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ver-
혁현이가 저에게 계속해서 묻습니다. 제가 현정이냐면서.. 이렇게 된거 정말
잘된것 같습니다. 뒤에서 애처롭게 눈물 흘리며 바라보는 연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그래도 저에겐 다행입니다. 그 이유는 혁현이를 많이 사랑했던
저 자신에게도 미안함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에.. 혁현이를 어렵게 선택한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잘나서 이런선택 저런선택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는 혁현이만을
따라갈것입니다.
"응.. 맞아.. 내가 현정이야.. 너가 나를 알아주지 않았을때, 얼마나 슬펐다구.."
저는 혁현이에게 말했습니다. 혁현이의 눈에선 소리없이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하지만, 웃고 있었습니다 혁현이는.. 저도 웃어주며 혁현이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이제라도.. 알아줬음 됬어.."
"현정아.."
저는 말없이 웃어 주었습니다. 뒤돌아 보았습니다. 연은 없었습니다.
사람이 되었다는거.. 적지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연에게도 충격이었겠지요..
자기 자신이 사람이 되서 지하세계도 못가고, 걔다가 저까지 이러니..
패닉에 또 패닉이 아닐수 없었겠지요..
"가자.."
혁현이는 웃었습니다. 이게 얼마만에 보는 웃음입니까? 물론 제가 발이 다쳤을때도
환하게 웃어주었지만, 지금의 웃음은 그때와는 달랐습니다. 그때의 웃음은 뭐랄까..
슬픈 웃음이었던것 같습니다.
"너가 저번에 현정이라고 했을때, 솔직히좀 놀랬어.. 현정이에 대해서 뭐든지
다 알고 있길래, 너무 놀랬거든.."
"현정이가 나니까 그렇게 그런거지.. 다른건 없어.."
"미안해.. 정말.."
"괜찮아 괜찮아!! 이제 안그러면 되는거지 뭐 하하.."
저는 웃었습니다. 얼마만에 찾아노는 행복인가요. 이제 게임은 끝났습니다.
더이상 채연이의 기분나쁜 미소도, 슬퍼보이는 연의 모습도 더이상 보지 않아도 됩니다.
아.. 생각해보면 연의 좌절한 모습은 앞으로도 봐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귀신이 아닌 사람이 되버렸으니까요..
"근데 우리 이제 어떻게 하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거야!"
"응 "
혁현이의 대답은 어느때보다 활기차고 상쾌한 대답이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눈물지어야 하는 일 따윈 추억들로 묻어 두겠습니다. 앞으로는 더이상 생기지 않을것
같거든요. 지금 우리둘의 상황.. 더이상 때어놓을수도 없습니다.
시험은 우리에게로 다가왔습니다. 그 어느때보다 자신있는 시험입니다. 혁현이가
그때 없었더라면, 이런 시험분위기 없었을텐데 말이죠. 그때 혁현이가 없었으면,
연의 슬픈 모습때문에 시험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것 같았습니다. 이젠,
혁현이만 생각하면 됩니다.
"시험 어때? 잘봤어?"
"응 너덕분에"
시험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때가 되자 저기 멀리서 혁현이가 저에게 뛰어오더니
묻습니다. 시험을 잘 보았느냐고.. 물론 잘보았죠. 시험지만..
우리 둘은 같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근데 가는 방향이 조금은 이상합니다?
그래서 저는 혁현이에게 물었습니다.
"어디가?"
"너네집"
"응...??"
"너네집 이쪽이잖아"
혁현이가 말합니다. 저희집이 이쪽이라고, 근데 자세히 보니 이거는 제가 예전에
살던 집쪽이었습니다. 아마도 혁현이는 더이상 저를 이 정아가 아닌 박현정으로
생각하나 봅니다. 저는 피식 웃으며 혁현이 앞을 가로막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봐요! 조금만 참아.. 내가 박현정으로 완전히 돌아갈때까지! 자 이 정아의 집으로 가실까?"
혁현이는 그제서야 생각난듯 아! 라는 감탄사와 함께 다시 뒤돌아 갔습니다.
조금만, 참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게임 이제 조금있으면 끝나는 게임이니까요..
채연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다시 환생은 못할것 같네요.
-운명-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끝나다보니 수학여행이 찾아왔습니다. 상당히 늦게까지
더위가 왔던 터라, 여름인지 알았는데, 달력을 보니 어느덧 10월의 말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뭐 여튼간 1년의 한번은 찾아오는 학교 행사니까, 가줘야 되는것도 예의이고
안간다면, 따당할것을 각오해야 하기에 가야되는게 옳겠죠?
"야 우리 수학여행때 입고갈 옷이나 하나 사러갈까?"
오늘은 혁현이가 정말로 바쁜 사정때문에 몇번이나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학교가 끝나자마자 어디로 사라져버렸습니다. 뭐 꼭 저랑 같이 가야 하는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하고는
부르기도 전에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집에 오랜만에 민희와 후정이랑 함께
집으로 오고 있었던 도중이었습니다.
"어떻할래?"
저는 그냥 아무생각 없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민희가 말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것일까요?
"응..?
"옷사러 가자니까, 니 남자친구랑 같이 안가니까 얘가 정신이 없어요 "
"으..으응?? 아아.. 그..그래"
저도 얼떨결에 말해버렸습니다. 받는 용돈은 한정되어있는데, 무슨 옷입니까?
그냥 저는 사지는 않더라도, 같이 따라가기나 할려고 생각중입니다.
"언제 사러가지..?"
"그..그럼 내일 사러가자! 어차피 내일 토요일이기도 한데.."
저는 민희에게 말했습니다. 결국 우리 둘은 내일 옷을 사러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우리 셋은 서로 찢어졌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문앞에는 더이상 보기
힘든, 연이 서있었습니다.
"저기.."
저는 왠지 이 사람과 얘기한다면 저의 마음이 계속해서 흔들리고, 혁현이에게도
미안할것 같았습니다. 얘기하기 싫었습니다. 저는 그냥 그를 스쳐 지나갔고,
그는 저의 팔을 붙잡고는 말했습니다.
"왜그래.. 나랑 얘기만 잠깐 하자.. 응?"
"싫어요.."
"어..?"
"미안해요. 더이상 당신 보는거 힘들어요.. 그냥.. 제발 절 놓아줘요.."
"....."
연은 그렇게 말이 없었습니다. 연의 팔은 천천히 풀렸습니다. 저는 완전히 팔이
풀릴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는 팔이 풀렸을때, 저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연은 사탕을 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탕을 물었을때만의 특유의
즐거움이나 웃음은 더이상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저 사탕은,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사탕일까요..?
"띵동"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을 닫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문앞에 서있던 연이 갑자기 뛰어오더니 문을 붙잡았습니다. 문은 다시 열렸고,
연은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저기.. 한번만 더 생각해줘.. 응..?"
"아뇨.. 이미 늦었어요.. 혁현이도 저의 진짜 정체를 알았고, 저도 그러길 바랬어요..
이젠.. 더이상 어쩔수 없어요.. 이제 이 게임도 끝난것 같아요.."
"아니.. 아직 안끝났어.."
연은 말했습니다. 이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고..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이 게임의 끝은
혁현이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끝난다고 했는데, 끝나지 않았다니요. 조금은 황당했습니다.
"무슨...말이에요?"
저는 연에게 물었습니다. 연은 조금은 머뭇거렸습니다. 이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면,
저는 이 정아로 살아야 하고, 채연이도 계속해서 혁현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것 같았습니다.
얼른 끝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방해꾼이.. 나타나면 안되.."
"네..?"
연은 문을 막고 있던 손을 치웠습니다. 그리고는 문은 서서히 닫혔고, 연은
아무런 표정없이 문이 닫혀가며 가려지는 제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탁"
문은 닫혔고, 엘리베이터는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연의 말은 무슨 말일까요?
방해꾼이 나타나면 안된다니요. 조금은 당황스러웠습니다. 방해꾼이라.. 그 의미는
아마 연을 말하는 뜻인가요? 연은 지금 저를 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게임에
집중할수 없을정도로, 하긴 그렇습니다. 굳이 지금 이 상황을 게임으로 따지자면,
플레이어는 3명입니다. 근데 연은 그 사이를 끼어 들어와서 어느덧 플레이어는 4명이
된 거죠.. 그렇다면, 연은 방해꾼이 되버린건가요?
"아.."
대충 연의 말뜻이 정리가 되니 엘리베이터는 5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문은 다시 닫히려 하고 있었고, 저는 얼른 빠져 나와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벨을 눌렀을때 아무런 응답이 없자,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늘 보고 늘 살고 늘 느끼는, 집이지만, 오늘은 너무나 쓸쓸해 보였습니다.
제 시선은 쇼파로 향했습니다. 얼마전까지 연이 저기서 정말 저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훗.."
저는 갑자기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자 피식 웃음이 세어 나왔습니다. 느꼈습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는것을.. 하지만, 그것이 흔들리기까지는
많은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지금 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겠는건,
연이 사람이 되버리고 나서 입니다.. 지금 제가 연을 힘들게 하는것 역시
연이 사람이 되버리고 나서 인것 같습니다.. 연이 사람만 되지 않았더라면,
더이상 제가 그에게 모질게 대하지 않았을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