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전기차에 아주 회의적이다. 초등학교 때 석유는 분명 50년 내에 고갈될거라 배웠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는데, 석유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퍼올려진다.
내연기관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연기관이 종말을 고하고, 전기차를 탈 수 밖에 없는 시기가 올 것은 분명하다. 설령 남아있더라도, 배터리의 작동 비중이 더 높은 하이브리드 차량이거나, 석유가 아닌 수소 같은 대체재를 태울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마니아들에겐 끔찍한 재앙이 될지 모르겠다. 굳이, 언젠가 탈 수 밖에 없는 전기차를 지금부터 탈 필요는 있을까. 여전히 충전은 불편한데 말이다.
그럼에도 전기차를 사겠다고 결심했다면, 쏘울 부스터 EV를 한 번쯤 눈여겨봤으면 한다. 주행거리도 길고, 지루한 충전 시간을 즐길 거리도 있으며, 공간도 코나보단 넓다.
■ 정체성에 맞는 위트있는 구성
현대차가 코나 아이언맨 에디션을 내놨지만, 사실 아이언맨의 마스크는 쏘울과 좀 더 비슷하다. 슬림하게 구성된 헤드램프와 잔뜩 각이 진 전면부의 디자인 포인트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밌는 디자인이다. 전면부를 바라보자니, 그릴과 헤드램프의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기아차의 얼굴인 ‘호랑이 코’는 전면부를 따라 그 흔적만이 남았고, 조명의 위치를 봐도 어디가 미등이며, 어디가 방향지시등인지 감도 안온다.
측면부에선 쏘울 고유의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묻어난다. 경쟁 차종들이 영락없는 ‘박스카’였지만, 새로 다듬어진 쏘울의 외관은 SUV와 해치백 그 어디쯤에 머물러있는 듯 한 모습이다. 형식을 단정할 수 없지만, ‘크로스오버’ 하면 딱 떠오르는 모습.
뒤는 조금 과하다. 테일램프의 형상이 뒷유리 상단까지 자리잡았다. 물론 실제로 저곳까지 점등되진 않는다. 다른 차에서 봤다면 상당히 괴상했겠지만, 쏘울 특유의 아이코닉한 이미지와는 잘 맞는 것 같아 보인다.
실내는 기존의 쏘울 부스터와 큰 차이를 갖지 않지만, 다이얼 식으로 구성된 기어노브와 전기차에 특화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구성이 주된 차이다.
디스플레이는 차량의 배터리 상태와 주행 가능거리, 인근의 충전소 정보를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내비게이션과 연동돼 경로 내 충전소의 사용 가능 유무도 함께 안내한다.
충전 상황에서 차 내의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기능도 포함됐다. 이는 충전 시 스타트 버튼을 한번 누르는 것으로 작동되는데,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라디오, DMB, 블루투스 스트리밍 등의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즐길 수 있다.
키가 큰 크로스오버의 특성상 공간적 측명도 충실하다. 넉넉한 헤드룸이 주는 여유는 코나, 아이오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하다. 2열 공간도 일반적인 준중형급 차량보다 비슷하거나 넓은 수준.
■ ‘이름값’ 하는 주행 성능
쏘울 부스터 EV의 가속 성능은 이름값을 한다. 정말 ‘부스터’를 쓰는 것 같다.
장군님이 쓰신다던 축지법, 혹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차원 이동 같은 가속감이다. 그만큼 빠른 가속 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최대토크가 즉시 발휘되는 전기차의 특성상 가속 페달에 조금만 힘을 더 주더라도 이는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쏘울 부스터의 배터리 용량은 64.0kWh. 모터의 최대출력은 150.0Kw이며, 토크는 40.3kg.m에 육박한다. 완전 충전 시 주행 가능거리는 386km.
스포츠 모드를 기준으로 할 때, 정지 상태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는다면, 타이어의 비명 소리와 함께 불과 몇 초 앞을 미리 가 있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가속 성능을 즐기려니 고통받는 건 당연히 타이어다.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구름 저항이 적은 타이어는 폭발적인 토크를 받아내기엔 다소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렇게 된다면 더 많은 전기를 소모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넉넉한 주행거리 탓에 큰 걱정은 안든다. 얼마든지 안심하고 속도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철없는 남자들의 장난감’ 그 자체로서도 충분하다.
차체 하단에 깔린 배터리가 영향을 미치는 것일지. 껑충한 차고를 갖고 있지만, 무게 중심은 생각보다 낮다. 타이어만 잘 버텨준다면, 즉각적으로 발휘되는 토크를 이용해 제법 재밌는 운전을 할 수 있다.
효율성도 좋다. 제원상 주행가능거리는 분명 386km인데, 고속도로 주행이 빈번해지니 주행 범위는 점점 늘어난다. 발이 아닌, 고속도로 주행보조 시스템에 운전을 맡기면 보다 효율적인 운전이 가능한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고속도로 주행 기준 50%의 배터리가 남은 상황에서의 주행거리는 약 250km. 이론 상으론 완충시 500km를 탈 수 있다는 뜻이다.
■ ‘박스카’가 주는 공간감이 강점
길게 시승기를 쓸 필요도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여느 건전지회사의 카피처럼, 쏘울 부스터 EV는 힘 세고 오래간다. 여기에 넉넉한 주행거리와 강력한 가속 성능, 상응하는 운전재미는 덤이다.
시내 주행 빈도가 많다면, 이보다 저렴하고 주행거리가 짧은 경제형 모델을 선택해도 충분할 것 같다. 이제 전기차 충전소는 제법 찾기 쉬워졌고, 점차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코나가 너무 작다면, 쏘울 부스터 EV를 적극 권하고 싶다. 테슬라 모델X까진 아니어도, 어린 아이를 둔 가정이라면 충분히 고려될만한 가족을 위한 전기차다.
박홍준 기자 hjpark@dailycar.co.kr
출처-데일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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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차처럼 한박자 느린 가속감이 아닌 악셀에 힘주는 순간부터 최고 토크가 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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