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모두 수고가 많았다. 부득이 원할히 토론에 응해주지 못한 것 사과한다.
새벽에는 너무 산만한 댓글들로 인해 미처 응대하지 못한, 너는무엇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답변을 달아보았다.
너는무엇의 요점 : 그 당시에 전두환은 언론에 거의 노출도 안되고, 거물 정치인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호가 이미 전두환 퇴진이 나왔다.
그런데 구호가 이미 전두환 퇴진을 외치고 있었다는건 녹두서점에서 김대중 라인의 이종찬이 시위를 미리 계획하고 정부의 정보 입수 후에 주도했다는 증언과 증거가 있다.
부마를 보면서 정동년.윤상원 이런 학생회가 주측이 되어서 이미 김대중 구명 시위를 계획했다.
답변 : 가만보니 당시 신군부가 만들어낸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이 진실이라는 바탕에서 서술하는 듯 한데..
누가누가 어떤 이유로 시위를 계획했다는 이 자체만으로 무슨 문제가 되는가?
서울의 봄 시기에 민주화요구 시위는 민족민주화성회 등 전국적이었고, 대학가나 운동권에서 전두환의 존재나 그 무슨 정보를 가지고 시위를 계획했다는 내용만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당신들이 5.18이 민주화운동이 아니라고 폄하하는 핵심은 시위대의 무장여부에 있고, 그나마 그 문제 때문에 의의를 왜곡할 수 있는 것이지, 무슨무슨 시위를 계획했다는 이유로 설득력을 얻고있는 것이 아니다.
전사모부류는 또 이런 민주화시위들을 북괴와 엮는 무리수를 두고있지만, 이또한 끽해야 운동권의 소수 사회주의자들을 연루시킬 뿐, 북괴특수부대침투설과 같은 것은 이미 그 허무맹랑함이 입증된 것이다.
면박? 너는무엇? 맥궁 : 대학생들이 도서관 간다면서 가방에는 투석전대비 돌을 넣어 갔다는 기록이있다. 그 돌로 투석전을 벌여 부상당한 병력이 발생한거고, 그당시 및 지금의 진압상황 및 법으로는 체포다. 과잉진압은 반드시 과격시위가 진행되었을때 발생하며, 경찰이나 군인은 가만히있는 시민을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
답변 : 7공수가 광주에 도착한 것은 18일 새벽 1시이고, 곧장 시내 전역의 각 대학에 난입하여 철야중인 운동권 학생은 물론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까지 마구잡이로 곤봉구타와 함께 연행을 개시했다.
투석은 그날 아침 전남대 정문 앞에서 등교를 막는 계엄군과 등교하고자 하는 학생들사이의 충돌로 처음 시작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당시의 대학가 시위 방식은 투석전이 보통이었던 것으로 안다.
이때 곧바로 7공수의 곤봉진압이 시작되었고, 머리에 곤봉을 맞아 피를 흘리는 학생들이 속출하자. 시위가 더욱 과격양상으로 확산되게 된다.
공수의 과잉진압의 원인은 보안사의 부마학생소요사태의 교훈이라는 문건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시위학생들이 반항할 엄두를 못내도록 과감하고 공포스럽게 타격하라 교육하고 있다.
또한, 계엄군은 10.26사건 이후부터 12.12로 인한 군내 갈등, 각종 시위진압에 빈번히 투입되는 등으로 심신이 매우 지쳐있는 상태였고, 이처럼 자신들이 고생하는 원인이 저 시위하는 대학생들 때문이라는 증오가 있었다는 공수대원들의 증언들이 있다.
또한, 시위를 해산하는 목적이었다면 무리한 폭력을 행사할 필요가 없었으나, 끝까지 추격하여 잡아들이라는 지침에 따라 무리하게 체포를 강행한 이유도 과잉진압의 원인이었다는 공수대원들의 증언이다.
물론 시위대는 과격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과잉진압이 과격시위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면박.너는무엇 : 경상도군인들이 전라도 씨를 말리러 왔다는 흑색선전과 선동이 있었다.
답변 : 이건 이미 논했던 거지만, 일부 경상도출신 대원들의 극언이 시위대를 자극한 결과로 인한 소문에 의한 것으로, 아무 근거도 없이 만들어진 유언비어가 아니므로 흑색선전이라고 보기 어렵다.
5.18때 흑색선전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체가 모호한 유령단체명으로 작성된, 상무대에서 무기를 탈취했다는 둥의 사실무근의 삐라와 같은 것이다.
면박 : 월간 노동해방문학의 윤상원평전 내용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표방하던 전민련 상임위원 윤상원이 이미 5월 9일 무장봉기 논의가 있었다는 박노해 증언이 있다.
답변 : 그 책을 직접보지 않은 이상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으나, 증거기록이 아닌 한 작가의 회고를 바탕으로한 평전을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
시위대는 21일 이전까지는 각목이 무장(?)의 전부였다.
시위대가 무장한 것은 21일의 집단발포 사건에 의한 결과이고, 익히 말했다시피 이는 보안사의 공작으로 유발된 사건임을 추정할 수 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안사 문건에 의하면 21일 이전에 보안사가 홍성률 대령이 이끄는 요원들을 광주로 급파해 보안사요원(미 기밀문서에 의하면 이들은 606부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505보안부대원들과 함께 특수임무에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이 특수임무에 들어갔다는 시점부터 칼빈으로 무장한 복면조가 등장하고, 아세아자동차에서 장갑차가 탈취되는 등의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고, 도청 앞 집단발포사건 당시에도 도청 주변에 서성이는 것을 많은 시민들이 목격했다.
집단발포사건 이후 무기 탈취에 동참한 시민들의 증언은 하나같이 복면한 사람들의 인도에 따랐다는 증언이다.
21일 이후 시민대책위원회의 설득으로 소수 강경파를 제외한 대다수의 시민들은 무기를 반납했다.
전사모부류가 올리는 도청앞 무기 사진들은 바로 이런 반납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이는 계엄군이 시외곽 봉쇄에 들어간 뒤, 보안사가 취재진을 인솔해 촬영한 것들이다.
즉, 이와같이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위의 의의를 훼손하고 무력진압할 명분을 만들기 위한 일련의 공작이라는 것이다.
윌아빠 : 전국적으로 민주화운동 바람 불었던 시기에 그 어느 도시가 무기고 털어서 나라에 대적하더냐. 다른 도시에서 불었던 민주화 운동은 애들 장난이였냐? 광주에서만 총칼 들고 유언비어 남발하고 지들끼리 총질했던 이유는 뭔데? 만약 전국적으로 광주같이 총들고 일어 났으면 지금 대한민국이 존립한다고 보냐? 폭력 시위와 민주화운동 그리고 폭동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지.
답변 : 이게 5.18의 의의를 왜곡하는 핵심이다.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무장은 대량의 사상자에 의한 시민들의 분노와 이를 역이용해 무장을 유도한 보안사의 공작에 의한 결과임을 추정할 수 있다.
뭐 물론 전사모 부류는 이 복면조가 북괴의 특수부대라 주장하고 있고, 면박이는 박노해 평전을 근거로 윤상원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5.18의 의의는 훼손된 것이지 의의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므로, 무장문제만으로 5.18를 정의하지 말자.
부마항쟁도 10.26사건이 없었다면 어떤 비극을 만들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너는무엇 : 민주화라고 포장해놓은것도 부마에 힘입고 같이 나눠먹기한 김대중과 김영삼의 작품인데 의의라는건 좀 자제해라.
왜 김대중과 김영삼이 518을 민주화라고 붙인줄 아시나? 헌법재판소에서 광주관련해서 공소시효 연장 위헌 심판을 정동년 전남대 전 학생회장이 주축이 되어서 제기 했었는데, 그걸 미리 안기부 통해서 정보 입수하고 김영삼 김대중이 헌재 발표전에 자기들이 선수쳐서 정치적으로 둘이 쇼부치고 둘다 인기 짱 먹은 사실은 모르시나?
답변 : 5.18에 대한 평가나 사후의 헌재판결은 내가 논할 만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전문가들이 알아서 평가했겠지.
너는무엇 : 지금 당장 경북 구미에 가서 박정희 개새끼를 외쳐 봐라..
반대로 광주 518광장이나 구 전남도청사 앞에서 김대중 개새끼를 아니 김대중 이라는 단어만 외쳐봐라
답변 : 경북 구미에서 그랬다가는 어쩔지 몰라도 광주에서 그랬다고 뭐 잘못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이나 살아계시면 나이가 얼만데 시퍼렇게 젊은 놈들이 개새끼 운운하는지 참 한심하기가 그지없다. 누군가 화를 낸다면 그런 몰상식에 화내는 것일 것이다.
너는무엇 : 전라도와 경상도의 한나라당 득표율을 봐라
답변 : 몰표는 뭐 딱히 할말이 없다.
전라도나 경상도나 일부 열성 지지자가 아닌 이상 무슨 이념 때문에 그 당에 몰표를 주는게 아니라 자기지역 연고당에 표를 주면 자기지역에 득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에 의한 것으로 판단한다.
경상도는 전라도보다 정도가 덜하다고해서 몰표가 아니라고 우기지는 마라.
참고로 이번에는 처음으로 한나라당에 표를 줘볼까 한다. 이유는 별거 없다. 하도 표 안준다고 씹어대니 좀 덜 씹히고 싶어서 말이다.
훌륭하신 답변입니다
모든게 보안사와 전두환에 잘못입니다
하나도 인정하기가 싫으신 모양이시군요?
글구 자꾸 님은 광주5.18은 선동질한 보안사때문이고
전두환 잘못이라고만 하는데
정말 웃기지 않나요
우리는 평화적인 시위만 할려고 햇는데 보안사애들이 복면을 하고 선동질을
해서 무기고도 털었다 ㅋㅋ 우리는 죄가 없다 이거 아닙니까?
정확한 수치는 자료가 있지만 그냥 생각나는대로 쓰자면, 시민들은 시위도 안한사람까지 18일 첫날부터 사망자가 나왔고, 20일 전경 4분의 희생이 있기 전까지도 수명의 사망자와 수백의 부상자 천단위의 연행자가 나왔으며, 21일 무장전까지만 70여명의 시민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계엄군의 희생은 23명인데, 이중 13명은 공수와 20사단이 서로 오인하여 교전하다가 희생된 것이고, 시민군에 의한 희생자로 추정되는 군인은 10명이
평화적인 시위만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과잉진압 때문에 시위도 과격해졌다는 이야깁니다. 거기에 복면조의 선동과 공작이 무장을 이끌어 시위의 의의를 훼손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잘 읽어보시고 다른 의문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오씹팔 광주폭동이라는 큰 그림은 전두환이 그린게 아니라 개대중이와 북의 협력자들이 그린거다.
지금도 너희들은 북의 협력자들과 그런 그림을 충분히 그릴수 있는 앙금을 풀지 않고 있다.
문제는 너희들의 문제 해결 방식이 분노와 반항에 국한한다는것이다.
이것은 북의 노선이기때문에 우리는 수용할수가 없는것이고..
너희들이 다소곳이 우리의 품에 들어오면 늘 두 팔 벌려 안아줄 준비가 되어있다.
적화통일의 야욕에 휘둘리지 마라
별로 너같은 것한테 안기고 싶지는 않구나. 내가 호모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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