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나와 후정이 그리고 민희는 동대문으로 향했습니다. 내년이면
수능을 보는 사람들이 수학여행에 들떠 있어도 되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 3되면
수학여행도 없어서 마지막 수학여행이라 즐겨보려고 그러는걸까요?
"지현이도 부를껄 그랬나..?"
생각해보니 지현이를 부르지 않아서 제가 마음이 좀 착잡했습니다. 후정이와 민희는
저를 향해 악마같은 미소를 짓더니 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자 왼쪽을 보시게!"
후정이가 제 머리를 왼쪽으로 돌렸습니다. 저쪽에서 지현이가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얘네들 알아서 불렀군요. 정말 흔히들 말하는 남자들 의리보다 더욱더 크고
깊은 우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누가 여자들은 의리가 없다고 한걸까요?
"너 실망이야 이정아!"
"응..???"
"나 빼놓고.. 그래봐!"
지현이는 오자마자 그렇게 말합니다. 저는 미안하다는 표정과 함께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 했으나, 지현이는 방긋 웃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농담이야 농담 ! 자 심각해지지 말고 어서 가자고!"
우리 네명은 동대물 의상쇼핑몰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정말 평소에도 많았지만,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더욱더 많았습니다. 사람많은곳은 자주 오지 않는 편이라,
오랜만에 사람들을 한꺼번에 보니 조금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제 눈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였습니다. 옷장사를 하며 손님들을 부르는 가게 점원, 예쁜 옷을 한가득 싸들고
가는 손님들, 그리고 무거운 짐들을 운반하는 퀵서비스 직원들도..
"뭘 그렇게 신기하게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사람구경을 하고 있는데 민희가 물어봅니다.
저는 그냥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말했습니다.
"아냐 아무것도.. 하하"
"설마 여기 처음 오는거야?"
"아냐! 그..그럴리가.."
"아님 됬구 왜그렇게 당황해?"
솔직히 뜨끔했습니다. 동대문이라는곳 태어나서 2번밖에 가보질 않았거든요.
처음오진 않았지만, 거의 초짜와도 같아서 조금은 찔렸습니다.
"언니들~ 여기서 옷사가~"
역시나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많은 점원들을 우리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좀비같았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정말로 점원분들께 죄송하지만,
꼭 팔을 벌리고 이리로 오라는 시늉이 저에게는 그다지 썩 좋아보이진 않았거든요.
"우리 저기 가자"
저는 조금은 당황스러워서 친구들에게 딱 붙어 돌아다녔는데, 후정이가 저쪽 앞쪽 가게를
가르키며 저쪽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쪽으로 갔고, 후정이는 맘에 들은
옷이 있었는지 한개를 골랐습니다. 치수를 보더니 이것보다 한치수 큰것을 달라고 말했고,
팔릴것 같은 느낌이 들자 점원은 기분 좋게 옷을 꺼내어 왔습니다.
"어때 이거?"
후정이는 옷을 자신의 몸에 대보이면서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후정이는 워낙 옷걸이가
좋은애라서, 같이 츄리닝을 입어도 엄청나게 비싼 츄리닝을 입은듯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반면 저는, 워낙 옷을 입을줄 몰라서 아무거나 걸쳐 입어 조금은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정아야 너도 옷하나 사"
"으..으응..?"
혹시나 몰라서 모아뒀던 용돈과 어머니께 옷산다는 말로 돈을 좀더 받아 왔습니다.
살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제가 옷을 잘 알아야죠..
"나..나는 옷을 잘 못입는데.."
"걱정마! 우리가 오늘은 너의 코디네이터가 되어주마!"
민희와 후정이 그리고 지현이는 웃으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과연 얘네들의 실력을
믿어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자 그럼 먼저 정아의 옷을 고르러 가자!"
후정이는 일단 그 옷을 사고 나서는 저의 옷을 고르러 가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곳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저는 그 3명의 친구들보다 키가 컸지만, 그래도 그다지 차이는
안났습니다. 민희는 괜찮은 옷이 있다 싶으면 저에게 대보기도 했고, 지현이 역시
저에게 그랬습니다. 후정이는 그 두명이 고른 옷을 보고는 선택하기도 하고,
혹은 다른 색상의 옷을 찾기도 했습니다. 조금은 복잡했지만, 언제 이렇게 즐거운
쇼핑을 해보겠습니까? 역시 무언가를 산다는건 재밌는것 같습니다.
"오 이거 괜찮다!!"
"응..?"
민희는 뭔가 찾았다는 듯이 옷을 하나 집어들고는 저에게 대어보았습니다. 후정이와
지현이는 모두들 괜찮다고 하며 이옷을 사라고 권했고, 저는 그냥 친구들의 말을
믿고 옷을 사려고 지갑을 꺼냈습니다.
"얼마에요?"
"4만2천원만 줘요"
"네.."
돈을 꺼내어 주려 하자, 후정이는 제 손을 가로막더니 점원 언니한테 말했습니다.
"에이~ 이게 무슨 4만 2천원이에요.. 학생이라 돈도 없는데 5천원만 깎아요"
"우리도 남는게 없어"
"그럼 다른데 갈래요 됬어요"
후정이는 다른애들을 끌고 가려고 하자, 점원 언니는 뒤에서 불렀습니다.
"학생들이 쫀쫀하기는.. 알았어! 기분이다 3만 5천원만 내"
"2천원 더 깎아주셨네요? 감사합니다"
후정이는 웃어보였고, 저는 3만 5천원을 내었습니다. 지갑을 보니 돈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아무래도 옷은 어디서 사든 비싼것 같았습니다.
"근데 이거 잘산걸까?"
"잘샀어 잘샀어"
지현이는 걱정없다는듯 말했고, 저는 안심이 되었습니다. 뭐 이왕산거니까
잘 입고 다녀야겠습니다. 옷을 사고 나서 집으로 가려고 친구들을 재촉하자,
친구들은 모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니옷만사?"
"아니.."
생각해보니 걔네들도 옷사러 왔는데 저혼자 애들을 재촉한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다른애들은 금방 금방 자기한테
맞는 옷을 찾았는데, 저는 왜그렇게 많이 돌아다닌걸까요? 아무래도 옷이
안어울리는 몸이긴 한가 봅니다.
그렇게 해서, 후정이는 자켓하나와 청바지 하나를 샀고, 민희와 지현이는 티셔츠와
바지를 하나씩 구입했습니다.
"정아는.. 다리가 이뻐서 치마 입는것도 괜찮을텐데.."
후정이는 제 다리를 내려다 보더니 말했습니다. 치마는 교복치마면 충분합니다.
불편해서 치마는 더이상 못입을것 같았거든요.
"무슨 치마야.. 됬어 불편해서 못입어 그거.."
"아냐 넌 입어야해 올해가 마지막 수학여행이잖아!"
후정이는 제 팔을 이끌고는 한층더 올라갔습니다. 지현이와 민희 역시 동의한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1층 위로 올라가서 치마를 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치마는 입기 싫은데,
억지로 입는 기분이라 그다지 기분은 좋지는 않았습니다.
"자 이거 사라!"
"에..??"
지현이가 고른 치마는 상당히 짧은 치마였습니다. 정말 불편한건 딱질색입니다.
"무슨 그렇게 짧은걸 입어 안입어!"
저는 지현이에게 별꼴이라는듯이 지현이의 팔을 가볍게 때리면서 말했습니다.
후정이는 지현이의 치마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이거는 좀 짧다 조금은 긴게 나을듯 싶어"
후정이는 다른 치마를 꺼내어 저에게 대어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이것이 가장
잘어울린다면서 저에게 사기를 권했습니다. 지현이가 고른것보다는 길지만,
그래도 역시 치마는 치마입니다.
"에이 여기까지 와서 튕기기냐? 그냥 사!"
저는 결국 샀습니다. 누군가 말해주세요.. 왜이렇게 제 의지가 푸딩같은지..
-무서움-
우리는 모두 옷을 사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같은 버스를 탔지만, 각자 집은
대충 한정거장에서 두정거장 정도 차이가 났기 때문에, 모두들 근소한 차이로
하나둘씩 차에서 내렸습니다. 저는 후정이와 같이 내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헤어졌고, 저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쇼핑백을 보니 이것을 입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튼간 열심히 올라가보니, 이번에도 연이 우리집 앞에
서있었습니다.
"왜또 이렇게 서있어요..?"
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되서 그런지 옷도 많이 더럽혀져 있었고,
많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머리 역시 많이 떡져서 불쌍해 보였습니다.
"어디서 있었어요..?"
"밖에.."
연은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이 되고나서는 뭐 하나 잘 못먹고,
옷하나 못입고 씻지도 못한것 같습니다. 비록 사람이 된지 이틀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들어와요.."
더는 연의 모습이 불쌍해 차마 차갑게 대할수가 없었습니다. 연은 저를 보더니
조금은 믿기 힘든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진짜..가도되..?"
"그럼.. 거기서 그렇게 서있던지요.."
저는 그냥 그렇게 말을 해놓고선 뒤를 돌아 엘리베이터로 향했습니다.
연은 바로 저를 따라 왔습니다. 집에는 어머니가 안계셨습니다. 오늘은 동창회때문에
늦으신다고 하셨거든요. 아버지는 지방출장 가셔서 내일이나 되서야 올듯 했습니다.
그야말로 집에는 저와 연 둘 뿐이었습니다.
"안에 가서 씻어요. 우리아빠 티셔츠랑 바지 줄테니까 그 양복 밖에 내놓고,
씻는동안 저녁준비할테니까 그런줄 알아요"
저는 연에게 그렇게 말했고, 부엌으로 들어가 앞치마를 하고 음식 준비를 하려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전 요리에 그렇게 특출나게 자신도 없는데 꼭 대단한것을 해줄것 처럼
말한것 같습니다. 머리를 끈으로 묶은뒤 냄비를 찾아 꺼냈을때, 연은 뒤에서 저를
안았습니다.
"나.. 힘들어.."
연은 그렇게만 말했습니다. 저는 조용히 그에게 안겨있었습니다.
이러면 안되지만, 연의 목소리는 정말 너무나 힘들어 보였습니다. 잠시 이렇게 있어주면
연이 힘들어 하는거.. 덜어줄수 있을까요..?
"그만.. 씻어요.."
저는 당황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연은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뒤에서 저를 끌어 안고 있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