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근현대사와 역사를 소셜미디어로 처배우면 이런게 나오는겁니다.
세상에 영화 몇편만 봐도 어떻게 살고 그래서 부하의 총에 처맞아 뒤졌는지 알텐데
그냥 "아몰랑-" 이ㅈㄹ하며 사네요. 니 주장을 씨불이려거든 경청도 해야지요.
아이디 꼬라지만 봐도 수준이 어디 별 깽깽이.. 됐다^^ 그냥 그렇게 처 살어ㅎ(비웃음)
어이가 없네요. 프랑스 식민지가 된 것이 1697년, 독립한 것이 1804년 그리고 계속된 독재...정권...뭔 얘기를 하는지...프랑스에 대한 적대감 형성이 목적? 왜? 왜?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C%9D%B4%ED%8B%B0%EC%9D%98_%EC%97%AD%EC%82%AC
뭘 알고 악플 다냐 ㅋㅋ 하여간 선동에 휘둘린
는 건 최고라니까. 아이티가 독립한 시기와 부채 탕감한 연도를 좀 찾아봐라. 영향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게 치면 1900년대 이후 비슷하게 힘들었던 우리나라도 최빈국 서열에 끼어야 하지만 지금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으니.. 프랑스만 탓하기엔 아이티 정치 상황이 건강하지 못했지
1825년 프랑스의 1억 5,000만 프랑 요구 (사실, 세부 비교 수치 정정)
배상 요구 자체는 사실입니다: 1825년 프랑스 국왕 샤를 10세는 군함 14척과 500문 이상의 함포를 앞세워 아이티 수도를 포위한 뒤, 식민지 상실과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의 '재산(노예 포함)' 손실을 보상하라며 1억 5,000만 프랑(금화)을 요구했습니다. 피지배 민족이 독립을 쟁취했음에도 도리어 옛 지배국에 배상금을 바쳐야 했던 기형적인 착취 사건이었습니다. 아이티 수입의 10배는 사실입니다: 당시 신생 아이티 공화국의 연간 국가 세입은 약 1,000만 프랑 안팎이었기 때문에, 1억 5,000만 프랑은 아이티 정부 1년 세입의 15배(아이티 국가 10년 치 이상의 예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맞습니다. 정부 수입의 80% 지출과 공공 인프라 마비 (사실)
아이티는 첫 분납금(3,000만 프랑)을 내기 위해 프랑스 민간 은행에서 원금의 20%를 수수료로 떼이는 약탈적 고리 대출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원 배상금뿐만 아니라 막대한 대출 이자까지 갚아야 하는 이른바 '이중 부채(double debt)'에 갇히게 되었습니다.미국 외교협회(CFR)와 2022년 뉴욕타임스(NYT)의 심층 탐사보도에 따르면, 아이티는 19세기 내내 국가 세입의 70~80%를 이 부채의 원리금을 갚는 데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학교, 병원, 도로 등 근대 국가 형성에 필수적인 공공 투자가 1세기 이상 마비되었습니다. 2004년 프랑스의 반환 거부 (사실)
아이티 독립 200주년이었던 2003~2004년,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 당시 아이티 대통령은 과거 강탈당한 배상금의 현재 가치를 약 217억 달러로 추산하고, 불법 협박에 의한 원인무효라며 프랑스에 전액 반환(Restitution)을 공식 요구했습니다.프랑스의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정부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후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2004년 2월 쿠데타로 축출되었습니다).
122년에 걸친 상환과 최빈국 전락 (사실)
배상금 원금은 1838년에 9,000만 프랑으로 감액 조정되었으나, 차관 상환과 이자 지급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습니다. 1915년 미국의 아이티 군사 점령 이후 채권은 내셔널 시티 뱅크(현 씨티은행) 등 미국 금융권으로 승계되었고, 아이티가 이와 관련된 마지막 부채를 최종 완제한 해는 1947년이었습니다. 1825년부터 계산하면 정확히 122년이 걸렸습니다.
한때 카리브해에서 가장 부유한 '안틸리스의 진주'로 불렸던 아이티는 1세기 넘게 이어진 수탈과 외채 상환, 그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겹치며 현재 서반구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국가이자 유엔(UN) 공인 최빈개도국(LDC)에 머물러 있습니다.
1. 상실된 경제적 기회비용: 210억~1,150억 달러
실제 지불액: 아이티가 1825년부터 상환한 배상금 원금과 이를 갚기 위해 빌린 차관 이자 등을 모두 합치면 현재 가치로 약 5억 6,000만 달러에 달합니다.
누적 경제 손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등 저명 경제학자들과 함께 분석한 결과, 이 자금이 유출되지 않고 아이티 내 인프라·교육 등에 재투자되었다면 200년간 국가 경제에 기여했을 가치는 최소 210억 달러(약 28조 원)로 추산되었습니다.
2. 프랑스 금융기관의 국고 장악과 에펠탑 건설 자금
중앙은행의 사유화: 1880년 프랑스 민간 은행인 CIC는 아이티 국립은행 설립을 주도했으나, 은행 본부를 파리에 두고 아이티 정부의 모든 통화 발행과 수출입 관세 징수에서 수수료를 떼어 파리로 송금했습니다.
에펠탑 자금 유입: CIC는 아이티에서 빨아들인 막대한 수수료와 금융 수익을 프랑스 내 인프라 사업에 재투자했는데, 이 중에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진행된 에펠탑(Eiffel Tower) 건설 프로젝트의 주요 자금 대출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이티가 프랑스에 돈을 갚은 핵심 이유는 자발적인 채무가 아니라 독립을 인정받기 위한 강제 배상금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티는 노예혁명 끝에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만, 프랑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825년 프랑스 국왕 샤를 10세는 군함을 보내 압박하며 다음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프랑스가 아이티의 독립을 인정한다.
대신 아이티는 식민지 농장주들이 잃은 토지와 노예에 대한 ‘손실’을 배상한다.
배상금은 1억 5천만 프랑으로 한다.
아이티가 이를 받아들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프랑스의 재침공 위협
프랑스 함대가 아이티 앞바다에 출현했습니다. 거부하면 침공과 식민지 재건, 심하면 노예제 부활까지 우려할 상황이었습니다.
국제적 고립
프랑스가 독립을 인정하지 않자 다른 유럽 국가들도 공식 관계를 꺼렸습니다. 미국 역시 노예제 국가였기 때문에 흑인 노예혁명으로 탄생한 아이티를 1862년까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무역과 국가 생존
당시 아이티 경제는 커피·설탕 등의 수출에 의존했습니다. 독립을 인정받지 못하면 프랑스와 유럽 시장에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국내 정치적 판단
당시 대통령 장피에르 부아예는 프랑스의 승인을 얻으면 군사적 위협을 줄이고 자신의 통치도 안정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아이티에는 돈이 없었으므로 프랑스 은행에서 돈을 빌려 프랑스에 배상금을 냈습니다. 이 때문에 원래 배상금에 대출이자까지 붙는 이른바 ‘이중 부채’가 형성됐습니다. 배상금은 1838년 9천만 프랑으로 줄었지만, 관련 채무 상환은 1947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아이티는 노예제에서 스스로 해방된 대가로 과거 노예 소유주들에게 배상한 셈입니다. 반대로 노예였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없었습니다. 이는 아이티가 독립 직후부터 재정·교육·산업에 투자하지 못하고 장기 빈곤에 빠진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평가됩니다. ...............라고 함
3. 미국 월스트리트(시티은행)의 배상금 승계와 1915년 군사 점령
월가의 이권 개입: 20세기 초, 내셔널 시티 뱅크(현 씨티그룹/Citigroup)를 필두로 한 미국 월가 금융기관들이 아이티 국립은행 지분을 사들이며 프랑스의 금융 수탈권을 넘겨받았습니다.
미군 점령과 재정 통제: 1915년 미국이 아이티를 군사 침공해 19년 동안 강점한 배경에는 월가 은행의 채권 회수 압박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미군정 관리들은 아이티 국가 세입의 약 25%를 뉴욕 시티은행의 부채 상환으로 강제 배정했으며, 이는 당시 아이티 전체 공립학교 예산의 5배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프랑스와 미국은 그동안 아리스티드의 하야가 내부 독재와 혼란 때문이었다고 주장해 왔으나, NYT 인터뷰에서 당시 아이티 주재 프랑스 대사 티에리 뷔르카르(Thierry Burkard)는 "프랑스와 미국이 사실상 아리스티드를 상대로 쿠데타를 조율했으며, 그의 배상금 반환 요구가 퇴진 압박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고 시인했습니다.
세계 장물 보관소
아주 친절하게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에서 훔쳐오고 강탈해온 문화제를 나눠서 보관중 장물보관소
미국이 관세로 위협할 때, 못준다고 버티면 되지 왜 주냐는 것과 다름 없는 질문이네요.
아무것도 없는 미개원시 부족들 전부 모아서 국가로 통합시키고
병원,철도,학교, 백신, 의료, 다 지원해줬으니
오지랖은 한국이 세계 1등아닌가
/>
그렇게 비교하면 안되지,,
당신집에 수도자체가 없어 씻을물은 커녕
먹을물조차 없어 숨넘어가는데
일단 생수계속 대줄테니
우선 씻고 먹고 사람답게 살고
생수값은 나중에 할부로 줘라
이렇게 해야지
AI가 택도 없는 소리래!
프랑스가 깡패짓 한거 맞구만!
이런, 개 썩여리 똥꼬 빤다던 그런사람 아니길~~....
1760년 당시 도시와 항구를 상세하게 그린 설계도 , 지도도 여전히 남아있음
문제는 하이티뿐만 아니라 주변국 자체가 그냥 전부 가난함
이 등신아.
식민지 삼아 수탈한게 많겠냐? 도움준게 많겠냐? 니가 말하는 도움이라는게 저들을 위한거겠냐? 지들을 위한거겠냐??
대가리가 비어서 판단할 능지 안되면,
가만히 닥치고 있어라. 적어도 등신 소린 안듣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코리스리코일=데드스페이스=찾았다내사랑내가찾던사랑,
블랙스미스오공=에어리스는살아있다=화염의호흡제4형성염의파도 ,
번개의호흡1형벽력일섬=물의호흡제10형생생유전=바위의호흡제5형와륜형부
등으로 활동하는
문솔이입니다 신고만 눌러주세요
계속 농업국가 해야한다 주장하던놈이있었음.... 필리핀 따라가야한다고... 그당시 필리핀 gdp가 우리보다높아서
꿈 깨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 영화 몇편만 봐도 어떻게 살고 그래서 부하의 총에 처맞아 뒤졌는지 알텐데
그냥 "아몰랑-" 이ㅈㄹ하며 사네요. 니 주장을 씨불이려거든 경청도 해야지요.
아이디 꼬라지만 봐도 수준이 어디 별 깽깽이.. 됐다^^ 그냥 그렇게 처 살어ㅎ(비웃음)
부하 총 맞아 죽은거 언급하는것만 봐도
경제 개발은 반박이 안되는거
압니다 ^^
예산의 80%를 프랑스에 상환한다고 하잖아요
한국은 원조를 받았지 상환하지는 않았잖아요.
그리고 한국은 원조를 더 받으려고 원화강세를 유지한것만 보아도 가난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그당시 60년대 영화를 보더라도 절대 가난한 나라는 아닙니다.
나이가 어린갑네... 세상물정 모르는거보니
보릿고개라는말 못들어봤나?
20세기까지도
식량이 없어서 굶던 나라는, 아프리카와 우리나라밖에없었음 . 원화 같은소리
니가한 문답인데 너도 이해를 잘 몬해? 이따위 수준으로 뭔 댓글을 달어.
가서 더러운 이빨이나 닦어
박정희 당시에도 최빈국이었다.
흑인이라서 머리가 나쁘고 미개했음
인종차별 이라고 하겠지만 흑인에게 문명은 거의 없었음
이해하기 쉬움
프랑스한테 악랄하게 뺏기고
불쌍한 나라다.
한국에게 뭐 잘못한거 있음??
프랑스산 가방이나 지갑 하나씩 공짜로 준다고 하면 님들은 좋아 할 거면서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C%9D%B4%ED%8B%B0%EC%9D%98_%EC%97%AD%EC%82%AC
는 건 최고라니까. 아이티가 독립한 시기와 부채 탕감한 연도를 좀 찾아봐라. 영향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게 치면 1900년대 이후 비슷하게 힘들었던 우리나라도 최빈국 서열에 끼어야 하지만 지금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으니.. 프랑스만 탓하기엔 아이티 정치 상황이 건강하지 못했지
유럽은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벨기엘 이 국가들은 악마들임
물론 영국도 비슷하지만. 그래도 저것들
보다는 낫고 제일 악질들은 벨기에
네덜란드 이 두넘들이 제일임
아시아는 말할거 없는 쪽바리들이고
배상 요구 자체는 사실입니다: 1825년 프랑스 국왕 샤를 10세는 군함 14척과 500문 이상의 함포를 앞세워 아이티 수도를 포위한 뒤, 식민지 상실과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의 '재산(노예 포함)' 손실을 보상하라며 1억 5,000만 프랑(금화)을 요구했습니다. 피지배 민족이 독립을 쟁취했음에도 도리어 옛 지배국에 배상금을 바쳐야 했던 기형적인 착취 사건이었습니다. 아이티 수입의 10배는 사실입니다: 당시 신생 아이티 공화국의 연간 국가 세입은 약 1,000만 프랑 안팎이었기 때문에, 1억 5,000만 프랑은 아이티 정부 1년 세입의 15배(아이티 국가 10년 치 이상의 예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맞습니다. 정부 수입의 80% 지출과 공공 인프라 마비 (사실)
아이티 독립 200주년이었던 2003~2004년,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 당시 아이티 대통령은 과거 강탈당한 배상금의 현재 가치를 약 217억 달러로 추산하고, 불법 협박에 의한 원인무효라며 프랑스에 전액 반환(Restitution)을 공식 요구했습니다.프랑스의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정부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후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2004년 2월 쿠데타로 축출되었습니다).
배상금 원금은 1838년에 9,000만 프랑으로 감액 조정되었으나, 차관 상환과 이자 지급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습니다. 1915년 미국의 아이티 군사 점령 이후 채권은 내셔널 시티 뱅크(현 씨티은행) 등 미국 금융권으로 승계되었고, 아이티가 이와 관련된 마지막 부채를 최종 완제한 해는 1947년이었습니다. 1825년부터 계산하면 정확히 122년이 걸렸습니다.
한때 카리브해에서 가장 부유한 '안틸리스의 진주'로 불렸던 아이티는 1세기 넘게 이어진 수탈과 외채 상환, 그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겹치며 현재 서반구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국가이자 유엔(UN) 공인 최빈개도국(LDC)에 머물러 있습니다.
실제 지불액: 아이티가 1825년부터 상환한 배상금 원금과 이를 갚기 위해 빌린 차관 이자 등을 모두 합치면 현재 가치로 약 5억 6,000만 달러에 달합니다.
누적 경제 손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등 저명 경제학자들과 함께 분석한 결과, 이 자금이 유출되지 않고 아이티 내 인프라·교육 등에 재투자되었다면 200년간 국가 경제에 기여했을 가치는 최소 210억 달러(약 28조 원)로 추산되었습니다.
중앙은행의 사유화: 1880년 프랑스 민간 은행인 CIC는 아이티 국립은행 설립을 주도했으나, 은행 본부를 파리에 두고 아이티 정부의 모든 통화 발행과 수출입 관세 징수에서 수수료를 떼어 파리로 송금했습니다.
에펠탑 자금 유입: CIC는 아이티에서 빨아들인 막대한 수수료와 금융 수익을 프랑스 내 인프라 사업에 재투자했는데, 이 중에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진행된 에펠탑(Eiffel Tower) 건설 프로젝트의 주요 자금 대출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이티는 노예혁명 끝에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만, 프랑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825년 프랑스 국왕 샤를 10세는 군함을 보내 압박하며 다음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프랑스가 아이티의 독립을 인정한다.
대신 아이티는 식민지 농장주들이 잃은 토지와 노예에 대한 ‘손실’을 배상한다.
배상금은 1억 5천만 프랑으로 한다.
아이티가 이를 받아들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프랑스의 재침공 위협
프랑스 함대가 아이티 앞바다에 출현했습니다. 거부하면 침공과 식민지 재건, 심하면 노예제 부활까지 우려할 상황이었습니다.
국제적 고립
프랑스가 독립을 인정하지 않자 다른 유럽 국가들도 공식 관계를 꺼렸습니다. 미국 역시 노예제 국가였기 때문에 흑인 노예혁명으로 탄생한 아이티를 1862년까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무역과 국가 생존
당시 아이티 경제는 커피·설탕 등의 수출에 의존했습니다. 독립을 인정받지 못하면 프랑스와 유럽 시장에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국내 정치적 판단
당시 대통령 장피에르 부아예는 프랑스의 승인을 얻으면 군사적 위협을 줄이고 자신의 통치도 안정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아이티에는 돈이 없었으므로 프랑스 은행에서 돈을 빌려 프랑스에 배상금을 냈습니다. 이 때문에 원래 배상금에 대출이자까지 붙는 이른바 ‘이중 부채’가 형성됐습니다. 배상금은 1838년 9천만 프랑으로 줄었지만, 관련 채무 상환은 1947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아이티는 노예제에서 스스로 해방된 대가로 과거 노예 소유주들에게 배상한 셈입니다. 반대로 노예였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없었습니다. 이는 아이티가 독립 직후부터 재정·교육·산업에 투자하지 못하고 장기 빈곤에 빠진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평가됩니다. ...............라고 함
월가의 이권 개입: 20세기 초, 내셔널 시티 뱅크(현 씨티그룹/Citigroup)를 필두로 한 미국 월가 금융기관들이 아이티 국립은행 지분을 사들이며 프랑스의 금융 수탈권을 넘겨받았습니다.
미군 점령과 재정 통제: 1915년 미국이 아이티를 군사 침공해 19년 동안 강점한 배경에는 월가 은행의 채권 회수 압박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미군정 관리들은 아이티 국가 세입의 약 25%를 뉴욕 시티은행의 부채 상환으로 강제 배정했으며, 이는 당시 아이티 전체 공립학교 예산의 5배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2003~2004년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아이티 대통령이 프랑스에 공식 반환을 요구했던 금액(216억 8,500만 달러)은 NYT가 계산한 최소 경제 손실액(210억 달러)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우리도 일본한테 받아내야된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