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면 데릴사위는 아니고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위입니다.
어린시절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뭐....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뿐이고...
어찌하다보니
부모의 빈자리를 끌어안고
트라우마처럼 살아온 어린시절.
어렵게 만난 와이프는 삼형제중 둘째.
넉넉치 않았던 삶이다보니
장인장모님은
큰딸과 함께 살다가 다시 막내아들과 함께 살다가...
부침이 많으셨던 두분을
"내가 모시면 안되겠니?"
라며 조심스럽게 와이프에게 말하던날.
당황하며 내눈치를 보던 와이프의 눈을 기억합니다.
어려서부터
나의 꿈은
'가족'이란 단어였고
'행복한가족'이 최종 꿈이었는데
장인장모님을 모시면서 이 마지막 꿈을 맞출수 있을거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완성되었습니다.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늘 북적거리는 삶을 희망했기에 가능한것 같구요.
생각보다 와이프가 너무 고마워하고
저에게 늘 잘하려고 애쓰는게 보여서
은근 꿀입니다 ^^;;
저는 장모님에게 어딜가나 늘 자랑거리인 사위입니다.
말없는 장인어른에겐 늘 든든한 사위입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ㅎㅎ
"아버지"
"엄마"
이 호칭으로 살아온지 10년...
사위는 아들이 될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될수 있습니다.
오래오래 함께 살았으면 좋겠네요~
아줌마 아저씨로 시작한 호칭이 어머님 아버님으로 바꾸는게 쉽지 않던때도 있었고
저희 엄마 저 결혼전에 암투병하고 돌아가시기전 예비 장인 장모님 병문안 오셔서 장모님께서 저희 엄마 손 꼭 잡고
아들처럼 챙길테니 걱정마시라고 눈물 훔치면서 말씀 하시는데 그때 저희 엄마가 너무 감사하다고 마음이 편하다고
하시는거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엄마 장례치르고 결혼하고 사위들 모아놓고 (제 위로 동서 두명) 너희는 엄마가 둘이고 막내는 엄마가 나 한명이니
막내 편애한다고 해서 서운해하지 말아라. 라고 말씀하심..
엄마가 나 한명이라는 그 말씀이 너무 감사하더라구요.
아직도 엄마 엄마 하진 못하지만 엄니 엄니 하면서 모자처럼 지내고는 있습니다.
물론 결혼전부터 동서들보다 저 엄청 챙기셨고 아들없는 한을 저 한테 다 푸신다고 남자옷 멋있는걸 사주고싶어도
입을사람이 없었다며 엄청 사주시고 먹을것 챙겨주시고ㅎㅎ
장인어른도 아들처럼 대해주시고요. 두분 돌아가실때 진짜 저희 엄마 돌아가실때만큼 울것같습니다.
당연히 장인장모님 제가 모셨죠.
장모님도 외동입니다.
장인께선 혈액암으로 제가살던 집을 팔게 만드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치료비로 한3천 쓴걸로 기억합니다.
처 할머니께선 치매로 7년을 살다 돌아가셨습니다.
그 비용...요양병원비,장례비...제가 부담하고 상주노릇 했습니다.
장모께선 몇해전 자궁암 진단으로 수술하시고 현재 당뇨,고혈압,골다공증을 앓고 계십니다.
그래도 여지껏 십수년을 살며 불만한번 없었습니다.
그냥 오롯이 비용적인 문제를 혼자 감당해야 할때 부담은 되었지요..
처가엔 돈이 없습니다.
장인께서 사업을 하시다...사업이랄것도 없고 그냥 가게정도..시원하게
말아드시고 제 결혼당시 집사람이 벌어둔 돈으로 전세방정도 얻어살
그런 형편이었습니다..고로 돈이나 유산을 바라고 한게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집사람마저 아픕니다.
8년전 발병한 우울증,공황장애 그 스트레스를 먹는걸로 풀다보니 뒤따라온 당뇨와 합병증..더구나 작년 초 발병한 뇌전증까지..
돌아버릴 지경입니다..그래도 가장인 제가 버텨야 하기에 아무렇지 않은듯 웃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어디 하소연 할데도 없고 할수조차 없는 심정 아실런지..
장모께선 혹여라도 당신딸 버릴까봐 눈치보며 사는게 뻔히 보이고
집사람은 자다가도 일어나 주여주세요,죽고싶어요 울고있고..
애들에게 그런거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나 머리들이 커놓으니 슬슬
엄마라는 존재를 기피하려는거 같아보이고..
하~답답한 인생이네요.
그래도 전 다음생에서 다시 결혼한다면 이 여자와 다시 하겠습니다.
제가 아니면 누가 이 화상을 돌봐 주겠습니까..
다 제 업보려니 생각하고 인생 마칠때까지 곁에두고 지키렵니다.
쉬운게 아닌데..
찾아보니깐 주체가 다르네요
쉽지 않으실텐데 멋지십니다!
항상 건강하게 알콩달콩 사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행복하게 정말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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