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로체 이노베이션 최고급형을 구입한 서울의 회사원 송모(31)씨는 지난 7일 차를 주차하려다 깜짝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핸들이 갑자기 뻑뻑해져 잘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1월 이모(30)씨도 유턴을 하려다 핸들이 잘 돌아가지 않게 됐다. 당황한 이씨는 차를 중앙선 중간에 걸친채 멈춰 세웠다. 시동을 껐다가 켜자 그제야 핸들이 원활하게 돌아갔다.
인터넷 자동차 동호회 '로체이노베이션'에서는 회원 20여명이 이와 비슷한 사례를 올렸다. 한 운전자는 "코너를 돌다가 핸들이 갑자기 무거워져서 두손으로 움켜쥐고 힘껏 돌려 간신히 사고를 모면했다"는 사연을 올리기도 했다.
이같은 문제가 소비자원에 접수되자 소비자원은 지난달 28일 '품질 개선 권고'를 공고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이는 최근 로체 이노베이션 2.4모델과 2.0스페셜 모델에 장착된 '속도감응형 파워 스티어링(EPS)'이 저속 상황을 고속상황으로 잘못 인식하고 핸들을 무겁게 만드는 문제라는것.
'속도감응식 파워 스티어링'이란 저속에서는 핸들을 가볍게 하고 고속에서는 핸들을 무겁게 해 안정성을 높이는 장치다. 기존에는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이 주로 사용됐지만, 로체는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이 사용됐다.
기아차는 소비자원의 권고를 받아들여 11월 8일부터 출고되는 차량에는 EPS시스템에 주변 전자파에도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장치(고주파 필터)를 개선하도록 하고, 기 출고차량 또한 차량 소유주가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 무상 수리받을 수 있도록 했다. 대상차량은 2005년 11월 1일부터 2008년 11월6일까지의 생산분인 3320대다.
그러나 대다수 소비자들은 이번 조치가 '리콜'이 아닌 '품질 개선 권고'에 불과해 미흡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향장치 작동이상은 사고와 직결되는데도 불구하고 문제를 알고 찾아오는 일부 소비자들만 수리해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차량 리콜을 담당하는 국토해양부 자동차정책과에서는 "안전기준에 부합되기 때문에 리콜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한국의 소비자들이 지나치게 민감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핸들의 조작에 대한 안전기준은 주행중 15kg·f 이내, 정지시 30kg·f 이내의 힘으로 조작할 수 있으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돼 있고 파워핸들의 작동 이상에 대한 안전기준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기아차측은 "최근 문제점을 파악했고 정비사업소나 협력공장 등에서 예약을 통해 수리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원 측은 "정비가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면 소비자들이 소비자원에 제보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며 "알려진 문제점을 감추지 말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비를 받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용기자 whynot@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