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정체성(正體性)은 유권자가 어느 정당을 지지할 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만큼 분명해야 한다. 4·13 총선을 목전에 두고 당명이 바뀌는 등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야당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당원들조차 헷갈릴 정도로 혼란스럽다. 특히, 안보(安保)와 관련해선 기조가 수시로 바뀌면서 오락가락하고, 상충되는 주장까지 난무하는 실정이다.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는 1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최근의 안보 상황을 “박근혜정부의 정책 실패”로 진단하고 “20대 총선에 승리하면 개성공단 사태와 입주 기업 피해 등에 대한 국정조사와 ‘개성공단 부흥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전 대표는 “전쟁하자는 거냐” “(개성공단 중단에) 화가 난다. 어리석고 한심한 조치”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개성공단 중단의 찬반론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북한 궤멸’과 햇볕정책 보완론까지 제기했다. 전날 국회에서 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선 “중국을 너무 믿지 말라”는 조언도 했다. 다수의 소속 의원들이 중국 자극을 이유로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는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견인하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당위성은 차치하고 제1 야당의 안보 정체성이 이렇게 혼란스러워서는 국민 신뢰를 받기 어렵다.
중도 개혁 정당을 표방하고 창당한 국민의당은 더 심각하다. 튼튼한 안보를 강조해 왔지만 안철수 대표는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며 북핵 폐기 대책을 내놓기보다 정부 비판에 무게를 두었다. 천정배 대표도 “(햇볕정책)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했다. 개성공단의 산파역이자 강경 성향인 정동영 전 의원 영입을 추진하자 입당키로 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반발하는 등 내부 혼란도 이어지고 있다. 호남표를 의식하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정당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정당 내부에서 어느 정도 다양성은 필요하지만 정반대의 가치가 혼재하는 식은 곤란하다. 특히, 안보 분야는 국가 존립과 관련된 만큼 애매하면 안 된다. 당론 분열을 넘어 국론 분열까지 초래한다. 두 야당은 한시 바삐 중대한 안보 현안들에 대해 정리된 당론을 내놓고 국민 심판을 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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