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때 담임들. 어머니가 자주 안온다고 그냥 사사건건 시비걸고 벌세우고 왔다가면 한 3개월 잘해주고.
또 반복.
근데 그 담임들이 다 아줌마였음.
남자 쌤들은 귀찮으니까 이런거 들고오지말라고 하셨음.
진짜 아줌마 쌤들은 하나같이 ㅈ같았음.
어머니가 봉투에 촌지를 넣어 올때까지 괴롭힘.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애들에게 그랬고
형편 어려운 애들도 쥐어짬.
형편이 안되서 부모님 못오시는 애들은 1년동안 지옥임.
진짜 곱게 뒤지진 않았길 바래본다.
36살 아직까지 취나물을 먹지 못함
초등학교 2학년 서울 후암초 급식 시범
시작. 반찬으로 취나물 나온걸 향 때문에
못먹고 있었는데 담임년이 와서
다 먹을때까지 집에 못간다 하고
그래도 못 먹으니 억지로 입에 쑤셔넣음
교실 바닥에 토하고 그 사건 이후로
반에서는 토쟁이가 되었고 그 후로도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었는데 어느날
방문한 엄마의 10만원에 괴롭힘이 멈춤
천하의 씨발년 아직도 9살 짜리
꼬마애 앞에서 아빠한테 쓴 편지가
엉망이라고 소리치면서 눈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모습이 생생하다
평생의 트라우마다...
나 국민학교 1학년때 받아쓰기 글씨가
이상하다며 형제들이 대신 해 준거 아니냐고 해서 내가 썼다하니 거짓말 한다며 귀싸대기 맞았어요.
받침 “ㅂ”을 빨리 놀러 나가고 싶어서 급하게 써서 이상해진건데 여선생한테 싸대기 맞음 ….
그선생 이름이 “노영심” … 40년 넘게 그선생 이름은 기억함.. 제발 병 걸려서 디지게 고생하다 디지길 .
국민학교 3학년때... 담임선생님은 제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의 여성 선생님이셨죠
근데 전 거의 매일 담임선생님께 이런 저런 이유로 반 학우들 앞에서 체벌을 당했죠...
제가 반장이었는데 제가 친구들하고 떠들면 떠든다고...친구들이 떠들면 반장 역할 못했다고...
뺨을 맞아 코피가 난적도 있고... 엉덩이가 아파서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한적도 있지만 어머니껜 말씀 못드렸어요...
걱정하실까봐...
그런데 나중에 다커서 어머니랑 술한잔하다가 이유를 알게되었어요...
담임선생님이 촌지를 요구했는데... 우리집이 넉넉치 못해 못드리니... 것도 반장 어머니가 못드리니...
그날 어머니가 많이 우셨습니다...
근데 그분 정말 웃긴거는... 제 담임 끝나고 그분 따님하고 저희 형하고 나중에 같은 중학교 갔는데...
저희 형이 공부를 잘했거든요... 그랬더니 저희 어머니한테 저희 형이 그분 따님 공부 같이 하면서
도와줄수 있냐고... 부탁했다고 하네요...
지금 생각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분은... 이해가...용서가...잘 안되요...ㅠㅠ
그때는 철이 없어서 몰랐지만
저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이
얼마나 깨끗하신 선생님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3학년때 어머니께서
담임 선생님께 안부 인사차
홍삼 진액을 주려고 하셨는데
극구 사양하시면서 끝까지
안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어머니께서 서운해하셨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청렴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애들 체벌같은 것도
최대한 자제하시다가 진짜 안 되겟다.
싶으실 때만 때리시던 분이였는데
커서 보니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다시 뵐 수 있으면 감사하다는 한 마디는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반에서 1명 나왔으니 다같이 처벌 받는거래... 허벅지를 하키스틱으로 때리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이 포로 수용소 엿슴.
뭔일만 나면 하키스틱... 나중엔 님맘대로 죽이던 살리던해라 됨.
교무실로 상담 가셨었는데
선생이 책을 펴더니 책갈피 끼우듯이
돈 넣으라는 눈치를 줬다고 ㅋ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방과후 학원을 가는게 아니라 그때부터 선생과 일대일 맞춤 수업이 시작된다고 함.
더 중요한건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우리나라는 2년제 대학만 나와도 교원 자격증을 줬는데 필란드는 아주 예전부터 모든 선생은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만 가능 했다고...
요새 와닿음
물론 폭력을 옹호하는건 아님
어디분야나 쓰레기들은 존재했고 체벌이 없어지고
몇십년이 지나고 보니 미성년자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크게 반성하거나 개선이 안보인다는게
확실히 느껴짐
맞는다고 반성하고 안맞는다고 반성 안한다는 논리는 당신 자식한테나 하길
간혹 있는 스승들은 '네 말 좀 들어보자'
공부 좀 열심히해라고 이야기 많이 해주신분인데
역시 좋은분은 빨리 돌아가시네요
ㄱ새끼 철캐비넷에 뭔 박카스같은 음료들이 그리도 많던지.
실갱이 하다 톡 살짝 밀었는데 재수가 없는지 그년 쌍코피 터짐.
진짜 툭~~밀었는데..
이년이 울면서 선생한테 제가 코 때렸다고 구라시전..
선생이 와서는 전부보는 앞에서 귓싸대기 왕복 10번 날림..
그 후로 마음의 상처가 너무커서 성격이 소심하게 변했네요..
있는집 ㅅㄲ들.부모가 촌지주는 ㅅㄲ들..
공부잘하는 ㅅㄲ들 아주 대놓고 이뻐하던 이호재.
지금은 뒈졌겠지..
그때의 그 따귀 맞을때의 수치스러움이 지금까지 너무 생생함.
이제와서 전학 간다고 늦게 얘기하면 어떡하냐고 8살짜리애한테 엄청 지랄했음.. 40대 여자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확한 얼굴은 기억안나는데 화장떡칠하고 얼굴 허얘서 안경쓰고 못되게 생긴느낌..
아무튼 엄청 지랄하는거 부모님한테 얘기하니까 엄마가 만나고 왔다고... 몇일 더 학교를 가야했는데
갑자기 급친절해짐.. 나중에 고등학생 되서 들었는데 10만원 주고 왔다고..
영어를 가르치라고 해놧더니 철권을 가르친 선생새뀌야..
ㅋㅋㅋㅋㅋㅋㅋㅋ
노골적으로 여학생들 성추행하고 대놓고 촌지 요구하고 툭하면 때리고
그거에 비하면 요즘 (초등)선생님들은 참 힘들어 보입니다. 정신병 안생기는게 신기할 정도
진정한 학원 선생만이 선생 소리 듣고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과 공무원 년놈들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서는데 학교 및 대학 에서 못된것만 배우고 나오니 이모양지
그래서 대한민국 교육은 죽었다
내가 왜 울컥하지?
이유 없이 운동장에서 놀던날 불러 따귀를 수 대 때려 코뼈가 부러졌던게 생각나서?
우연히 밖을 봤는데 벌거 벗겨져 운동장을 뛰던 형 누나들이 생각나서?
채점 색연필이 무지개색으로 안해서 발바닥을 때리던 선생이 생각나서?
좋은 선생님도 많았지만 안 좋은 기억이 더 크내요.
학생이 주체가 되어야 할 학교에서
교사가 주체가 되어 만들어진 단어
"교권"
또 반복.
근데 그 담임들이 다 아줌마였음.
남자 쌤들은 귀찮으니까 이런거 들고오지말라고 하셨음.
진짜 아줌마 쌤들은 하나같이 ㅈ같았음.
어머니가 봉투에 촌지를 넣어 올때까지 괴롭힘.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애들에게 그랬고
형편 어려운 애들도 쥐어짬.
형편이 안되서 부모님 못오시는 애들은 1년동안 지옥임.
진짜 곱게 뒤지진 않았길 바래본다.
교육은 서비스업이 되었죠
참된 스승은 인강에 있고요
없는살림에 어찌할바를 모르시고 그래도
성의껏대접한다고 계란정도를 삶아드리면
마지못해 미안해하시면서 허허하시고 드시던 선생님들도 계셨습니다.반면에 중학교때 수업시간에 껌씹었다고 불려나가가지고 밷은껌을 머리에다 문질러버리더군요.지금도 그새끼는 안잊혀집니다.
우리 동기들한테는 개×태라고 불렸지요.
대학을 제외한 초~고까지 1~2명 빼놓고 다 저랬던 기억.
한마디로 다 쓰레기 그중 일부만 사람이지.
아이러니 하게도 부모들의 경쟁에
치여서 사교육등 이리저리 쫓겨다니듯
억지공부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아요
예전에는 구타나 촌지가 심했다면 요즘은
사교육이나 교육의 높낮이 잣대를 정해 선긋기하는 부모들 탓도 크다고 봅니다
운동도
패야 된다던
그 씹딱들
지금 잘들 사나?
아마
윤짜장 응원하는거 아냐?
선물을 구분해서 자리배치한 정*경 샘~~ 그때 선생은 좋은 사람 아니다. 라고 생각했어요.
촌지도 잘 받으셨는데 .... 차별은 촌지에서 나왔죠. ㅎㅎ
울컥하네!!!
죽는날까지 행여나 만나지 말기를...
쓰레기 선생년도 많았다..
국민학교2학년때
지휘봉으로 엎드려뻐쳐서 부러질정도로 맞고
초록색 국기계양대로
눈감고 살짝 움직였다고 등드리 때려 부러뜨린
X옥경 여자 선생
아직도 그때기억이 생생하네
곧 40다되어가는데 이것도 트라우마인가ㅋ
결혼해서 애낳고 잘사는지 궁금하네
단순히 하나 였다. 짝궁은 엄마가 와서 촌지를 줬으며 나는 매 번 내 부모를 소환하려고 엄마모시고 오라했어도 끝까지 모셔오지 않았던 것.
나는 그 사실을 후에 알았고 그 때부터 나는 그 선생은 선생이 아니라 나이 처먹은 아줌마로 생각했었다.
내 기억에 선생님이란 고등학교 1,2학년 둘다 담임을 맡으신 분 말고 선생님이란 사람은 없다.
교사란 직업을 가진 인간만 있을뿐...
집에 전화기 있는사람 손?
집에 세탁기 있는사람 손?
집에 자가용 있는사람 손?
...으로 가정 방문이 결정됐던..ㅡㅡ;;
걔는 그냥 수업시간에 열심히 한 죄밖에 없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아직 기억납니다
귓방맹이를 30대 정도 맞았나
입안에 터지고
이렇게까지 맞을짓이였나
그러면서도 아무말 못했죠
벌써 30년가까이 지났지만
잊혀지지 않습니다 ㅋ
지금생각해보니 그게 촌지 적는거였어 ..
지금 연금받고 잘처먹고 살고 있겠지
초등학교 2학년 서울 후암초 급식 시범
시작. 반찬으로 취나물 나온걸 향 때문에
못먹고 있었는데 담임년이 와서
다 먹을때까지 집에 못간다 하고
그래도 못 먹으니 억지로 입에 쑤셔넣음
교실 바닥에 토하고 그 사건 이후로
반에서는 토쟁이가 되었고 그 후로도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었는데 어느날
방문한 엄마의 10만원에 괴롭힘이 멈춤
천하의 씨발년 아직도 9살 짜리
꼬마애 앞에서 아빠한테 쓴 편지가
엉망이라고 소리치면서 눈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모습이 생생하다
평생의 트라우마다...
암흑기 성장통 과도기
촌지가 뭔지도 몰랐고
맨날 뚜드리 맞고 살았지만
선생님을 미워하는법을 몰랐습니다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할
그런분이셨으니까요
지금은 어떤가요??
애들이 선생님 후두리 패고
부모가 선생님 싸다구 때리는세상 ㅋ ㅋ
이상하다며 형제들이 대신 해 준거 아니냐고 해서 내가 썼다하니 거짓말 한다며 귀싸대기 맞았어요.
받침 “ㅂ”을 빨리 놀러 나가고 싶어서 급하게 써서 이상해진건데 여선생한테 싸대기 맞음 ….
그선생 이름이 “노영심” … 40년 넘게 그선생 이름은 기억함.. 제발 병 걸려서 디지게 고생하다 디지길 .
너하나 죽여도 물어줄돈 있다고 개보다 더 패든 개 쉐이. 저런게 선생이라고 불리든 시절 ㅠ
어른이 귀싸대기도 똑바로 못때려서 두번이나 어린애 코피 터지게 한다 ㅄ새끼
그땐 왜 그랬는지...
댓글만 읽어도 내가 당했거나 목격했던 일이
꽤 많이 있네요.
초등학교때 교실에서 도난 사건이 있었는데
선생 심증으로 제 친구를 사실상 범인으로
몰고 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참 ㅈ같았죠.
결국 그 친구 전학 가더라고요.
그리고 촌지 찔러주면 확실히 대우가 달라진다 하더라고요.
군대 문턱도 못 넘어본 20대 여선생이
원산폭격은 우찌 알았는지 얼굴이 붓도록 시켰던 기억도...지금 생각해 보면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ㅋ
근데 전 거의 매일 담임선생님께 이런 저런 이유로 반 학우들 앞에서 체벌을 당했죠...
제가 반장이었는데 제가 친구들하고 떠들면 떠든다고...친구들이 떠들면 반장 역할 못했다고...
뺨을 맞아 코피가 난적도 있고... 엉덩이가 아파서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한적도 있지만 어머니껜 말씀 못드렸어요...
걱정하실까봐...
그런데 나중에 다커서 어머니랑 술한잔하다가 이유를 알게되었어요...
담임선생님이 촌지를 요구했는데... 우리집이 넉넉치 못해 못드리니... 것도 반장 어머니가 못드리니...
그날 어머니가 많이 우셨습니다...
근데 그분 정말 웃긴거는... 제 담임 끝나고 그분 따님하고 저희 형하고 나중에 같은 중학교 갔는데...
저희 형이 공부를 잘했거든요... 그랬더니 저희 어머니한테 저희 형이 그분 따님 공부 같이 하면서
도와줄수 있냐고... 부탁했다고 하네요...
지금 생각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분은... 이해가...용서가...잘 안되요...ㅠㅠ
결손가정 중학교1학년 애가 체육복 못입고? 왔다고 거품물고 쓰러질때까지
뺨 때리던 체육교사 ㄱ새끼가 기억나네요.
난 여선생한테 머리핀주면서 너무작은거라 창피하고 주눅들었던 기억이 아직도난다.
그것뿐만 아니라 바닥 왁싱작업한다고 걸래/왁스 개인돈으로 사서 바닥 존나게 광내고...화분/도서 이런거 사가고..
참..
저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이
얼마나 깨끗하신 선생님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3학년때 어머니께서
담임 선생님께 안부 인사차
홍삼 진액을 주려고 하셨는데
극구 사양하시면서 끝까지
안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어머니께서 서운해하셨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청렴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애들 체벌같은 것도
최대한 자제하시다가 진짜 안 되겟다.
싶으실 때만 때리시던 분이였는데
커서 보니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다시 뵐 수 있으면 감사하다는 한 마디는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