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자동차를 종합 과학체라 부른다. 2만개 이상의 단순 부품이 조립된 후 몇 가지 조작으로 움직이는 기계여서다. 그만큼 과학기술의 집합체란 의미다. 물론 자동차 외에 선박이나 항공기 등도 종합 과학체라 부른다. 하지만 선박이나 항공기는 조종자가 한정된 반면 자동차는 조종자가 '누구나'여서 관심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자동차와 예술의 초기 만남
자동차를 예술의 경지로 높이려는 움직임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초창기 자동차는 주로 화가들의 그림이나 조각에 예술적 소재로 등장했다. 특히 세계 최초 자동차회사 설립자로 유명한 에밀 르바소(Emile Levassor, 1843-1897)의 조각상은 현재 파리 포트 마이요에 세워져 있다. 사후에 건립된 조각상이어서 예술보다 기념에 가깝지만 자동차의 예술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초창기 자동차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사람으로는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 1881-1947)'도 손꼽힌다. 이탈리아 밀란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부가티는 예술가이자 건축가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사각형 피스톤이 아름답다면 서슴없이 원형을 버리고 사각형을 따르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만큼 자동차의 예술적 감각을 중요히 여긴 인물이다.
▲자동차와 예술의 현대 만남
이처럼 초창기 자동차와 예술의 만남이 디자인에 치우쳤다면 최근 자동차 예술은 색채로 구분되는 '아트 카(Art Car)'에 집중되고 있다. 다양한 색상 예술이 만들어지면서 자동차 또한 단순하고 통일된 색상을 벗어날 때가 됐다는 인식이 강해진 덕분이다. 여기에 '팝 아트(Pop Art)'라는 대중예술이 트렌드를 이끌며 외형 또한 예술 작품으로 점차 승화되는 중이다.
대표적인 색상 예술 자동차, 아트 카의 선구자는 BMW다. 'BMW 아트카'라는 별도 전시회를 열었을 만큼 BMW의 색상 예술에 대한 고집은 집요하다. BMW 아트 카의 출발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프랑스 경매인이자 자동차경주 레이서로 활약한 에르베 폴랑(Herve Poulain)이 1975년 친구이자 예술가였던 미국인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에게 BMW 레이싱카 3.0 CSL의 아트 카 제작을 요청한 게 시작이다.
물론 초기에는 르망레이스와 같은 자동차경주에 출전하는 경주차에 다양한 색상을 입히는 일이었다. 하지만 1999년 아메리칸 컨셉트 아티스트 제니 홀처(Jenny Holzer)가 BMW V12 르망 레이싱카로 만든 '트루이즘스(Trusms)'는 양산 아트 카의 전형으로 꼽히며, 아트 카의 개념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이외 1976년 만들어진 프랭크 스텔라의 아트 카는 그래픽 전용지를 연상시키는 격자무늬를 통해 차체의 곡선과 공간을 3차원적으로 묘사해 냈다.
현대 미술의 거장 켄 돈(Ken Done)의 BMW M3 그룹 A 레이싱 버전은 앵무새 비늘 돔으로 명성을 얻었다. 켄 돈은 앵무새와 비늘 돔은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과 아름답다는 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켄 돈의 M3는 BMW 호주 경기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미국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1977년에 제작한 BMW 320i 그룹5 레이싱버전도 아트 카로 이름이 높은 작품이다. 현재 그의 작품은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에 전시돼 있을 만큼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979년에 완성된 팝 아트의 창시자 앤디 워홀(Andy Warhol)의 BMW M1 그룹4 레이싱 버전은 앤디 워홀 스스로도 '예술 이상의 것'으로 불렀을 만큼 애착이 컸던 작품이다. 모형차에 그림을 완성한 뒤 다른 작업은 대부분 도장 기술자에게 맡겼던 다른 예술가와 달리 앤디 워홀은 직접 채색을 완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동차의 속도에 대한 화려한 묘사를 담아내고자 했으며, M1이 빠른 속도로 움직일 경우 모든 윤곽과 색상은 흐릿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앤디 워홀의 M1 또한 1979년 르망 레이스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다.
BMW가 아트 카 제작자로 유명 예술인을 선택했던 것과 폭스바겐은 대중 속에 숨어 있는 예술가를 찾아 아트 카 작업을 진행했다. 뉴 비틀 플라워(Flower)와 사파리(Safari)는 싱가포르에서 뉴 비틀 아트 카 선발대회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며, 팝 아트의 형태로 담배케이스를 연상시키는 뉴 비틀과 얼룩말 무늬의 뉴 비틀, 수학공식을 이용한 뉴 비틀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의 모습을 담아냈다. 특히 론 돌리스가 갖가지 색의 옥돌을 이용해 헤드램프를 강조하고, 보닛에 주술적인 그림을 그려 넣은 작품은 낮과 밤을 이용한 것으로 주목받았다.
최근 국내에서도 아트 카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지엠이 지난 2007년 마티즈(스파크) 아트 카를 선보이며 시작된 예술 활동은 젊은층의 인기를 얻는 소형차에 집중되고 있다.
예술에 대한 인간의 도전 정신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아울러 업종 간 수평적 디자인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자동차의 예술성은 외형 뿐 아니라 실내 곳곳에서도 묻어난다. 명품 패션으로 유명한 '불가리'가 스포츠카 페라리 인테리어 디자인에 참여해 기능성보다는 예술성을 살려내는가 하면 움직이는 모빌(Mobile)로서, 자동차가 하나의 예술 장식품이 되기도 한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디자인과 순수 예술의 구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동차는 기계일 뿐 예술의 소재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게다가 자동차 바깥에 회화나 기타 팝 아트의 대상을 그려 넣는 일은 단순히 캔버스를 자동차로 삼았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감상의 도구로서 자동차는 '동적 물체'라는 점이 오히려 새로운 예술 영역을 구축하기에 더 없이 좋은 소재라는 게 최근의 대세다. 나아가 자동차에 그려 넣은 예술작품은 자동차가 정지해 있을 때와 달릴 때 모두 다른 시각적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자동차와 예술의 수평적 교류는 여전히 매력이 넘친다는 게 현대 예술가들의 중론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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