 몰라요.. 그냥 당신하고 얘기하기 싫고 나 잘꺼니까 나가요"
저는 그냥 귀찮다는듯 침대위로 쓰러져 누웠고, 그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주머니에서 잡지책하나가 나옵니다. 물론 접히고 접혀서
구겨진 잡지였지만, 그는 그 잡지를 몇번 넘기더니, 무언가 찾아낸듯 주의깊게
읽었습니다.
"뭐 읽어요?"
"이 잡지에서 그렇게 하라고 써있었어"
"뭐가요?"
쓰러져 누워 있던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옆에 다가가 그 잡지에 쓰인 글을 읽었습니다.
당황스러운건, 그 잡지에는 여자한테 사랑받는 법이라는 제목과 함께 여러가지 글귀가
적혀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애교를 피워라' 라는 대목이 눈에 띄더군요. 그 이유는
빨간 팬으로 여러번 동그라미를 쳐놓은것 같더라구요, 나머지는 도저히 저한테
할수 없었던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면..
빨래를 대신 해줘라..
설거지를 대신 해줘라..
요리를 해줘라....
이런것들은 부부사이 외에는 하기 힘든거고, 걔다가 요리라뇨, 이사람 절대 요리랑은
거리 완전 먼 사람입니다.
"근데 이 잡지 사기네.. 애교를 피웠더니 화만 내고 나원 참.."
"당신이 이상한거에요 !"
저는 그에게 그렇게 소리쳤습니다. 여튼 집에 혼자있고, 심심할것 같기도 해서,
이사람이랑 어디 잠깐 나갔다 오는것도 나쁘진 않을것 같았습니다. 저는 화장실로
들어갔고, 그는 갑자기 말했습니다.
"어디가?"
"씻을테니까 밖에서 티비나 보고있어요. "
그는 알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잠시후 밖에서는 쇼파에 털썩 주저 앉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여튼 대충 씻고 밖으로 나오니, 그는 여전히 티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그런 그를 무시한채, 방안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 입고 나왔습니다. 그는 티비에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습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요?"
"그냥.."
티비에 눈을 돌리니, 남녀가 정말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채널을 보아하니, 유익한 채널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얼굴이 붉어져서 리모콘을
잡아채고는, 티비를 꺼버렸습니다.
"당신 참.. "
"걱정마 내 취미 아니야.. 나가자!"
그는 씨익 웃으며 말했습니다. 여튼 밖으로 나왔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버튼을
눌렀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연은 내내 웃고 있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은걸까요?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습니다. 근데 전 놀랄수 밖에 없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혁현이와 채연이가 같이 타고 있었습니다. 혁현이와 저는 눈이 마주쳤고, 혁현이는
옆에 연을 보고는 눈을 이내 다른곳으로 돌려버렸습니다. 채연이는 늘 느끼는거지만
저를 보고는 정말 재수없는 미소를 씨익 짓고 있었습니다.
"너가 채연이냐?"
연은 타자마자 채연이에게 말했습니다. 채연이는 그 말에 반응이라도 한듯,
고개를 쓰윽 돌려 연을 보았고, 연은 아무말 하지 않는 채연에게 말했습니다.
"나 모르냐?"
나 모르냐는 말에 채연이는 조금 생각을 하는듯 했습니다. 혁현이도, 연을 바라보았습니다.
"띵동"
문이 열렸습니다. 그때 채연이는 생각난듯 말했습니다.
"아~ 저번에 나랑 게임 정해준 그 영감 옆에 서있던 사람 이구만?"
"응 맞아"
"근데 여기는 왠일로? 그것도 쟤랑?"
채연은 뭔가 미심쩍은듯 연에게 물었습니다. 채연이는 내 눈치도 살폈습니다.
채연이는 여전히 뭔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놀러"
연은 간단하게 말한뒤, 엘리베이터 밖으로 저를 끌고 나왔고, 채연이와 혁현이도
뒤따라 나왔습니다. 나와 연은 밖으로 나왔고, 채연과 혁현이 역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연은 아무말도 없이 저를 끌고 갔고, 뒤에서는 더이상 혁현이와 채연이의 발걸음이나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 어디 대려가는거에요?"
"어디갈래?"
"목적도 없이 나와요? "
황당했습니다. 자기가 먼저 나오자고 해놓고서는, 어디갈꺼냐고 묻다니요.
이 인간 정말 대책 안섭니다. 그런데 우리의 뒤에서 또다른 발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채연이와 혁현이었습니다. 그 둘은 우리를 스쳐 지나가더니, 어느덧 왼쪽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습니다. 근데 그 둘의 모습은 너무 다정했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아프도록..
"보지마.."
연은 갑자기 제 눈을 가렸습니다. 아무런것도 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둘의 다정한 모습도 연의 손에 가려지고 사라졌습니다.
"아프지마... 내가 아파.. 힘들어하지마.. 내가 힘들어.. 넌 늘 즐겁고 웃기만해..
모든 아픈거 힘든거.. 내가 다해.. 넌.. 그냥 웃어... "
연은 제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치우고는, 제 팔을 잡고는 혁현이와는
다른 반대편인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 갔습니다. 저는 뒤돌아 보았습니다.
혁현이와 채연이가 정말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게임의
종료는.. 얼마 남지 않은듯 했습니다.
"보지말랬잖아!!"
연은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제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혁현이를.. 1주일 내내 보면서 마음아파 하고 상처 받았고,
어제도 혁현이의 마음에 담긴 사람의 이름을 들었을때, 저는 울고 싶었습니다.
엄청난 충격과 패닉속에 살았는데, 그런데도 전 혁현이가 보고 싶습니다.
"보고싶어요.."
"....."
"보고싶단 말이에요!! 전... 아파서 피나고 찢어지고 반 병신이 되더라도!!
즐겁고 행복해보이는.. 그런 혁현이의 모습만 봐도 전 금방 나을수 있을것만 같단
말이에요!!"
저는 그자리에서 연에게 소리쳤습니다. 제 눈에서는 눈물이라는것이 제 볼을 타고
흘렀고, 연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 아무곳도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몸을 돌려 혁현이에게로 뛰어 가려 했습니다. 그때, 연은 제 팔목을 잡고는
저를 자신 쪽으로 끌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키스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순간적으로 밖에 느낄수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입술에 살짝 닿고는
이내 그는 귀신으로 다시 변해버려서 느낄수 없었습니다.
"가지마.."
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저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귀신이 되버린
연은 저에게 어떠한것도 할수 없었습니다. 저는 연을 노려보고는, 뒤돌아 그 둘이
있는 곳으로 뛰어 갔습니다. 그는 더이상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둘이서-
저는 꽤나 멀어진 거리를 따라 갔습니다. 그 짧지만 강한 느낌이 아직도 제 입술을
맴돌고 있습니다. 잊을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저 멀리 그 둘이 보였습니다.
이미 숨은 턱까지 올라왔고, 제 심장과 폐는 터질듯 했습니다. 그 키스만 아니었으면,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그 강한 고통은 없었을껍니다..
"저기"
더이상 뛸수는 없었습니다.. 혼자 그 자리에서 헉헉 대면서 소리내어 그들을 불러봅니다.
그들은 자리에 멈추더니, 이내 돌아서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채연이는 여전히 웃고 있었고, 혁현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습니다.
"혀..혁현...아.."
숨이 너무차서 혁현이의 이름 조차 제대로 부를수 없었습니다. 혁현이를 불렀을때,
혁현이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습니다. 저는 숨이 찼지만, 참고는 혁현이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