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임종직전이라 호흡도 제대로 못 하시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원에선 오늘 넘기기 힘드시다고 맘의 준비를 하시라고 하셨는데, 하필 그 담 날이 제 상견례 날이었거든요~
이미 예약을 해 놓은거라 날짜 변경도 어렵고 고민이 많던 차였는데, 할머니께서 괜찮으니, 상견례 잘 하라고 하셨고~
이틀 후 즉, 상견례 마친 다음날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주말에 지금의 아내와 병상에 계시는 할머니 찾아가서 결혼할 아내 될 사람이라고 할머니 건강 되찾으셔서 결혼식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해서 끄덕이며, 좋아하셨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상견례날 장례 치를까봐 할머니께서 도와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ㅜㅜ
많이 힘드셨을텐데 저의 어머니와 저를 위해 마지막까지 힘내주신게 아닐까 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임종직전이라 호흡도 제대로 못 하시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원에선 오늘 넘기기 힘드시다고 맘의 준비를 하시라고 하셨는데, 하필 그 담 날이 제 상견례 날이었거든요~
이미 예약을 해 놓은거라 날짜 변경도 어렵고 고민이 많던 차였는데, 할머니께서 괜찮으니, 상견례 잘 하라고 하셨고~
이틀 후 즉, 상견례 마친 다음날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주말에 지금의 아내와 병상에 계시는 할머니 찾아가서 결혼할 아내 될 사람이라고 할머니 건강 되찾으셔서 결혼식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해서 끄덕이며, 좋아하셨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상견례날 장례 치를까봐 할머니께서 도와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ㅜㅜ
많이 힘드셨을텐데 저의 어머니와 저를 위해 마지막까지 힘내주신게 아닐까 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나이들거나 병원에서 오늘 내일 하는 분들 아 죽기전에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혼해서 못본 손주 보고싶다 이러면 진짜 정말 오래 버팁니다. 어떻게 수소문해서 뎃구와서 손주왔습니다. 재롱떨고 할아버니 할머니 이러면 이젠 떠나도 여한이 없다 하며 바로 뒷날 돌아가십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사고가 나거나 내장이 다 파혈되고 혈액이 부족하더라도 쉽게 죽지 않는게 사람입니다. 사람 잘 못죽어요. 그런데 그 영혼처럼 그 기라는게 있는데 신체 멀쩡해도 혼이 다 빠져버리면 갑자기 죽는 경우도 흔합니다. 신체 멀쩡한 사람이 왜 하루아침에? 이럼
부모님 맞벌이라서 어렸을때부터 외할머니께서 키워주셨는데 임종때 산소호흡기 꼽고 계시는거 귓속에다가 울면서 계속 할머니 빨리 일어나시라고.. 왜 그러고 계시냐고.. 그렇게 힘들게 버티시다 깨어나셔서 5~6 년 더 사시다가 동생 장가 가는것까지 보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믿겨지지가 않네요
위 교수님은 제가 보았던 얼마 안되는 참 교수님 이십니다.
저희 어머니가 갑자기 몸이 안좋아 병원에 갔더니 다른 병원에서 말기암 판정을 받고 서울대병원에 가서 위 교수님에게 진찰을 받고
처음 병원에서 말기암에 전이가 많이돼 힘들거 같다고 하셨었는데 지금 6년째 살아계십니다.
환자들을 위로 하고 치료를 의학뿐만이 아닌 심적인 부분도 많이 케어 해주십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티비로 보니 더 반갑네요 ^^
저희 아버지가 저러셨어요.
제가 군대가서 제대 6개월 남기고 교통사고로 의식잃고 뇌수술 4번 받고 식물인간 되셨어요.
부대에서 연대 전투력측정으로 강원도 산골 오지에서 연락 받고 급하게 집으로 갔죠.
그때까지 상태를 몰랐는데 강골에 키도 크시고 늘 웃는 얼굴이셨던 아버지.... 충격적이었습니다.
다행히 휴가 기간동안 변화는 없으셨고 제대하는 날 군복입고 병원에 들렀습니다.
아버지께 귓속말로 저 제대했습니다. 말씀전했고 그날 저녁 아직 군복도 못 갈아입었는데 돌아가셨어요.
6개월을 버티셨던겁니다.
저는 사실 면제 대상이었는데 아버지가 남자새끼가 사지 멀쩡한데 군대를 안가면 안된다면서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입대시켰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제대할때까지 기다리신게 아닌가 합니다.
하나뿐인 막내 아들 등떠밀어서 군대 보내고 그렇게 무사히 제대하는 모습이 보고 싶으셨나봅니다.
명절 이틀 후에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 많이 나네요
손주들이랑 사진도 찍고 인사하고 돌아갈때 어느때보다 밝게 웃어 주셨던... 다음에 올때 일미채 먹고 싶다고 사오라고 하셨는데..
급하다는 연락 받고 갔더니 몇초 간격으로 힘겹게 뛰고 있던 맥박.. 귀에 대고 사랑한다고 수고 많으셨다고 말씀드렸더니 편안한 모습으로 천국 가셨네요
저는 아버지 돌아가셨을때 장례식에서 아버지 직원차 타고 삼성의료원으로 사망진단서 다시 떼러 가는길에 비가 저희 차가 달리는곳만 내리는거 보고 너무 놀랬어요 옆차선봐도 비가없는데 우리차선만 그리고 장례식에 왔던 체형도 생일도 같은반인데 빠른년생에 같은날 저희 장례식에 왔다가 동생이 갑작스레 죽더라고요 그때 많이 놀랬죠
저희 외할머니께서도 그러셨어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해서 다들 맘 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정말 가실것 같은데 버티시고 계셨었어요.
이틀뒤가 이모의 아들 결혼식이었는데 만약 할머니가 돌아가심 이모는 장례식 때문에 결혼식을 못 갈수도 어쩌면 결혼식을 못할수도 있었는데 결혼식 이틀전에 할머니가 이모꿈에 나오셔서 걱정말라고 결혼식하게 해줄테니 걱정말라 하셨고 외할머니는 이모 아들 결혼식날 오후에 시간으로 따지면 예식이 끝날 시간에 돌아가셨어요.
님 글 읽으니 살아계심 올해로 꼭 100세가 되신 우리 김임순외할머니가 참 그립네요.
제 동생도 그랬네요.
난소암과 합병증으로 몇년 고생하다 더이상 가망도 없고 더 이상의 치료도 의미가 없다고해서 동생이 집에가고 싶다고..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 먹고싶다고.. 그렇게 퇴원해서 집에 도착했는데.. 아파트 입구 계단 하나 있는거 그거 혼자갈 수 있다고 오르다가 주저 앉아버렸죠..
또다시 응급실행.. 거기서 이틀인가 버티다가 마지막을 예감하고 일반병실 1인실로 올라갔어요..
저도 밤까지 같이 있다가 내일이 또 출근이라 집에가면서 낼 조카데리고 같이올께 하고왔어요.
담날 아내와 11개월 딸과 같이 병문안갔죠.
아무것도 모르는 딸은 고모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활짝 웃어주었습니다.
그러고 집에와서 애 씻기고 나도 씻고 나왔는데 부모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빨리오라고..
결국 동생은 그렇게 좋은곳으로 갔어요..
그렇게 이뻐하던 조카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어서 그렇게 힘들게 기다렸을꺼에요. 그게 기적이죠.
딸 크면 고모 얘기 많이 해줄꺼에요.
조카를 너무 예뻐해서 수호천사 해줄려고 하늘에 갔다고..
저는 지금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고 계세요. 혈압이 50/35까지 떨어져서 응급실로 입원했고, 아무리 연세가 있으시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하나 멀쩡한 곳이 없으시네요. 뇌경색, 심혈관 질환, 당뇨, 저혈압, 방광암, 요로감염, 폐렴, 천식, 척추신경누름까지.... ㅠㅠ
어머니가 10여년전 사고로 거동이 많이 불편해지셨고, 치매 초기 진단 받으셨죠. 오롯이 10여년 간병하며 지내시다 정작 어머니는 멀쩡한데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게 생겼어요. 어머니 간병 그만하시고 요양병원 보내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사실 어머니는 제 친어머니가 아니시라 말씀을 못드렸어요. 그게 가장 후회가 되네요. 저도 이기적인 인간이라 내 아버지 아픈것만 걱정이 되다보니 어머니 원망을 안할수가 없네요 ㅠㅠ 그분 잘못은 아닌데....
아끼던 사촌동생도 쓰러져서 의식없이 병원에서 6달을 보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눈뜨더니 며칠간 엄마 언니 오빠 키워주신 외할머니... 그리고 저도 운좋게 얼굴보고 저 다녀가고 이틀뒤 엄마 품에서 눈을 감았죠...
마치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 같았지요. 기적이었어요.
아가야 많이 보고싶다. 오빠도 나중에 이 꼬마들 잘 키워놓고 갈께 꼭 마중나오혐~
큰누님 췌장암으로 가시기전에 이틀 동안 기적적으로 말도하고 음식도 섭취하고.. 남겨진 자식들에게 인사하고 가려고 그랬나 봅니다. 정말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부분들이 일상에서 종종 일어나죠. 모두 건강합시다~
외할머니께서 임종직전이라 호흡도 제대로 못 하시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원에선 오늘 넘기기 힘드시다고 맘의 준비를 하시라고 하셨는데, 하필 그 담 날이 제 상견례 날이었거든요~
이미 예약을 해 놓은거라 날짜 변경도 어렵고 고민이 많던 차였는데, 할머니께서 괜찮으니, 상견례 잘 하라고 하셨고~
이틀 후 즉, 상견례 마친 다음날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주말에 지금의 아내와 병상에 계시는 할머니 찾아가서 결혼할 아내 될 사람이라고 할머니 건강 되찾으셔서 결혼식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해서 끄덕이며, 좋아하셨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상견례날 장례 치를까봐 할머니께서 도와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ㅜㅜ
많이 힘드셨을텐데 저의 어머니와 저를 위해 마지막까지 힘내주신게 아닐까 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폐혈증으로 체온이 너무 높아 사람 못 알아보고
돌아가시기 전에 누나만 알아 보셨어요. .
의사가 사람들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어 보는데
다 못 알아 보고 누나만 "우리 이쁜 딸래미" 라고
알아 보더라구요. .
지금 서른 중반을 넘어가는데 아빠 너무 보고 싶네요
낚시도 같이 가고 소주도 한잔 하고
하고 싶은거 너무 많은데. .ㅠ
큰누님 췌장암으로 가시기전에 이틀 동안 기적적으로 말도하고 음식도 섭취하고.. 남겨진 자식들에게 인사하고 가려고 그랬나 봅니다. 정말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부분들이 일상에서 종종 일어나죠. 모두 건강합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애기들 나두고 어찌 갑니까 눈물날라하네 ㅠㅠ
가장 슬픈 이별이네요‥
다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외할머니께서 임종직전이라 호흡도 제대로 못 하시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원에선 오늘 넘기기 힘드시다고 맘의 준비를 하시라고 하셨는데, 하필 그 담 날이 제 상견례 날이었거든요~
이미 예약을 해 놓은거라 날짜 변경도 어렵고 고민이 많던 차였는데, 할머니께서 괜찮으니, 상견례 잘 하라고 하셨고~
이틀 후 즉, 상견례 마친 다음날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주말에 지금의 아내와 병상에 계시는 할머니 찾아가서 결혼할 아내 될 사람이라고 할머니 건강 되찾으셔서 결혼식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해서 끄덕이며, 좋아하셨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상견례날 장례 치를까봐 할머니께서 도와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ㅜㅜ
많이 힘드셨을텐데 저의 어머니와 저를 위해 마지막까지 힘내주신게 아닐까 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마 아이들을...소중한 사람들을 떠나가긴 싫뎄지만....
가시는 그날까지 가족 걱정하는 환자분들보면 눈물이 ㅠㅠ
폐혈증으로 체온이 너무 높아 사람 못 알아보고
돌아가시기 전에 누나만 알아 보셨어요. .
의사가 사람들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어 보는데
다 못 알아 보고 누나만 "우리 이쁜 딸래미" 라고
알아 보더라구요. .
지금 서른 중반을 넘어가는데 아빠 너무 보고 싶네요
낚시도 같이 가고 소주도 한잔 하고
하고 싶은거 너무 많은데. .ㅠ
그 상사녀석 인정머리라곤
용을 쓰신다... 이렇게 친척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사고가 나거나 내장이 다 파혈되고 혈액이 부족하더라도 쉽게 죽지 않는게 사람입니다. 사람 잘 못죽어요. 그런데 그 영혼처럼 그 기라는게 있는데 신체 멀쩡해도 혼이 다 빠져버리면 갑자기 죽는 경우도 흔합니다. 신체 멀쩡한 사람이 왜 하루아침에? 이럼
저희 어머니가 갑자기 몸이 안좋아 병원에 갔더니 다른 병원에서 말기암 판정을 받고 서울대병원에 가서 위 교수님에게 진찰을 받고
처음 병원에서 말기암에 전이가 많이돼 힘들거 같다고 하셨었는데 지금 6년째 살아계십니다.
환자들을 위로 하고 치료를 의학뿐만이 아닌 심적인 부분도 많이 케어 해주십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티비로 보니 더 반갑네요 ^^
당일 새벽부터 병원서 전화 오고,,, 이제 곧 돌아가신다고,,,알았다고 하고 일을 마치는데..
사실 오래 걸림...
근데 도착하니 아직 그상태로 계셨고,,,,, 제가 3일은 병원에 같이 있을라고 했는데....
그날 천국 가심 ㅜㅜ 에고.................
호흡기능은 멈춰도
마지막 최후멈추는기관 뇌기능 5분여는 정상작동되요 ㅜ ㅜ
그때까지 들을수 있어요
마지막때는 하나하나 붙잡고 유언까지 하셨는데
참 알다가도 모르는게 사람 명줄인듯
아픈 사람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고령자로 인해
젊은세대들 부담도 만만치 않구요....안그래도
저출산 시대인데....
그럴때만 휴머니즘 ㅎ
연명치료 수가 개꿀이라
그담 종교계 돈줄끊어지니
반대하죠
좀 모르면 가만히 계세요
제가 군대가서 제대 6개월 남기고 교통사고로 의식잃고 뇌수술 4번 받고 식물인간 되셨어요.
부대에서 연대 전투력측정으로 강원도 산골 오지에서 연락 받고 급하게 집으로 갔죠.
그때까지 상태를 몰랐는데 강골에 키도 크시고 늘 웃는 얼굴이셨던 아버지.... 충격적이었습니다.
다행히 휴가 기간동안 변화는 없으셨고 제대하는 날 군복입고 병원에 들렀습니다.
아버지께 귓속말로 저 제대했습니다. 말씀전했고 그날 저녁 아직 군복도 못 갈아입었는데 돌아가셨어요.
6개월을 버티셨던겁니다.
저는 사실 면제 대상이었는데 아버지가 남자새끼가 사지 멀쩡한데 군대를 안가면 안된다면서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입대시켰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제대할때까지 기다리신게 아닌가 합니다.
하나뿐인 막내 아들 등떠밀어서 군대 보내고 그렇게 무사히 제대하는 모습이 보고 싶으셨나봅니다.
손주들이랑 사진도 찍고 인사하고 돌아갈때 어느때보다 밝게 웃어 주셨던... 다음에 올때 일미채 먹고 싶다고 사오라고 하셨는데..
급하다는 연락 받고 갔더니 몇초 간격으로 힘겹게 뛰고 있던 맥박.. 귀에 대고 사랑한다고 수고 많으셨다고 말씀드렸더니 편안한 모습으로 천국 가셨네요
살아계실때 자주뵙고 효도하세요
진짜보고싶네요 그립구 할머니랑찍은사진도없구 ㅜㅜ
돌아가시기 전날 병원에서 가망없다고 인사할 식구들 다 모이라고해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진짜 가족들 다모였는데
마지막 친동생분 보시고는 돌아가셨음
임종 직전에 막내손주 옆에 있으니깐..
한번만 보고 가라 몇번 말했더니..
눈을 갑자기 뜨시더니 ..
다시금 감으시고..
가셨어요 .. 생생히 기억에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해서 다들 맘 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정말 가실것 같은데 버티시고 계셨었어요.
이틀뒤가 이모의 아들 결혼식이었는데 만약 할머니가 돌아가심 이모는 장례식 때문에 결혼식을 못 갈수도 어쩌면 결혼식을 못할수도 있었는데 결혼식 이틀전에 할머니가 이모꿈에 나오셔서 걱정말라고 결혼식하게 해줄테니 걱정말라 하셨고 외할머니는 이모 아들 결혼식날 오후에 시간으로 따지면 예식이 끝날 시간에 돌아가셨어요.
님 글 읽으니 살아계심 올해로 꼭 100세가 되신 우리 김임순외할머니가 참 그립네요.
명절을 넘기기 힘들꺼라고..하지만 한달넘게 버티시고 매일 내일올께 하면 그래 인사하셨던분이 힘드니까 안와도 된다고 가시는날 인사가 이따가와...그날이 마지막 이었습니다.. 아버지.....이따가와....
난소암과 합병증으로 몇년 고생하다 더이상 가망도 없고 더 이상의 치료도 의미가 없다고해서 동생이 집에가고 싶다고..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 먹고싶다고.. 그렇게 퇴원해서 집에 도착했는데.. 아파트 입구 계단 하나 있는거 그거 혼자갈 수 있다고 오르다가 주저 앉아버렸죠..
또다시 응급실행.. 거기서 이틀인가 버티다가 마지막을 예감하고 일반병실 1인실로 올라갔어요..
저도 밤까지 같이 있다가 내일이 또 출근이라 집에가면서 낼 조카데리고 같이올께 하고왔어요.
담날 아내와 11개월 딸과 같이 병문안갔죠.
아무것도 모르는 딸은 고모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활짝 웃어주었습니다.
그러고 집에와서 애 씻기고 나도 씻고 나왔는데 부모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빨리오라고..
결국 동생은 그렇게 좋은곳으로 갔어요..
그렇게 이뻐하던 조카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어서 그렇게 힘들게 기다렸을꺼에요. 그게 기적이죠.
딸 크면 고모 얘기 많이 해줄꺼에요.
조카를 너무 예뻐해서 수호천사 해줄려고 하늘에 갔다고..
어머니가 10여년전 사고로 거동이 많이 불편해지셨고, 치매 초기 진단 받으셨죠. 오롯이 10여년 간병하며 지내시다 정작 어머니는 멀쩡한데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게 생겼어요. 어머니 간병 그만하시고 요양병원 보내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사실 어머니는 제 친어머니가 아니시라 말씀을 못드렸어요. 그게 가장 후회가 되네요. 저도 이기적인 인간이라 내 아버지 아픈것만 걱정이 되다보니 어머니 원망을 안할수가 없네요 ㅠㅠ 그분 잘못은 아닌데....
마치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 같았지요. 기적이었어요.
아가야 많이 보고싶다. 오빠도 나중에 이 꼬마들 잘 키워놓고 갈께 꼭 마중나오혐~
ㅠㅠ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