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있는 중앙백화점 '쭘(ЦУМ, TSUM)'은 소위 명품백화점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저 유명한 모스크바 국영백화점(굼, ГУМ)이 비싼 잡화(백화)를 취급하는데 반해 이 백화점은 가장 핫(hot)한 쇼핑 플레이스로 패션 아이템, 의류 브랜드와 가방류 등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라고 보시면 될듯 싶습니다.
쭘 백화점을 의인화하자면 러시아의 패션리더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이 백화점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외부 쇼윈도에 배치되는 패션 아이템들과 예술적인 디스플레이는 러시아의 한 시즌 빠른 트랜드를 보여주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각설하고.
9월 말에 설치된 쭘 백화점의 외부 쇼윈도가 요 몇주 간 화제를 모았습니다. 특정 패션 트랜드로 인한 것이 아니라 파격적인 디스플레이로 인한 것인데요. 모스크바 뿐만아니라 러시아 내에서도 논란이 일었던 시도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백화점 외부 쇼윈도 전체에 '섹스하는 로봇들'을 배치시킨 것입니다.
백화점 외부 각각의 쇼윈도에 설치된 로봇들은 다양한 체위의 아크로바틱한 성관계 장면을 연출하는데요. 흡사 카마수트라의 그것을 연상시킵니다. 이 디스플레이는 일명 '로봇 포르노그라피'라고도 불리우며 조명과 어우러져 밤시간에 더욱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었습니다.
비록 자세는 적나라하지만 배치된 로봇들은 그저그런 마네킹이나 조잡한 수준의 카피가 아니라 정교한 미래의 로봇을 보여줍니다. 일견 윌 스미스 주연의 2004년 영화 '아이, 로봇'과 니헤이 츠토무의 '블레임(BLAME!)'이 떠오를 정도로 외양은 고급스럽습니다.
세간에는 '포르노 디스플레이'라는 비아냥과 '멋진 시도'라는 반응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데요. 옳고 그름을 떠나 화제를 모았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너무 앞서갔던 탓일까요? 이 디스플레이가 설치된지 얼마 되지않아 '러시아시민연합'등의 시민단체의 비판성명과 피켓시위 및 광고 허용범위에 대한 법적인 고발 등이 이어졌는데요. 이 단체들은 푸틴 총리와 세르게이 소비아닌 시장에게 디스플레이 설치 철거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낼정도로 격렬한 반대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시민단체들이 반대했던 이유는 수도 모스크바 중심가에 있기에는 부적합한 광고이고 어린이에게까지 제한없이 노출된다는 점, 그리고 법적 광고제한요건인 외설적이고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특히 이들이 집중적으로 문제를 들었던 것은 로봇 디스플레이 중에 정액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시민단체의 반발과 법률상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시당국의 소견이 있어 쭘 백화점은 설치 3주만에 이 로봇들을 쇼윈도에서 철거하게 됩니다.
이 섹스하는 로봇 디스플레이는 러시아 사회에 두 화두를 던졌다고 보는데요. 첫째로 그간 무분별하게 난립하던 섹스어필한 광고와 디스플레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느 점. 둘째로 러시아 시민단체가 거대 백화점을 상대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킴으로써 향후 시민단체들의 활동에 힘이 실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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