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민족말살통치의 일환으로 진행된 창씨개명을 거부한 사람은 사회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얻었던지라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연세가 많은 정치인 중에서 창씨개명을 안한 사람을 더 찾기가 어렵다.
김대중 선생이 학창시절을 보낸 1940년대는 민족말살정책으로 창씨개명이 의무화된 시기라 김대중 선생도 창씨개명을 하였다.
민족말상정책이 시작된 1937년에 김대중은 만 13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본인이 원해서 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위키백과
김대중 선생은 도요다 다이주라는 별명이 생긴것은 강제 창씨개명 때 만든 일본식이름일 뿐이다..
이때 사용한 이름이 창씨개명한 이름인 타카기 마사오.
수석 졸업생으로 "대동아 공영권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라고 선서하며,
만주국 황제 푸이에게 은사품으로 금장시계를 받고 일본육사 유학생대 편입 특전을 받았다.-위키백과
다까끼 마사오 .. 스테이크 팍
식민지 조선의 국적은 일본이였다.
이런 글에 추천을 주는 행위는 뉴라이트를 살찌우는 행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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