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걸 잃는건..-
연은 그렇게 저를 계속해서 껴안고 있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집중할수가 없었습니다.
자꾸 이런다면, 계속해서 저도 힘들어지고 혁현이에게도 미안할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연에게 말했습니다.
"제발.. 이러지마요.. 이러면 우리둘다 힘들어져요.. 그니까.. 제발.."
연은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를 강하게 더 끌어 안았습니다. 저는
조금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말도 없는 연에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발.. 제발.. 절.. 놔주면 안되요.. 네..? "
연은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연은 얼굴을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습니다.
"이젠.. 놔줄수 없게 되버렸어..놔주면, 난 사라져.."
"놔줘요.. 우리.. 이번세상에선 우리는 아니에요.. 다음세상에서 만나요.. "
"아니.. 다음세상 그 다음세상 그 다음다음 세상에서도.. 우린 이번이 아니면 엮어질수가
없어... 난 알아.. "
연은 때를 썼습니다. 연은 놔줄수 없다고 했습니다. 연은 울고 있었습니다.
정말 서글프게 울고 있었습니다. 연의 눈물은 흘르고 흘러 제 목에 떨어졌고,
그 눈물의 감촉은 저를 더욱더 슬프고 힘들게만 했습니다.
"당신도 아프고 싶지 않죠..?"
"응.. 나도 아프고 싶지 않아.."
"그럼.. 놔줘요.. 놔줘야 당신이 아프지 않아요.."
"왜...?"
연은 말끝을 흐렸습니다. 저도 어느덧 눈물이 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에게
우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훌쩍이지 않았습니다. 눈물은
볼을 타고 계속해서 흘러 나왔습니다.
"왜냐면.. 당신이 놔주지 않으면, 저때문에 당신은 아파요.."
"그런 아픔이라면 난 얼마든지 아플수 있어.. 상처가 너때문에 나는거라면..
난 그 상처 하나까지도 사랑할꺼야.. 왜냐면.. 그건 너가 만들어준거니까.."
"제발... 이러지마요.."
연의 말은 늘 저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늘 감동했습니다. 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연이 살아오면서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연의
말을 듣고는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일단.. 놔요.. 놓고 씻고 나서 밥먹으면서 얘기해요 우리.. 네?"
"안되.. 절대 놓지 않을꺼야.."
"나도 배고파요.. 일단 이거 놓구 얘기해요.."
저는 연과의 대화도 불편했고, 연이 저를 안고 있는것 역시 불편했습니다.
연은 서서히 힘을 풀었습니다. 그리고는 절 안고 있던 팔은 서서히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연은 말했습니다.
"나.. 씻을께.."
연은 그러고는 뒤돌아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화장실문은 닫혔고 이내 문고리는
잠겼습니다. 저는 그때서야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전 늘 잘못만 하고 사는 인간 같았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연에게도 혁현이에게도.. 심지어 채연이한테 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 급기야 주저 앉으면서 까지 울었습니다. 너무나 미안했거든요.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서야 다시 일어나 밥을 할 준비를 했습니다. 계속해서 잘해주면
안되는거 아는데, 연에게 도움받은것부터 시작하면 오히려 저는 혁현이를 선택하면
안되는것 같았습니다. 옛사랑에 심취해 혁현이를 선택하고, 혁현이가
아직도 현정이인 저를 사랑한다는것 때문에 혁현이만을 바라보느라, 뒤에서
늘 울고 힘들어 하며 지쳐 쓰러져 있는 연을 볼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보았습니다. 연이가 저를 따라오며 얼마나 힘들었는 가를..
-눈물의 토요일밤-
그렇게 요리를 했습니다. 즐거울때 해도 잘 안되던 요리인데 이렇게 한바탕 울고
힘들때 해서 그런지, 요리는 더욱더 망쳐져만 갔습니다. 완성해놓고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았을땐, '과연 이게 요리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근데 화장실에서 연은 한참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화장실문을 두들겨 보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문고리를 돌려 보았을땐, 문은 잠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분명,
문이 잠겨지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말이죠.
"딸깍"
문을 열고 안을 보았습니다. 연은 정장을 입고 있었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씻지도 않았구요. 저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연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왜.. 씻지 않았어요.."
연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뭔가 무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연은 주머니를 뒤지더니 무언가를 꺼내고는
입에 넣고는 이내 삼켜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고마워.. 마지막에는 이렇게 잘해줘서.."
연은 이상했습니다. 마지막이라뇨.. 하지만 연은 웃고 있었습니다. 연은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그리고는 사탕을 까고는 입에 물었습니다. 여전히 그는 웃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연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눈이 왜이렇게 따갑지? 뭔가가 들어갔나봐.."
연은 눈물을 닦았습니다. 근데 연의 몸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연의 몸은 다리부터
서서히 연하게 변해버리더니 이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연의 다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몸통이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연이 입에 넣은건 인변환 이라는 사실을... 인변환은 사람이 되서 먹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말을 연에게 들은적이 있었습니다.
"아..안되요!!"
저는 연을 껴안았습니다. 연도 저를 껴 안았습니다. 하지만, 몸은 이내 사라졌고,
제 팔은 무언가를 안고 있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습니다. 팔을 조이면 조일수록
팔 안쪽의 공간은 좁아지기만 했습니다. 저는 연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연의 얼굴마저 흐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소리쳤습니다.
"안되!!!!"
하지만, 연은 사라져버렸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뿌연 수증기라도 되버린다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탁!"
연이 물고있던 사탕은 허공에서 툭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늘 연은
사탕을 먹고는 바닥에 튕겨깨부셔 버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사탕을 바닥에 부시는 일은 잊지 않았나 봅니다. 저는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깨진 사탕들을 손에 주워 담으며 흐느꼈습니다. 다시는, 연을
볼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을 그렇게 만든건 다 저의 잘못인것 같았습니다.
연이 저런 선택을 한건, 다 저때문인것 같았습니다. 아니 저때문입니다..
"흐흑.."
마지막 연의 막대사탕의 막대를 주어 들었을때,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그 막대에는
검정색의 깨알같은 글씨로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얼른 화장실에서 뛰쳐 나와
방안에 들어와서는 돋보기를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글자씩
읽어 내려갔습니다. 저는 더욱더 많은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연은 가슴에 와닿는 말을 하고 갔거든요..
'사랑이란건, 말로 표현 못할 행복이자 밝은 슬픔..'
울었습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모든 세상이 떠내려갈것 같이 울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울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울면 뒤에서 다가와 또 사탕을 물고
씨익 웃으며 저에게 다가올것 같았습니다. 제가 혁현이한테 갈수 있을때 까지
도와준건 연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도저히 있을수 없었을 텐데 말이죠.
전 이제, 연에게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저도 죽으면 연을 만날수 있는걸까요?
"아.."
생각이 났습니다. 연이 죽었다면, 지하세계로 갈것이 분명했습니다. 아무리 사라졌더라도,
분명 지하세계로 갈것 같았습니다. 전 집을 뛰쳐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학교까지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이상 뛰기 힘들고 폐와 심장이
터질듯했지만, 전 끝까지 참고 달렸습니다. 이대로 멈춘다면, 연은 저에게서
점점 멀어질것 같았습니다.
제가 도착했을때 학교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저는 들어가려고 마구 몸을 벽에 부딪혔지만,
들어가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급해졌습니다. 호흡은 불안정했습니다.
들어가고싶은데 들어가지지 않으니 울컥 눈물부터 흘렀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빨라진 호흡은 천천히 원상태로 돌아왔고,
마음을 가다듬고 손을 벽에 대자 손은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
벽안으로 들어왔고, 들어오자마자 2학년 12반 교실까지 무작정 달렸습니다.
2학년 12반 역시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아까보단 쉬웠습니다. 아까는 경황이 없었고, 정신도 없었습니다. 아까보다 빠른
시간내에 제 몸은 벽안을 뚫고 들어갔고, 사물함 문을 열어 제끼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연이 죽어도 변함 없는 지하세계는 늘 무섭고 음침한 분위기로
저를 맞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것이 아니었습니다. 뛰고 또 뛰었습니다.
문앞에 다가왔습니다. 연이 열때는 정말로 가벼워 보이던 그 철문은 오늘따라
정말로 무거웠습니다. 열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온힘을 다해 밀었을땐,
문은 천천히 열렸습니다.
"끼이이이.."
문은 천천히 열렸고, 헉헉대는 숨을 고를 시간이 없었습니다. 방안에는 연의 아버지가
되는 노인네가 앉아있었고, 저는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연이 어딨어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읽던 책을 옆에 두고는 말했습니다.
"없다.."
"네..?"
"지가 인간이 되서 인변환을 먹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래도 죽었잖아요.. 죽으면 여기 있어야되는거 아니에요..?"
그는 피식 웃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 그것도 자신의 아들이 죽은 상황인데도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뭐라할말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은것을 보니 정말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봐.."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보기에도 불편해보이는 덥수룩한 흰 수염과,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는 그는 힘들게 입을 열어 저에게 말했습니다.
"시체가 없는 죽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내 아들놈은 인변환이라는걸 먹고
사람이 결국 되버렸어, 그리고는 다시 인변환을 먹고는 시체도 없이 사라졌지...
그렇게 되면 그냥 바람이 되어 사라진단다.. 영혼마저 사라지거든.."
연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절망적이었습니다. 지하세계에 와도
연은 더이상 볼수 없었습니다. 지하세계에서는 연의 웃는 모습을 볼수 있었을것
같았는데 말이죠. 저는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서서히 눈이 감기기 시작했습니다.
형광등에 불이 나간듯 모든 세상은 깜빡 깜빡 들어왔다, 꺼졌다 했습니다.
결국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저는 눈이 감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