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는 원래 그렇게 부흥하지 못했었습니다. 기존에 크리스트교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던 천주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간에서는 천주교의 교세가 확고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 선교사가 주로 들어온 개신교는 교세를 넓히기 위해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YMCA와 같은 것을 만들어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주로 왕실을 비롯한 고위직들과 유착관계를 만들면서 교세를 확장시켰습니다. 당시에는 개신교도 천주교와 똑같이 신을 하느님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타 종교에 대해서 그리 배타적이지 않았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되자 개신교는 신사참배를 장려하고 일제에 아주 협조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것에 반발한 개신교도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지만 개신교는 하나의 교회가 아니기에 큰 영향은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파벌에서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발생한 고신파라고 불리우는 장로교의 한 파벌은 신사참배를 거부했습니다. 일제에 협조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옥고를 치루는 등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외에 개신교는 일제에 협조적이었고 매국노들도 많이 배출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화, 연희(세) 두 학원에서 친일 개신교계 인물들이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개신교의 교세는 지금처럼 크지는 못했습니다. 가장 늦게 전래된 종교의 한계와 같은 크리스트교인 천주교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방 후 권력을 잡은 이승만은 본인이 개신교도고 였고 미국에서 주로 남부쪽의 청교도적인 개신교를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즘 나대는 개신교 것들이 청교도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이 바로 이 이승만식 개신교를 이어 받은 것으로 봐도 될 겁니다. 이승만은 개신교를 대한민국의 국교 정도로 만드려고 했습니다. 그때문에 이승만 집권 시기에 개신교는 엄청나게 팽창하게 되고 그 교세가 천주교를 넘어서게 됩니다.
이승만은 개신교를 거의 모든 것에 갖다 붙이려고 했습니다. 독립운동에도 개신교쪽 인물을 내세워서 고착시키려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개신교계 3.1운동 인물을 찾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때 이화학당의 반민족일제부역자들 즉 매국노들이 이승만에게 천거한 것이 바로 유관순 열사입니다. 이 시기 이전에 유관순 열사는 무명의 애국지사였습니다. 이화학당쪽 인물들이나 천안지역 사람들이 아니라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3.1운동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그에 비해서 3.1운동에 동참했다가 죽음을 당한 다른 애국지사들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물러나게 됐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정말 땅을 치고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개신교 부흥을 위해 이용당하고 그것을 철천지 원수인 반민족일제부역자들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정말 피눈물을 흘릴 겁니다.
반민족친일 개신교계는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개신교를 부흥시킨 국부로 밀고 있습니다. 물론 개신교계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이승만이 팽창시켜 부흥시켜 놓은 개신교쪽은 이승만을 부정할 수가 없어 보입니다. 일부개신교계에서 역사왜곡이 앞장서고 독재를 미화하고 친일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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