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재원 근무 시절..
아직 한창 40대 초반이던 나는 중국 동북3성 각지에 현지 직원들 120여명을 데리고 불철주야 영업에 조직관리에 정신없이 살았다.
중국에서도 제일 거칠기로 소문난 만주 땅에서 대리상들 만나서 계약 따내려고 빼갈 1~2병은 기본으로 깠으니..지금 생각해도 정말 겁이 없던 시기였던거 같다.
그날도 오전부터 열린 미팅이 지지부진하다가 점심 시간에 극적으로 계약 체결하고 대리점 사장 왕 라오반과 같이 찐하게 56도짜리 각 1병씩 비우고 나는 다음 지사가 있는 장춘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야 했다.
10월 중순의 만주 땅은 벌써 영하로 떨어졌지만 이미 만취한 나는 플랫폼을 내려 오면서 추운 줄 몰랐다. '이번 계약 건으로 북경 본사에 약속된 물량을 더 채우려면 장춘의 쳔 라오반이랑..' 이런 생각만 떠올렸고 낮부터 퍼마신 술기에 몸은 휘청 거렸고 정신도 오락가락 했다.
길림성 장춘행 기차를 타려고 1번 플랫폼으로 내려왔도니 시간도 조금 남았고 술도 깰 겸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던 순간..바닥에 보이는 세모의 표시..그리고 2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보이는 네모 표시..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어제 밤에 호텔에서 우연히 검색하다가 알게된 안중근 장군께서 거사를 일으킨 장소가 하얼빈 역이고 자세히 안 보면 표가 안날 정도로 그냥 지나칠 수 있다고..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을 안중근 장군님은 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그리고 과연 저 원수의 수괴를 제거한다고 해서 왜구들이 야망을 포기하지 않을거라것도 잘 아시지 않았을까?백번 양보해서 그냥 필부로서 처자식만 바라보고 살고 싶은 유혹은 없었을까?
그리고 정말 지금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의 현실을 보면 자기의 희생이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 하셨을까?
술이 확 깨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갔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중국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그 역사의 현장을 스쳐 지나간다.
그 자리를 남기고 싶어 사진으로 남겼다.
할수만 있다면 이 자리에 국화꽃이라도 두고 싶었지만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여서 장군님께 깊은 존경의 인사를 전하고 유해를 못 찾는 현실에 가슴 아파 하면서 뒤돌아섰다.
그날의 기억은 내가 나중에 역사 소설을 쓰는데 큰 동기가 된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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