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서재필
김옥균·박영효·홍영식·서광범 등 개화파의 일원으로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여 의사가 되었다. 미국으로 귀화하였으나, 일시 귀국하여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도 독립운동에 여러 방향으로 도움을 주었고, 광복후에는 미군정청고문으로 일하다가 미국에서 영면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고창 김성수 (고려대학교와 동아일보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최근 친일논란이 있으나 게시 기준을 훈장 수여에 두고 싣는다.)
정치가·교육자·언론인. 경성방직회사 창설, 동아일보 창간, 보성학교 인수 등 활발히 활동하였다. 1951년 2대 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사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나주 김태원
한말의 의병장. 호남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켜 고창읍과 영광, 나주, 함평 등의 일본군을 공격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남원 백용성
대각교를 창시한 승려이자 한말의 독립운동가이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임실 박준승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독립운동가. 전라도 도사를 지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복역 중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임실 전해산
한말의 의병장. 조경환의 의병군에 가담하여 싸우다가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전투를 지휘했다. 경성결사대의 간부였던 정원집을 선봉장으로 일본군을 격파했으나 정원집의 전사로 전열이 무너져 패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해남 양한묵
이준 등과 함께 헌정연구회를 조직하였고 서울에 천도교 중앙총부를 결성하여 법도사 ·직무도사 등으로 활약하였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대한민국장과 대통령장 기준이고,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건국포장 등의 인물까지 수록하면 너무 수가 많으므로 생략한다.
저는 호남형 시리즈 좀 더 게시하고요.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