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게시판 글들을 읽다가 저도 예전 군생활 시절 기억들이 떠올라서 남겨 봅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1999년도에 입대를 했었지만 저는 정말정말 지긋하게도 가고 싶지 않아서 버티고 버티다 '그 와중에 신검에서 현역 1급판정'.....빼도박도 못하....
그 다음해인 2000년 2월14일에 논산으로 현역 입대를 했네요. 그 날이 발렌타인 데이라서 지금도 정확히 입대 날짜를 기억하는것 같네요. 당시 부모님 형 그리고 여친이 입대 배웅을 해주었었네요.
집이 서울 혜화동이어서 아버지께서 운전하시고 한차에 다섯명이 빽빽히 타고 아침일찍 출발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ㅎㅎ
당시 군대에 대한 빽이 없던 저도 평범하게 남들처럼 입대 날짜를 받고 입대하는 흔한 대한민국의 남자 였었네요.
논산에 약 1시간정도 입대 시간보다 일찍 도착헤서 근처 식당에서 입대전 마지막 식당음식을 먹는데 입대생각에 복잡해진 저는 뭐를 먹는지도 안 느껴지더군요
입소시간이 다가오자 여친은 울고불고...근데 누가 그럽디다 남친 입대할때 슬프게 눈물 흘리고 우는 여친과는 오래 못가서 헤어진다고 ㅋㅋㅋ
저 역시도 그 논리에 맞아 떨어져서 일병때 이별통보를 받았었구요 ㅎ
입소식 마치고 모든 가족들이 떠난 후 저처럼 어리버리 신병들만 남게되자 바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기간병 조교들의 쌍욕
이때부터 군생활 제대하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들을 다 들어본것 같네요.
당시 훈련소 연대가 구 막사여서 내무실 관물대는 나무들이 다 썪어 흔들거리고 수시로 쥐'찍찍' 소리가 들리고 여튼 진짜 단, 일분도 머무르고 싶지 않던 내무실이었습니다.
다음날부터 군복의 이름표 옆에 매 주차마다 검은줄로 작대기 한줄한줄 그어가며 매일매일 기초 훈련과 이론도 습득했었네요.
주말이 되면 일요일 오전에 종교활동을 의무적으로 가야 했으며, 저처럼 종교가 없던 사람도 반 강제로 어디든 가야 했습니다. 아 맞다! 정말 본인이 희망하지 않으면 남들 종교활동가서 초코파이든 절간 밥이든 먹고 올때 내무실에 남아서 똥간 청소와 작업을 하면 되는데 솔까 일요일마저 누가 저딴 작업 하고 싶습니까? 그래서 저는 주마다 종교를 바꾸어서 가보았어요. 천주교, 불교 그리고 기독교...
*천주교 - 생활하던 내무실에서 위치적으로 제일 가까웠습니다. 빼빼로와 과자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불교 - 위치적으로 생활하던 곳과 제일 멀어서 많이 걸어가야 했었지만, 초코파이와 탄산음료 콜라를 주더군요 ( 경험하신 분들은 하시겠지만 특히 훈련병 시절의 초코파이와 달짝지근한 콜라는 종교도 바꾸어 줍니다 ) 그래서 불교를 계속 갔던걸로 기억납니다.
*기독교 - 알지도 못하는 찬송가 끝없이 부릅니다. (먹는것도 희한하게 기억이 안나지만 제일 별로였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종교 활동을 하고 복귀하면 약간의 개인정비 활동 시간이 생기며 이때 날이 좋으면 단체로 모포 담요 들고 나가서 2인1조로 먼지 텁니다. 상대의 눈을 마주보며 ㅋㅋㅋ 왜들그리 콧물들을 흘렸는지 ..서로 서로 상대에게 너 오늘 진짜 거지같다고 비웃습니다. 콧물에 건조한 겨울날씨에 입술은 다들 말라 터지고 불쌍하게 보일수 밖에 없지요. 먼지털면 철제나 목조위에 널어서 일광소독을 합니다.
그리고 나면 '일명 열외없이 세면백 챙겨서 집합~!' 조교가 한마디 합니다.
연병장 집합 후 발맞추고 군가를 부르며 공용 샤워실로 이동합니다. 이때가 유일하게 따슨물에 샤워하는 유일한 시간. 근데 시간을 진짜 짧게 줍니다. 즐길 시간이 없고 진짜 들어가자마자 5분안에 다 끝내고 나오라 합니다. 대충씻고 쫓기듯이 나오면 이미 다른 연대 훈련병애들이 꼬질꼬질하게 우리처럼 샤워를 위해 대기 중입니다. ㅋㅋㅋ
매일아침 일조점호가 시작되는데 그거의 마무리는 늘 상의탈의 연병장 세바퀴 구보였습니다. 2월이지만 아시죠? 군대안에서의 겨울은
지역이 어디든 개같이 춥고 힘든거....추워요..ㅠㅠ. 그래서 이 구보를 어떻게 하면 열외를 할까하고 머리를 굴리는데, 어느날 조교가 그러더군요 오늘부터 세명은 구보 열외 후 대신 화장실 아침 청소를 한다! 지원자? 이러길래 무조건 손들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로
장비? (집게, 꽝꽝 얼어터진 대걸레) 자루 들고 들어가자마자 후회했죠...각각의 사로 화장실 칸마다 밤사이에 푸세식이라서 미쳐 내려가지 않은 미사일같이 생긴 애들이 꽝꽝 얼어서 그걸 집게로 들어서 처리 했습니다. 나름 비위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 당시의 똥에대한 트라우마는 오래 가더군요. 훈련병애들이 각지에서 모여서 초반 극심한 군생활 단체생활 스트레스에 변을 잘 보지를 못하고 길게는 일주일만에 변을 보는 동기들이 많더군요...그러니 저런 고폭탄같은 미사일이 나오겠죠..-_-;;;;
다들 한참 나이라서 먹는거에 민감한 시기죠? 특히 군대 안에서는 더욱더 치열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 시절 짠밥만큼은 괜찮게 나왔던걸로 기억합니다. 취사실에 들어가면 동네 아주머니들같은 분들이 중간중간 섞여서 음식들을 만드시더군요 이때 제일 좋아했었던 메뉴가 닭튀김, 닭 미역국, 햄버거 였었네요. 근데 짚고 넘어가야 하는게 간부 그리고 조교들이 먼저 배식을 받거든요? 멀리서 줄서서 보면 간부, 조교들은 일단 넘칠정도로 배식을 받아 갑니다. 그리고 우리 차례가 오면 뒷사람거 부족이라는 이유로 작게작게 줍니다. 군대라는 작은 사회에서 차별은 존재 하더군요..그리고 꼭 어딜가나 잔대가리 굴리는 애들 있잖아요?
예를들어서 햄버거 나오는 날 햄패티 뒤로 몰래 더 빼돌려서 관물대 반합에 짱 박아놓고 밤에 꺼내서 먹습니다. 지들 먹는거 신경 안쓰는데 꼭 밤 일직 사관에게 냄새 때문에 걸려서 저는 잘 자다가 야밤에 전체 기상집합 당해서 연병장에서 약1시간 단체 얼차려 받습니다. 이때 진짜 걔들 패 죽이고 싶...
또 기억나는 특이한건 저희보다 한달 뒤늦게 입소한 훈련병 애들이었는데 희한하게 얘들은 맨발로 다니더군요 배식 밥먹을 시간에 자주 마주 치는데 계속 맨발로 다니길래 식기 청소하다 마주쳐서 진짜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맨발로 다니냐고 물어보니 '자기중대 중대장이 이렇게 하면 무좀박멸이 되고 발냄새 없애는데 효과적이라고 상급에 건의해서 자기들이 일종의 마루타 라고, 발바닥 아퍼서 죽겠'다고 울먹 거리더군요...하... 지휘관의 능력이 떨어지면 부대원들은 개고생합니다.
다른 신교대는 모르지만 당시 논산에는 훈련병들에게 주특기 심사라는걸 해서 각각의 훈련병에서 주특기라는걸 부여 해주더군요 이게 아주 중요한게 앞으로 군생활동안 땡보가 될지 꼬이게 될지 결정지어지는 운명 같은거라서 당시 동기들하고 서로서로 좋은 주특기 배정 받기를 응원해준것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이때 전반기 훈련기간은 8주 (두달)로 기억합니다. 더럽게 안가던 8주가 지난 후 퇴소하기 전날 내무실방송으로 이름들을 호명하며 몇 그룹들로 나뉘어 지더군요 저의 이름도 호명되어지고 뛰어나가보니 이미
저처럼 약 30명정도가 무릎앉아 자세로 대기중이더군요... 잠시 후 중대장님이 앉아서 우리를 내려다 보며..한숨을 쉬더군요, 느낌 쌔한거 있죠?....ㅎㅎㅎ
"지금부터 여기 있는 인원들은 박격포 주특기를 받게되고 후반기 교육은 이곳의 26연대 박격포 중화기 훈련연대로 전원 이동하게 된다."
때깔나는 주특기가 아니라고 좌절하지 말고 모두 군생활 건강하게 마무리 잘해라! 이렇게 알려 주시더군요. ㅠㅠ
대학 전공이 보건이라서 내심 의무병 주특기 받을줄 알고 기대했었는데, 당시 조교의 귀뜸으로는 의무병 인원이 이전 훈련병들로 꽉 차서 너처럼 남은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랜덤으로 주특기를 배정 받는거라고 하더군요..-_-;
역시 군대는 줄 잘서고 운대가 잘 맞아야 합니다.
나중에 퇴소할때 알게 되었는데 그 당시 공익 근무자들이나 사회적 국가공인으로서 입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짧은 4주였나? 그렇게만 기초 훈련을 받고 퇴소하더군요. 그리고는 각자의 동사무소나 지하철이나 근무지 이런곳으로 가던지 아니면 군생활 끝!
퇴소식 아침이 밝아지자, 동기들끼리 서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이때 마치 서로 군생활 끝난것같은 착각..사실 아직 시작도 안한건데 ㅋㅋㅋ
어떤 동기들은 전차조종? 주특기 받고 전라도의 어떤 전차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버스로 이동하고
어떤 동기들은 교도관? 기간병으로 가게 된다고 전투복 모두 반납하고 각잡힌 버스로 교도대로 이동하는 애들도 있었고
여튼 우리만 빼고 모두들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뿔뿔히 어디론가로 흩어지더군요. 우리 동기들은 저를 포함해 조용히 한숨과 쌍욕을 날리며 군가를 외치며 더블백을 메고 도보로 옆 연대로 이동을 했었죠.
이렇게 지긋지긋한 논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후반기 교육을 2주+ 대기3주 (총 5주)를 마치고
이때당시 전반기에는 없었던 조교들의 구타가 정말 심하더군요, 지금도 잊지 못하는게 (일병 조교 두마리 지들끼리 동기였음..) 이 두마리가 진짜 악마처럼 취침전까지 우리 훈련병들을 엄청 패더군요.
군가 틀린다고 옆에서 인솔하다가 귓방망이 날리고, 발 못 맞춘다고 열외 시켜서 쌍싸다구 날리고..등등..하...지금도 이가 갈립니다. 그때 생각나면.
근데 얘들도 웃긴게 매일 아침 새벽 기상시간에 우리를 깨우러 오고 집합 시킬때마다 얼굴에 진짜 피멍과 맞아서 부은 흔적이 심하더군요. 추측하기에는 조교들 기간병들끼리 후임들에게 구타가 심했을 거라 의심됩니다. 그 일병 두마리는 그거에 대한 화풀이를 우리 훈련병들에게 했던것 같구요. ㅈㄹ같던 후반기 교육도 다 끝나고.
주특기번호 1124 '81mm'박격포를 부여 받고 드디어 논산에서 자대를 향하여 퇴소를 합니다.
논산에서 버스로 대전역으로 이동 후 그곳에서 호송담당 기간병의 인솔하에 어디인지도 모르는 자대를 향하여 기차에 올라 탑니다.
부모님과 여친이 너무 그리워서 호송관에게 똥싸러 간다고 보고한 후 똥간 앞에서 지나가던 인상 좋아 보이시던 어떤 아저씨게 실례지만 집으로 전화 한통 사용해도 되겠냐고 요청하니
흔쾌히 당시 최신기종 스피드011 핸드폰을 주시며 신경쓰지말고 얼마든지 쓰고 나오라고 주시더군요. 그 후 약 10분동안 기차 화장실 안에서 부모님과 여친에게 열심히 전화하고 그 분께 감사드린다고
꾸벅 인사 드리고 내 자대는 어떤 지역이 될까하는 걱정과 근심에 초조하게 호송관에게서 내 이름이 호명되는걸 기다렸었죠. 그 호송관이 그때 계급이 상병이었었는데 우리들 그 때 아마 5명정도가 저처럼
자대역으로 향하는 인원 이었던것 같네요
호송관 '너희들은 지금 경상도를 향하여 내려가는 기차에 올라탄거고 자대는 경상도 어딘가가 될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호송관 기간병이고 나처럼 땡보는 못봤다 ㅋㅋㅋ' 이 ㅈㄹ을 떨면서
지가 땡보인거를 떠벌리며 자랑질 하더군요..
같이 내려가던 자대배치 받는 인원들 모두 포항, 경산 등등에서 내리는데 저만 끝까지 이름이 안나오더군요 결국 종착역 부산이 저의 자대지역이더군요.
내려서 어리바리 부산역 1층으로 내려가니 작은 구석 한곳에 군복입은 사병이 보이고 힐끗 저를 보더니 '이름? 군번?' 물어 보더군요
물어보는대로 대답하니 저기 구석 의자에 찌그러져서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약 1시간을 멍하며 대기하니 1호차는 아니고 중간부 급들이 타던 각잡힌 군용 차량이 와서 저를 태우더군요
그렇게 53사단으로 호송되고 본부중대에 대기 하라고 해서 그때가 약 낮2시? 본부중대 내무실에 각잡고 앉아서 불안한 심정으로 대기타는데, PX병으로 보이는 기간병이 오더니 낄낄낄 웃으며 '신병이냐?'
물어 보길래 '이병 xxx!!' 각잡고 외치니 '배고픔?' 이러길래 ..'잘 모르겠습니다! 어버버.....' 이러니까 ㅋㅋㅋ PX로 데리고 가더니 냉동 몇개를 돌려 주더군요. 그때의 냉동맛은 지금도 잊지를 못하네요 ㅎㅎ
다시 내무실로 돌아온 후 복잡한 마음으로 각잡고 운명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흘러서 일과가 끝날 시간이 되니 내무실 인원들이 하나둘 복귀하더군요. 한 30명정도가 들어 오면서 힐끗힐끗 저를 보고 웃거나 째리거나 관심집중이 되어지니 더 피가 바짝바짝 마르더군요. 속으로는 '이상하다? 나는 박격포 주특기인데..여기 사람들은 취사병, PX, 무전병 혹은 운전병들만 보이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또 다시 저에게는 숨이 마르는 시간이 흘러서 저녁 점오 시간이 되어가고 끝없는 각을 잡고 구석에 찌그러져서 앉아 있었네요. 점오 시작이 되고 간부가 들어오더니 저를보며 지금 여기 신병은 너희들의 후임이 아니다
며칠간 여기 본부중대에 대기 후 신병이 가야할 자대로 이동갈거다. 그러니 잘 챙겨주도록! 이러고 일석점오를 끝내더군요..즉 이곳은 내 자대가 아니고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대기장소인거죠.
순식간에 그 안의 기간병들에게 저는 타 부대 아저씨가 되어버린거죠 ㅋㅋ 그래도 당시 저는 신병인대다가 군기가 바짝들어서 저에게는 모두가 그냥 고참으로 보였고 특히 병장 계급을 달고 있던 고참들은 천상계 신으로 느껴지더군요 ㅎㅎ
그렇게 며칠동안 대기하며 이때 내무실의 상병계급이었던 PX기간병이 저를 그렇게 잘 챙겨주더라구여, 이유가 자기가 그렇게 친했던 친구랑 저랑 많이 닮았다며 틈나면 px데리고 가서 냉동 돌려주고 수신자부담 전화기 사용하게 해주고 그 당시 그 기간병에게 정말 고마웠었네요. 그렇게 살짝 군기가 풀린 저는 하는거 없이 며칠을 내무실에서 대기하며 이등병이라는걸 망각해 갈때즈음 저의 자대에서 저를 데리러 간부용 지프차량이 도착하였고 산적같이 생긴 중위의 간부아재가 탄띠를 다 풀어 헤치고 내리더니
제 이름과 군번줄의 군번을 확인 하더니 저를 태우고 자대로 향하더군요 그렇게 차량은 부산 도심을 헤치며 어떤 한적한 지점으로 차가 올라가더군요.
속으로 '아 이제 진짜 자대로 가는구나! 정신 바짝 차리자!' 다짐하며 내려서 대대장실로 들어가니 어떤 또 다른 이등병이 각잡고 더블백을 짊어지고 앉아 있더군요, 알고 보니 저랑 같은 입대날 출신의 동기였으며 이 친구는 레이다 주특기 교육을 받고 레이다 기지로 가게 될 신병 이더군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옮겨갔던 레이다 기지는 진짜 한적한 곳에 위치하며 내무실 총 인원이 6명? 그중 한명은 그들의 밥을 책임지는 취사병. 유격/ 혹한기 전부 열외. 군생활의 대부분은 취침시간 제외하고는 레이다 기계앞에서 바다의 배들을 분별하는 보직이더군요. 먼 훗날 서로가 병장말이 되어서 전역 신고할때 (입대날이 같은 동기라서 전역 신고하러 저희 자대로 왔더군요...반가웠어요^^) 이 친구가 그때 저에게 얘기해준 내용들이네요..덧붙여서 자기 자대배치 받고 얼마 안되서 취사병이 지병으로 의가사 제대했을때 제 생각이 나서 애타게 저를 추천했었다더군요 ' 이 친구는 그 당시 사단 작전참모분이 자신의 친척이라 빽이 좋았다네요' 근데 뭔가가 안맞았는지 그의 의견은 사단에 관찰되어 지지 않았다네요.
다시 전입신고의 상황으로 돌아와서 대대장실에서 대대장이 오기를 기다리며 각잡고 대기타고 있으니 키가 엄청 크신 중령 계급의 대대장님이 인자한 웃음으로 들어 오시며 '신병 이구나?!' 질문 하시길래
그때 저는 반사적으로 목이 터져라 "이병! xxx! 53사단 xx연대로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충성!!!!!
살면서 그렇게 누군가 앞에서 긴장을 해본적이 처음이었던것 같네요. 그렇게 제일먼저 대대장님께 전입 신고를 마치고, 상황실 안으로 들어가니 자대의 모든 간부들이 다 모여 있더군요, 작전회의가 막
끝났었던 상황에 제가 들어가게 된거죠. 그 순간 중대장들 비롯해 행보관등 모든 간부들에게 얼떨결에 충성 때리고, 또 다시 목이 터져라 전입 신고를 했네요.
내가 소속된 중대의 중대장님도 계셨었고 바로 내무실로 데려가시더군요, 그렇게 숨막히는 시간이 지나고 더블백을 메고 앞으로 군생활을 하게 될 내무실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더군요, 한참 일과 시간이라
다들 부대 주변 제초 작업이 끝나면 복귀할거니까 그때까지 편하게 기다리라고 하고 중대장님은 나가시고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각잡고 앉아서 관물대에 붙어있는 고참이 될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 둘씩 힐끗힐끗 읽어 보기도 하고 내무실 입구에 있던 깨끗한 정수기계 냉,온수가 다나오고 정면에는 크게 '예비군 사단 기증품' 이렇게
붙어 있던 정수기도 신기하게 쳐다보고, 예상보다 작았었던 손바닥만한 V자 안나가 붙어있던 TV에 실망도 하고 바로 옆에 건물에 붙어있는 공용 샤워실도 들어가보고 같은 공간 작은켠에 만들어져있던 이발장소
이발소 의자 두개와 바리깡 도구들도 만져보고 저 멀리 보이는 부대입구와 보초 근무를 서던 두명의 기간병들 간부의 차들이 출입시에 수시로 울려퍼지는 그들의 총세워 충성 근무중 이상무! 외침도 듣고
'아, 이제 진짜 군생활의 시작이구나!' 이렇게 다짐하며 다시 내무실로 돌아와서 어떤 괴물같은 고참들이 저 문으로 들어올까 라는 상상을하며 초조하게 고참들의 복귀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
글을 쓰다보니 예상보가 길어지기도 했고, 두서가 없는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ㅎ
본격적인 자대 생활기 (귀신본것, 상상을 초월하는 또라이 고참, 자살병 목격...등등)는 혹시 반응이 좋으면 나중에 시간이 되면쓰도록 할께요.
방갑네요.
전 97군번인데 훈련소기억이 거의없네요.
잊고싶은 과거라서그런지 정말 기억이없네요.
다만 전차조종수 주특기받아서 광주상무대가서 후반기교육 12주인가 받았고.
말군번이라서 파주2기갑 자대배치 받고가니 바로 일병달았고, 후반기 짧은 후임들이 먼저 와있더라는ㅋㅋ
글 잘 읽었습니다.
거의 저와 비슷한 과정을 밟았군요.
94년 12월 1일 - 논산 훈련소 (30연대)
95년 1월 말까지 - 논산 훈련소 (28연대)
95년 1월 27일 7508부대 의무중대 전입
97년 2월 6일 전역...
고생도 많았고 추억도 많았던곳!
제대한지 20년 다 되었지만..
다시 그시절 그나이로 돌아갈수 있다면
좋겠네요.
재밌네요 2편도 기대할게요~
지금도 주마등처럼 생각이 많이나네요
좆 같았습니다
저는 14군번 운전병출신이에요
부산 사는데 입대는 해운대 53사단 신교대로 입대해서
후반기 교육은 경산의 2수교가서 받고 대전에 있는 군수지원부대로 가서 생활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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