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기계 위에 게임 제목이 '스트리트화이터' '미드나이트' '1945' 등등 기억나네요. 그리고 담배연기 자욱한 구석탱이에 아저씨들 다리 꼬고 앉아서 빠찡코 인가요? 9칸 짜리 과일 그림 맞추는 그거. 아저씨들 전용 게임이었죠. 오락실 돈 다쓰면 동네 형들이랑 비비탄 총싸움 하고 꼭 비비탄 총싸움 하면 법칙이 가까이에서 만나면 절대 쏘기 없기 이러고.예전 생각에 잠시 잠겼네요. 84년생 입니다 ㅎㅎ
90년도 부터 92년도까지 신림5동 살았습니다. 당곡초등학교 다녔었구요 ㅎㅎ 그때 학교 끝나면 보라매 공원 가서 놀고 했었는데...그 앞에 소방서도 있었고 자그마한 슈퍼도 있었고. 신생교회도 있었고 신생교회에서 봉천동 가는 큰 길 따라서 조금만 걸으면 오락실도 하나 있었는데 자주 갔었네요. 이게 지금 기억이 생생하네요 ㅎㅎ
한지붕 세가족 드라마처럼 옹기 종기 모여 살던 차 들도 얼마 없어 골목길을 해가 저물도록 뛰어 놀던 추억 저녁이면 집집마다 지붕에서 모락모락 연기도 나고 문 밖 연탄불 있음 열기도 쬐고 연탄재 부셔서 우유곽에 넣고 손으로 치면 잿가루가 나가고 노란 기저귀 고무줄 앞부분에 볼펜 꼭지 달고 물총놀이 하고 우물물로 등목하고 이웃사촌이란 말이 실감나던 그 시절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뭘 하는지 삭막하기 까지 돌아가고 싶어요 그 곳에서 함께 놀던 친구며 형,누나들 어디서 무얼하는지 보고 싶어집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이땅의 5000년 역사에 가장 살기좋았던 시대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IMF전까지가 정말 살기좋은 시대라고 자부합니다
베이비부머세대들에겐 대학만 나오면 대기업에 그냥 입사되던 시대였고 물가도 비싸지않아서 물가비싸다라는 얘기가 전혀없던 시대였고 상고만 나와도 은행에 취업의 기회가있던 시대.
서민들도 상인들도 먹고살기좋은시절이었다라 하고 90년대 문화가 정말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이었죠.
아마 다시는 오지 않을 그런 시대일겁니다. 대한민국이 가장 찬란했던 90년대 초중반. 나의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시절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했던 낭만이 있고 문화가 있고 정이 있고 인간미가 있던 시대였죠.
지금보다 더 잘살게 된다 하더라도 다시올수 없을 순수하던 그시절.
일주일만 여행다녀왔슴 좋겠다란 생각.
일주일만 여행다녀왔슴 좋겠다란 생각.
기억이 생생하네요.. 어머니 지갑속 500원을 제가 그만...ㅋㅋㅋ
헉... 정말 멘붕이였습니다. ㅋ
운동선수 출입금지 붙인 식당이 많아졌죠
봉천동 .......아주 그냥
이땅의 5000년 역사에 가장 살기좋았던 시대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IMF전까지가 정말 살기좋은 시대라고 자부합니다
베이비부머세대들에겐 대학만 나오면 대기업에 그냥 입사되던 시대였고 물가도 비싸지않아서 물가비싸다라는 얘기가 전혀없던 시대였고 상고만 나와도 은행에 취업의 기회가있던 시대.
서민들도 상인들도 먹고살기좋은시절이었다라 하고 90년대 문화가 정말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이었죠.
아마 다시는 오지 않을 그런 시대일겁니다. 대한민국이 가장 찬란했던 90년대 초중반. 나의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시절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했던 낭만이 있고 문화가 있고 정이 있고 인간미가 있던 시대였죠.
지금보다 더 잘살게 된다 하더라도 다시올수 없을 순수하던 그시절.
미세먼지는 전혀 없던 시절임.
이모집 못찾아서 한참을 해맸던 기억이....가운데 백골단..90년대들어와서 백골단 이미지 개선한답시고 하이바에 청색으로 칠하고 사복중대 해체하고 사복소대로 소대단위로 운영했던 기억이 있네요 사진의 저분들은 아마도 의경기수 100대 분들 일꺼고 전경이면 다르겠지만 ㅎㅎ
95년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개발 한다고 이사했네요
지금 봉천동 거의 아파트 인데 엄청~~올랐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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