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지독한 불면증과 두통이 삶을 망가뜨리고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미안합니다."
'민중의 지팡이'로서 20년 넘게 성실하게 일해온 경찰관이 근무 중 당한 불의의 교통사고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
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전남 영암군 모 치안센터에 근무하던 A 경위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2001년 12월 26일 오전 6시 50분께였다.
당시 파출소 근무 중 국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신고를 받은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신속하게 현장에 출동해 사고
처리를 하고 있었다.
이때 얼어붙은 길을 달리던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면서 그를 덮쳤다.
중태에 빠진 그는 머리 수술 등을 받고 간신히 회복했지만, 병가와 휴직 후 업무에 복귀하기까지는 꼬박 1년 6개월이
걸렸다.
이후 인사상 배려로 비교적 업무부담이 적은 파출소 등으로 발령받아 경찰관 생활을 이어가 지난해 3월 근속승진으로
경위 계급장을 달기도 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지독한 교통사고 후유증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는 퇴직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고등학생이 된 큰딸 등 세 자녀와 1989년 입문 때부터 다져온 사명감을 생각하면
경찰관직을 포기할 수 없었다.
대신 삶을 포기하고 말았다.
A 경위는 22일 오전 7시 40분께 영암 모 치안센터 숙직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동료 경찰관에게 발견됐다.
그는 지난해 9월 이곳으로 발령받아 혼자 근무하면서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숙직실에는 "지독한 불면증과 두통이 삶을 망가뜨리고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내용의 유서도 남겼다.
동료 경찰관은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도 직원들을 보면 '어이, 고생하네'라고 먼저 인사했던 소탈한 경찰관이었다"며
"사고 후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까지 돌았던 분이 업무현장에 복귀해 반가웠는데 다시 이런 일이 생겨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손상원 기자 sangwon700@yna.co.kr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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