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며, 광주를 우회해서는 민족사의 올바른 전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와 자유와 민주의 찬가가 울려퍼지는 그 날, 광주는 구원의 상징으로 영원한 별빛이 되어 민족의 앞길을 인도할 것입니다."
KCI 등재
5,18 민중항쟁과 김대중
The May 18th Gwangju Democratic Uprising and Kim Dae Jung
호남사학회 2015.02
UCI I410-ECN-0102-2015-900-002052464
1980년 5월 18일 전남대생들의 시위는 1980년 봄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했다. 학생들의 시위는 민주정부 수립을 좌절시킨 신군부의 5·17 계엄확대조치와 계엄군의 야만적 진압행위로 인해 시민들의 참여를 촉발시켰고, 마침내 항쟁으로 발전했다.
김대중은 5·18현장에 없었다. 그와 5·18 현장을 연결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당연히 김대중은 항쟁의 주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쟁에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시위 현장에서 ‘김대중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김대중은 사실상 학생·시민들과 함께 있었다.
김대중과 광주시민들의 결합은 지역적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호남지역은 박정희 정권의 인사 및 경제개발정책에서 심한 차별을 받았다.
박정희 독재정부가 사라진 1980년 호남인들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호남인들은 자연스럽게 민주화운동 지도자이자 동향인인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5·17쿠데타로 인해 김대중이 체포되었고, 민주정부 수립도 무산되었다. 호남인들의 실망과 분노가 클 수밖에 없었다.
5·18항쟁이 김대중의 사주에 의해 발생했다는 신군부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완전히 조작된 것이다. 다른 한편 신군부가 자신을 체포한 것이 5·18항쟁 발발의 가장 큰 요인과 배경이라는 김대중의 주장 역시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김대중은 항쟁의 전개과정에서 항쟁을 증폭시킨 주요한 변수 중 하나였다고 정의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지마눠이 전두깡이 이 개색히들 ㅡㅜ
박정희는 수출 중공업 육성과 산업화를 공약해 당선된 대통령인데, 중공업과 산업화를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냐면서 반대하고 그 반대 논리로 농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호남평야 농업 기득권을 어떻게 등용하누..
그리고 주민 1인당 예산은 그 때나 지금이나 호남이 더 많이 타가고 있음.
단지 호남은 소수 지주들을 위한 농지 인프라(간척사업, 수로 관개시설, 저수지 등)에 막대한 예산이 집중 투자된거고, 지금은 기본소득이라는 명목으로 예산을 살포하고 있는거고.
결론 : 전라도민을 괴롭히는 것은 전라도와 민주당임
주민 1인당 예산을 뭐가 막 퍼주고 있다는 듯한 표현을 삼가하셔야 합니다. 선동이거든요
강원 태백시 2026년 주민 1인당 예산 1332만 2천으로 나오는데요. 인구수가 적으면 적을 수록 많아지군요
https://www.lofin365.go.kr/portal/LF5110000.do?pdtaId=E8CLIL7H1FHQ3F38ON5W225441
알면서 그랬다면 거짓말쟁이고, 모르고 그랬다면 머리 멍청한거고.
이래서 좌파는 둘 중 하나 밖에 없다고 하는거야.
1. 멍청하거나
2. 양심이 없거나
욕나오려는거 간신히 참는다..너의 댓글의 의미는 호남이 뭔 큰혜택이나 받는 듯이 적어 놨고. 그래서 그 예산이나는게 인구수에 비례해서 받는 것 같다..여기 표를 참고해라 했으면 찾아 봐야지 임마. 그계 예의 아니냐?
좌파를 찾을 것아 아니라 표를 찾아봐..표를
어차피 주민 1인당 국가예산 지출은 박정희 때나 지금이나 호남이 상위권인 것은 팩트니까.
또,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은 호남은 켤코 홀대받거나 차별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영남에 비해 1인당 더 많은 국가예산을 배분 받고도 소수 농업기득권들이 자기들 배를 불렸다고 말하는 것이니까.
결국 전라도를 괴롭힌 것은 전라도이지, 국민들이 호남을 차별한게 아니란 의미.
그래서 호남 홀대론이나 차별론을 내세워 밥그릇 싸움을 하는 전라도에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거야. 그걸 구조적 차별론으로 치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나 국민정서적으로나 맞지 않다는 얘기야.
" 로우데이터는 너나 많이 들여다 보렴."...이런 개소리를 하려면 애초에 댓글을 달지 말아야지..
저간의 댓글보니까...와 말귀를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이랑 대화를 하고 잇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일하다가 시간 낭비했다.
로우데이터를 의미있는 통계로 추출하는 '노가다' 작업을 상대에게 떠 넘겨 놓고 근거 타령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뿐.
http://www.fnnews.com/news/202301121643498708
'정보'란 로우데이터가 아니라 분류 가공된 결과값임.
일어난 것이라고,김대중을 체포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다고
그럼 김대중 운동이 아닌가
또 포고령 위반 관련 처리지침 및 지시, 무혐의 처리 수사기록, 위반사범 접수 및 조사현황 등도 들어 있다.
자료 원본은 그동안 광주 동부경찰서에서 보관하고 있었으며 최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돼 보존중이다.
5·18 당시 진압에 나선 특수부대, 보병부대 등 2만여명이 동원돼 시민, 학생을 학살했던 자료다.
비상계엄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군사재판을 받았고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자행됐으며, 이들은 사형,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이감됐다.
이와 관련해 군·검찰 수사기록, 불기소 처분 수사기록, 기소중지자 기록, 군사재판자료 등이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5·18 배후조종자로 신군부의 군법회의에 회부돼 1980년 9월 17일 사형선고를 받았고 1982년 석방된 뒤 미국으로 강제추방됐다.
1995년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관련자들의 재심 청구로 명예회복이 이뤄졌고, 김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2003년 재심을 청구해 2004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학생과 시민들은 절박한 상황과 신군부의 불법성과 야만성을 폭로하기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성명문, 선언문, 호소문, 투사회보 등을 제작해 배포했다.
계엄사령관은 이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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