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 정이품송 인근에는 3만여㎡ 규모의 공원 ‘훈민정음 마당’이 있다. 지난 1일 이곳에 들어서자 세종대왕과 세조, 신미대사, 효령대군, 수양대군, 정의공주, 안평대군 등 훈민정음 창제에 큰 역할을 했던 7명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1.8m 높이의 동상 7개가 범종을 중심으로 빙 둘러선 모습이다. 바로 옆 광장에도 대형 조형물들이 있었다. 가운데에 신미대사가 가부좌를 튼 모습의 3m 높이 동상이 자리했고, 그 주변으로 신미대사의 가족과 스승, 제자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속리산 복천암은 신미대사가 출가해 입적한 곳이다. 공원 곳곳에서는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설명한 조형물도 볼 수 있었다.
작년 신미대사의 설화 바탕
전문가 자문 없이 공원 조성
설치된 게시물에 오류 많아
이 공원은 보은군이 관광 활성화를 위해 55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지난해 11월 준공한 곳이다. 지역의 인물인 신미대사의 설화를 활용해 공원을 꾸몄다고 한다.
공원에는 신미대사가 <월인천강지곡>의 저자이며 <석보상절> 간행에 기여하고 훈민정음 창제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이 공원으로 인해 역사왜곡 논란이 일고 있다. 신미대사를 한글 창제의 주역으로 부각시키면서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 공원에 설치된 게시물에는 ‘훈민정음 창제는 집현전 학자들이 모르는 세종과 신미대사의 비밀 프로젝트였다.
세종대왕의 청주시 청원구 초정리 행차도 안질 치료가 목적이 아니라 신미대사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
오황균씨(62·내북면 법주리)는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대왕의 고유 업적인데 ‘훈민정음 마당’에서는 신미대사의 업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며 “전문가 자문 없이 신미대사 설화를 바탕으로 공원을 꾸며 오류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역사 인식에 큰 문제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글문화단체 항의 방문도
군 “공원 명칭 등 수정 계획”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 한글 관련 단체로 구성된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도 지난 9월 초 보은군을 찾아 항의했다.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관계자는 8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신미대사는 복천암에서 오랫동안 머물렀고 여러 업적이 있는 인물이어서 보은군이 신미대사를 기리는 공원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없다”며 “그러나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신미대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내용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세종대왕 동상을 철거하고 훈민정음 관련 내용도 삭제해 신미대사만을 강조한 공원으로 만들어 달라고 보은군에 요청했다”고 전했다.
보은군은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의 항의에 따라 이 공원의 명칭 등 조형물 일부를 수정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보은군 관계자는 “지역 인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신미대사의 설화를 차용해 공원을 만들었다”며 “하지만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다보니 공원 조성 과정에서 이 같은 오류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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