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무관청의 무관심도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시민의식도
너무하네요 정말
1907년 규장각 제학을 끝으로 관직을 떠난 동농 김가진 선생은
대한협회의 회장으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대한협회는 계몽운동 성향의 단체였는데,
특히 식산흥업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계몽교육에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선생은 소위 한일합방을 주장하는 일진회와 정면으로 맞서 싸웠고,
1910년 경술국치의 해에는 대한협회 회장의 자격으로
강제 병합을 마지막까지 반대했습니다.
동농 김가진 선생은 강제 병합 이후 일제에 의해 일방적으로 작위를 받았지만
은사금의 수령은 거부했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백운장을 빼앗는 등 선생에게 빈한한 생활을 강요했지만,
독립을 향한 선생의 의지는 꺾지 못했습니다.
고종 서거 후, 선생은 곧바로 독립운동에 투신해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국내 최대의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조선민족대동단을 설립하고 총재가 되었습니다.
선생은 독립선언서와 진정서, 경고문의 배포 계획을 세우는 등 만세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운동 거점을 국외로 옮기기 위해 1919년 10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고문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일본과의 혈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기고문을 작성했고,
이를 위한 군자금 모집과 조선 내 지부 설립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동농 김가진 선생은
1921년 북로군정서 고문으로 추대되어 독립전쟁을 이어갔습니다.
만주에서 조선민족대동단을 재건하고 독립군에 합류하는 등 끝까지 독립운동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망명 생활 속에서
그토록 바라던 독립을 마주하지 못한 채 상하이에서 서거했습니다.
https://dongnong.or.kr/layout/res/home.php?go=page1.0&mid=10






































이러니깐 시발 친일파들이 설치는거임
저 따위로 관리하려면 집터라고 만들지나 말든지
나라꼬라지 참
이러니깐 시발 친일파들이 설치는거임
알아서 찾아 봄
저 따위로 관리하려면 집터라고 만들지나 말든지
나라꼬라지 참
뭘? 쫄리면 뒈지시든지...
저게 정상이냐??
친일한 외놈새끼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저꼴 보려고 독립운동가분들이 그 고생을 하신건가
추모지랄한다고 몇천억. 쓰고
진심. 독립운동가 후손들. 국가유공자분들 후손들에게. 그렇케 돈을 써라.
글의 내용도 파악안되는 젊은 대가리들
그저 열등감에 까기 바쁘지?
하긴 젊은 나이에 머하나 똑바른것이 없으니 지나간 세월에 열등감만 쌓여 매일이 긁히는거지…ㅋㅋㅋㅋ
얼마 쳐 살지도 안한게 쇄뇌만 되어서 젖비린내 풍기며 뒤지는거지 모…
눈에 잘 보이게 하면 안 그럴거 같은데요.
검색해 보니 유찬종 구청장.
친일파들은 휘황찬란 하고
독립운동가는 처량하기 짝이 없으니
이게 바로된 나라냐고.................
받는사람 앞으로 쓰레기투기 신고하면 될것같은데요
저희가 죄송합니다(__)
역사를 잊은 민족은 우리였다는 걸
않았습니다. 주위 영업하는 가게들은 많네요.
아직도 국회서 목에 핏대 세우고 있드만
언제 쓰레기청소 끝낼거야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