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는 (좀 뭐하지만) 역사학도의 편집 영상
아래는 87년 신동아 김영택 기자의 기사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837&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B1%E8%BF%B5%C5%C3&sop=and
이중 복면부대에 관한 내용 캡처
나 좀 쉬게 해주라. 면박아!
내가 올린 88년 광주청문회 증언과 일치하네?
5. 21일 이미 도청발포 이전 시위대 무장했다는 걸 증언하고 있는거 아니냐?
뭐하는겨?
기사를 읽어보면 김영택 기자는 21일 까지만 해도 그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으나 22일부터 많아졌다고 한다.
21일 당시 다른 시민들의 증언도 있으니 또 뒤저보마.
김영택기자 증언이 바로 그거구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던가..
낼은 일때문에 못오니 모레 오던가..ㅇㅋ?
21일 오후 계엄군이 도청에서 빠져나가고 시민군이 도청을 접수한 이후 복면을 한
사람이 부쩍 많이 눈에 띠었다!
21일 오후 계엄군이 도청에서 빠져나가고 시민군이 도청을 접수한 이후 복면을 한
사람이 부쩍 많이 눈에 띠었다!
내말대로 도청발포이전 무장한 시민들중엔 없었다는 거!
복면 시위대 정체는 둘째치고..ㅇㅋ?
이재의님의 증언록
22일의 복면은 21일에는 수건이었다는거지.
보안사 프락치들이 타올벗고 복면 덮어 쓴 거시냐?
너 술 쳐묵었냐? ㅋㅋㅋㅋㅋ
하여간 요지는 21일까지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가 22일부터 눈에 부쩍 띈 이유는, 21일까지는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어 머리에 두르거나 목에 걸치고 있다가, 22일부터는 가릴 필요가 있어 복면이 되었다는거지. 한여름도 아니고 일반인들이 굳이 수건을 그렇게 단체로 구비할 필요는 없거든.. 뭔 노가다꾼들도 아니고..
물론 가릴 필요는 보안사가 인솔하는 취재기자들의 사진에 찍히는 것을 염두하는 것이고..
좀 진득하니 기다려라.
요지는 니말대로 5.21일 도청앞 발포이전 5.20일 저녁 이미 시위대 무장은 각목만이
아닌 카빈무장도 했다는 증언은 인정해야지. ㅇㅋ? 수정해라. ㅋㅋㅋ
시민들이 무장하게 된 것이 21일 집단발포 이후인거지.
5.21일 타올 덮어쓴 시위대 증언 올려놓고?
김영택기자 증언은 본격적으로 22일이후 부터라 하는데?
도청 접수했으니 복면 덮어쓰고 저항했겠지?ㅇㅋ?
보안사 쁘락치라면 이미 많은 사망자 나온 마당에 뭐더러 사태를 더 크게 만들려
무기반납 방해하고 더 악화시킬 필요성이 있었을까? 과연?
납득 불가인 망상이라 본다.
이건 21일 복면과 총기무장을 한 사람들에 관한 증언인데, 지금 파보니 수건이나 복면과 관련한 증언을 하는 사람들이 죄다 20대 초중반의 남성들인데, 복면부대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만, 이거 섣불리 더이상 건드릴 문제가 아닌거 같다.
이건 5.18재단쪽이나 그런쪽에 재안을 해야겠군.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시간이 5.21일 11시나 12시쯤..
올라탄 지프 바닥에 총이며 실탄이 널부러져 있었구마이~
자폭하냐?ㅋㅋㅋ
시민들이 빵,콜라,수건등을 엄청나게 쌓아놓고 있었으며..수건을 손에 잡히는대로
던져 주었다..
시민들이 빵,콜라,수건등을 엄청나게 쌓아놓고 있었으며..수건을 손에 잡히는대로
던져 주었다..
보안사 프락치들헌디 막 수건을 떤져준겨? 그런겨?
잔다! ㅋㅋㅋ
찾아보니 복면에 관한 증언자들이 죄다 20대 초중반의 남성들인데..
일반시민들이 '보안대에서 시위하는 시민들을 무비 카메라로 찍어 잡아들인다'는 정보를 어떻게 알았고, 또 왜 하필이면 수건을 나눠줬겠냐? 5월이 무슨 한여름 무더위도 아니고..
그래서 내가 더이상 건드릴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하는거 아니냐.
결론은 21일 집단발포 전에도 복면조가 있었다는 것이고, 다만 김영택 기자가 복면을 본격적으로 목격한 것은 22일부터라는거지.
20일 선무방송중인 헬기에도 소총사격이 있었다는 증언이있었으니
19일 나주예비군대대 사적비 비문에서 무기고 탈취가 19일 오후3시였다는
비문내용도 일부 신빙성이 있을수 있겠습니다
이데아님 전에 나주 사적비 비문내용을 말한적이있는데요
한번 방문하셔서 탐독하시는것도 좋을듯합니다
비문내용을 사진으로 올려주시는것도 도움이 될것 같구요
소수 복면조의 무장은 21일 집단발포 이전에 있었으나, 일반시민들의 무장은 집단발포 직후 그 복면조들의 인도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건 증거가 얼마든지 널려있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사람이 그토록 애써 설명을 해주는데도 자꾸 1357 뜨문뜨문 보시는데.
선무방송 헬기에 소총사격은 21일의 일이라고, 이무길님의 증언록과 당시의 상황일지를 대조하여 이미 입증해 드렸는데도, 전혀 읽어보지 않은 것 같군요.
이무길님 증언록 분석 주소 다시 붙여드립니다.
또 나주 사적비는 21일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데, 이를 김동문이 역사학도의 날조편집영상을 근거로 19일인데 21일이라 써놨다고 우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 김동문의 기사 원문 주소입니다.
http://www.jngoodnews.co.kr/sub_read.html?uid=41949§ion=section39§io
이것을 김동문은 역사학도의 날조편집 영상을 근거삼아 제멋대로 19일인데 21일로 잘못 써놨다고 우기고 있는 것입니다.
맥풍님은 그래도 다른놈들과는 다르리라 생각했는데, 사람이 그토록 성의를 가지고 응대해주는대도 진실하게 받아드리지 않고 완전히 1357 뜨문뜨문 장난으로 받아드리고 있군요.
아주 불쾌합니다. 살망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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