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일본 못가서 안달나고, 머 사올지 물어보는 사람들 많습니다. 네이버, 다음 카페들 보면 다들 장난아니던데요
저도 카페에 가입되어 있어서 들어가서 보면 참 민망하더군요, 정중히 댓글 남겼다가 정지 먹었습니다.
분란글 남겼다고... 저 부터 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
1. 고려왕조는 스스로 송나라에게 조공과 책봉을 하겠다고 요청했다. 이에 송나라는 북방 오랑캐들에게 오해를 받을까(송과 고려의 군신관계) 난감해 했다.
2. 조선은 이성계가 건국하면서부터 명나라의 속국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조선이라는 국호(國呼)도 명나라가 정해준것이다. 이성계는 조선과 화녕이라는 두개의 국호를 들고 명황제에게 국호를 정해달라고 읍소하였다. 명황제는 아침에 일어나는 나라라고 하여 조선으로 국호를 정해주었다. 이성계는 매우 기뻐하면서 대조지은(大造之恩)이라고 칭하였다. 국호를 타국에서 만들어준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조선밖에 없었다.(조선은 명나라의 식민지였다는 명백한 증거중에 한가지)
3. 조선은 공식적으로 '유명조선국(有明 朝鮮國)'을 통해 스스로 명나라의 식민지임을 자처했고 자랑스러워 했다.
4. 조선은 스스로 기자조선(箕子朝鮮)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5. 조선은 독자적 칭호가 아닌 '왕' 을 사용했다. 여기서 "왕" 은 황제국인 명나라의 속국중에 왕을 의미했다.
6. 조선궁궐은 명나라의 문양인 용문양을 새겨넣을 수가 없었다.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받들어야 하기 때문이였다.
7.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 말은 이것은 중국 왕조가 조선에게 주어진 말이다. 즉, "중국의 속국으로서 예절을 다한 나라" 이다.
8. 명나라는 조선을 순이(順夷) 라고 불렀다. 즉, 명나라에 순종하는 오랑캐라는 뜻이다. 여러 속국(북적, 서융, 남만)들중 중원의 한족에게 반란을 일으킨적이 없는 유일한 식민지가 바로 조선이였다.
9. 조선 사대부들은 조선의 주인은 명나라 천자(天子=황제)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 광해군은 이런 말을 하는 사대부들을 매우 언짢게 여겼다.
10. 조선의 영은문(迎恩門), 모화관(慕華館)은 명나라의 식민지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대외적으로 선포한 건축물이다.
11. 조선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명나라 천자의 허락이 반드시 필요했다. 세자 선정도 명나라가 정해주었다. (후궁들은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시키기 위해 명나라 사신들에게 뇌물을 바쳤다)
12. 명/청나라는 조선의 왕비나 왕태자 폐립에 이르기까지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조선의 정치를 실질적으로 지휘 감독하고 있던 것은 명/청나라 대신(大臣)들이었다.
13. 명/청나라 사신이 오면 조선왕은 고관들을 거느리고 영은문(迎恩門)까지 영접을 나가 무릎을 꿇고 사신들에게 경의를 표시하고 연회를 개최하여 극진히 접대해야 했다. 조선 세자는 모화관(慕華館)에서 명/청나라 사신들에게 예를 올리고 읍소를 했다.
14. 임진왜란시 명군이 파병되자 전작권은 명나라에게 넘어간다. 명나라는 조선을 제외시키고 일본과 전후 조선에 대해 강화협상을 했다. 조선에겐 주권이 없었고 전작권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면 조선은 식민지라서 종주국 명나라가 강화 협상에 참여하는것을 뒤에서 보고만 있을수밖에 없었다.
15. 금나라 누르하치는 조선이 명나라 속국임에 시비를 걸고 정묘호란을 일으킨다.
16. 정묘호란/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청과 군신(청나라는 임금 / 조선은 신하) 관계를 맺었다. 이때 인조는 명황제가 있는 서쪽을 향해 절하며 울부짓으며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오랑캐)의 식민지가 되는것에 대해 자괴했다고 한다.
17. 조선은 동남아, 서양, 인도 등 외국과 직접적인 물자 교역을 하지 못했고 오로지 명나라를 통해서만 대리 교역을 하였다. 왜냐면 명나라가 종주국인 명을 통해서만 교역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18. 조선은 해마다 종주국인 명나라에게 조공을 했다. 고대시대는 독립적인 국가들끼리는 절대로 조공거래는 하지 않았다. 고로 조선은 100% 중국의 조공국이자 속국였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효기심 참조)
19. 조선시대 최고 문인 '송강 정철' 도 자신이 죽자 묘비에 "명나라를 섬기자" 라고 새겨놓았고 속리산 화양동 계속에 명황제 제사를 지내주는 '만동묘' 에는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 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조선의 하늘과 땅은 명나라 것이고 조선의 해와달도 명나라 것이다" 라는 뜻이다.
20. 명나라가 관우한테 제사를 지낼 사당을 지으라고 명령하자 조선은 즉시 2년만에 동묘/남묘/북묘/서묘를 지어 명나라에 충성을 보였다 (지금도 동묘는 보물 142호)
21. 명나라 군이 8년간 조선에 주둔하면서 닥치는대로 성폭행과 약탈, 살인을 했으나 조선의 조정은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명군이 오면 조선농민들은 귀중품을 땅에 묻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오죽했으면 조선농민들은 왜군을 더 반겼다고 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22. 숙종은 대보단(大報壇)이라는 명나라 황제를 위해 제사지내주는 제단을 만들고 사대부들은 종주국인 명나라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고 맹세를 한다. 망한지 200년이나 넘게 타국을 위해 제사를 지내 주었던 나라는 세계사에서 조선이 유일했다. 조선은 스스로 명나라의 식민지였음이 행복했다는 증거다.
23. 갑신정변 14개조 정강에는 '청나라 와의 사대관계 폐지와 독립' 을 촉구했다.
24. 서재필의 독립협회와 독립문에서 "독립" 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다.
25.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 즉위 선언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26. 시모노세키 조약 1조는 조선의 청나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였다. 즉, 주변국들도 조선이 청나라의 식민지임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기록이다. 고종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매우 반겼으며 청나라 식민지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시모노세키 조약이후 조선은 곧바로 국호를 대한제국이라고 선포하였다.
외딴섬에
뱃길만들어
관광객 보내줘
물건팔아줬더만
은혜도 모르고
해적질이나 하고
물고기나 잡고
살거라 옛날처럼!
차라리 리틀보이 맞던 시절이 그립다고 울부짖을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담배가 뭐가있죠?하니 웃으면서 다른 국산담배 권하시길레 그거펴보고 맘에들어서 그것만 핀다고 ㅋㅋㅋㅋㅋ
심지어 담배에서 초콜릿 냄세난다고 엄청 좋아함..레종이였나??하여튼..
이번에 아베가 정말 큰일한거같아서 아주 맘에들어..
국민을 하나로 만들어줌 ㅋㅋ
차라리 리틀보이 맞던 시절이 그립다고 울부짖을 날이 올 것이다!
휩쓸고 가주길.
진짜 저쉐끼들 그지됐어...ㅋ
일본 지방도시 곳곳 항공기 운행했던게 국내항공사들이 거의 전부였죠
그래서 기타 다른 외국인들도 쉽게 일본 지방도시들 갔었는데 이번에 노선들 축소하면 퍽이나 쉽게 오겠다 ㅋ
암튼 중국관광객도 쉽게 못가요 ~
외딴섬에
뱃길만들어
관광객 보내줘
물건팔아줬더만
은혜도 모르고
해적질이나 하고
물고기나 잡고
살거라 옛날처럼!
아베는 관심도 없는게
그러니까 이즈하라항 말고 히타카츠항으로는 아직도 입도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깁니다.
본진까지 ㄱㄱ
그래서 비슷한담배가 뭐가있죠?하니 웃으면서 다른 국산담배 권하시길레 그거펴보고 맘에들어서 그것만 핀다고 ㅋㅋㅋㅋㅋ
심지어 담배에서 초콜릿 냄세난다고 엄청 좋아함..레종이였나??하여튼..
이번에 아베가 정말 큰일한거같아서 아주 맘에들어..
국민을 하나로 만들어줌 ㅋㅋ
가서 혐한애들한테 뚜까맞고 대사관가서 징징대면서 울기없기다..
대화는되고??
착각은 ㅋㅋ
2세는 기형ㄱㄱㄱㄱ
가서 세슘 많이 먹고 내부피폭되서 올꺼아냐 ㅋㅋㅋㅋㅋㅋㅋ 대대손손 고생하는거지뭐 ㅋㅋ
관관이아니라 분위기가 어떤지 확인하러
대마도인들 그 동안 행복했지? 이제 밭농사 물고기잡이 10년전으로 돌아가자.
저도 카페에 가입되어 있어서 들어가서 보면 참 민망하더군요, 정중히 댓글 남겼다가 정지 먹었습니다.
분란글 남겼다고... 저 부터 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우리의 젊은이들을
깨웠어.
고맙다. 아베
기사 볼수록 대단하다
역시 한국인임
시작은 미약하나
그끝은 창대하리라
1. 고려왕조는 스스로 송나라에게 조공과 책봉을 하겠다고 요청했다. 이에 송나라는 북방 오랑캐들에게 오해를 받을까(송과 고려의 군신관계) 난감해 했다.
2. 조선은 이성계가 건국하면서부터 명나라의 속국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조선이라는 국호(國呼)도 명나라가 정해준것이다. 이성계는 조선과 화녕이라는 두개의 국호를 들고 명황제에게 국호를 정해달라고 읍소하였다. 명황제는 아침에 일어나는 나라라고 하여 조선으로 국호를 정해주었다. 이성계는 매우 기뻐하면서 대조지은(大造之恩)이라고 칭하였다. 국호를 타국에서 만들어준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조선밖에 없었다.(조선은 명나라의 식민지였다는 명백한 증거중에 한가지)
3. 조선은 공식적으로 '유명조선국(有明 朝鮮國)'을 통해 스스로 명나라의 식민지임을 자처했고 자랑스러워 했다.
4. 조선은 스스로 기자조선(箕子朝鮮)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5. 조선은 독자적 칭호가 아닌 '왕' 을 사용했다. 여기서 "왕" 은 황제국인 명나라의 속국중에 왕을 의미했다.
6. 조선궁궐은 명나라의 문양인 용문양을 새겨넣을 수가 없었다.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받들어야 하기 때문이였다.
7.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 말은 이것은 중국 왕조가 조선에게 주어진 말이다. 즉, "중국의 속국으로서 예절을 다한 나라" 이다.
8. 명나라는 조선을 순이(順夷) 라고 불렀다. 즉, 명나라에 순종하는 오랑캐라는 뜻이다. 여러 속국(북적, 서융, 남만)들중 중원의 한족에게 반란을 일으킨적이 없는 유일한 식민지가 바로 조선이였다.
9. 조선 사대부들은 조선의 주인은 명나라 천자(天子=황제)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 광해군은 이런 말을 하는 사대부들을 매우 언짢게 여겼다.
10. 조선의 영은문(迎恩門), 모화관(慕華館)은 명나라의 식민지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대외적으로 선포한 건축물이다.
11. 조선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명나라 천자의 허락이 반드시 필요했다. 세자 선정도 명나라가 정해주었다. (후궁들은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시키기 위해 명나라 사신들에게 뇌물을 바쳤다)
12. 명/청나라는 조선의 왕비나 왕태자 폐립에 이르기까지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조선의 정치를 실질적으로 지휘 감독하고 있던 것은 명/청나라 대신(大臣)들이었다.
14. 임진왜란시 명군이 파병되자 전작권은 명나라에게 넘어간다. 명나라는 조선을 제외시키고 일본과 전후 조선에 대해 강화협상을 했다. 조선에겐 주권이 없었고 전작권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면 조선은 식민지라서 종주국 명나라가 강화 협상에 참여하는것을 뒤에서 보고만 있을수밖에 없었다.
15. 금나라 누르하치는 조선이 명나라 속국임에 시비를 걸고 정묘호란을 일으킨다.
16. 정묘호란/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청과 군신(청나라는 임금 / 조선은 신하) 관계를 맺었다. 이때 인조는 명황제가 있는 서쪽을 향해 절하며 울부짓으며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오랑캐)의 식민지가 되는것에 대해 자괴했다고 한다.
17. 조선은 동남아, 서양, 인도 등 외국과 직접적인 물자 교역을 하지 못했고 오로지 명나라를 통해서만 대리 교역을 하였다. 왜냐면 명나라가 종주국인 명을 통해서만 교역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18. 조선은 해마다 종주국인 명나라에게 조공을 했다. 고대시대는 독립적인 국가들끼리는 절대로 조공거래는 하지 않았다. 고로 조선은 100% 중국의 조공국이자 속국였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효기심 참조)
19. 조선시대 최고 문인 '송강 정철' 도 자신이 죽자 묘비에 "명나라를 섬기자" 라고 새겨놓았고 속리산 화양동 계속에 명황제 제사를 지내주는 '만동묘' 에는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 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조선의 하늘과 땅은 명나라 것이고 조선의 해와달도 명나라 것이다" 라는 뜻이다.
20. 명나라가 관우한테 제사를 지낼 사당을 지으라고 명령하자 조선은 즉시 2년만에 동묘/남묘/북묘/서묘를 지어 명나라에 충성을 보였다 (지금도 동묘는 보물 142호)
21. 명나라 군이 8년간 조선에 주둔하면서 닥치는대로 성폭행과 약탈, 살인을 했으나 조선의 조정은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명군이 오면 조선농민들은 귀중품을 땅에 묻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오죽했으면 조선농민들은 왜군을 더 반겼다고 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23. 갑신정변 14개조 정강에는 '청나라 와의 사대관계 폐지와 독립' 을 촉구했다.
24. 서재필의 독립협회와 독립문에서 "독립" 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다.
25.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 즉위 선언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26. 시모노세키 조약 1조는 조선의 청나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였다. 즉, 주변국들도 조선이 청나라의 식민지임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기록이다. 고종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매우 반겼으며 청나라 식민지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시모노세키 조약이후 조선은 곧바로 국호를 대한제국이라고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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