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광장의 촛불은 왜 침묵의 사토(死土)가 되었는가
민주당 중앙당과 정청래의 오만, 그리고 울부짖는 호남의 공천장

우리는 뜨거웠다. 아니, 그 뜨거움이 곧 정의라고 믿었다. 불의한 권력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통째로 흔들어 깨울 때마다, 우리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광장으로 달려가 촛불을 들었다. "내가 행동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그 고결한 정치적 효능감은 대한민국의 자부심이었고, 그 위대한 역사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는 늘 호남이 있었다. 호남의 선택은 늘 단순한 표심을 넘어, 시대의 도덕적 보루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명확한 이정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선 민주주의의 풍경은 참담하다 못해 서글프다. 언제부턴가 우리 안의 청명했던 이성은 마비되었고, 그 자리에는 ‘진영 부족주의’라는 괴물이 똬리를 틀었다. "내가 믿는 것만 진실"이라는 독선은 상대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관용’과 ‘토론’의 공간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내 편의 허물은 시대의 불가피한 상처로 포장하고, 네 편의 허물은 사법적 단죄를 넘어 인격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잔인함. 가장 깨어있다고 자부했던 개개인이 모여 세상에서 가장 배타적이고 맹목적인 집단적 독선을 만들어낸 이 역설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가 마주한 가장 아픈 자화상이다.
이 서늘한 이성의 황폐화가 가장 노골적으로, 그리고 가장 아프게 투영된 현장이 바로 최근 치러진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지역 공천 과정이다. 현재 유튜브와 SNS 등에서 호남 주민들과 일부 권리당원들이 쏟아내는 분노의 기류는 정확히 한 곳,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주류 권력을 향하고 있다.
호남의 공천장은 단순한 정치적 티켓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피 흘려 지켜온 민주주의의 유산이자 자존심이다. 하지만 이번 공천에서 여의도 권력이 보여준 행태는 오만함 그 자체였다. 호남의 정신을 대변하고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인물이 누구인가를 치러내는 치열한 공론(公論)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오직 특정 계파를 향한 ‘맹목적 충성 경쟁’과, 반대 의사를 용납하지 않는 서슬 퍼런 맹신뿐이었다.
그 중심에 정청래 대표와 민주당 측근들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당의 핵심 권력을 쥔 이들은 호남의 민심을 하늘처럼 두려워하기는커녕, 정파적 이익에 따라 지역을 줄 세우고 재단하는 일에 앞장을 섰을수 때문이다. 이들이 주도한 질서 속에서 공천의 기준은 '누가 더 지역과 호남의 가치를 위해 헌신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중앙 권력에 절대 복종하는가'로 치환되었을 의혹이 지배적이다.
지역을 위해 오랜 시간 헌신하며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이들은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여론의 단두대로 끌려갔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동료 시민조차 적으로 돌려세우는 극단적인 지지층의 기세에 밀려, 합리적인 다수의 시민은 깊은 환멸 속에서 침묵을 선택해야만 했다. 이 서글픈 침묵의 틈새를 타고, 호남의 역사적 깊이와는 무관하게 오직 중앙당 권력의 입맛에만 철저히 길들여진 일부 세력들이 호남의 공천장을 손에 쥐었다.
이 기괴한 침묵과 독선의 정점은 최근 지역사회의 백년대계를 뒤흔들고 있는 ‘전남·광주 통합특별시’ 논의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320만 시·도민의 삶을 통째로 바꿀 이 거대한 행정 개편이 과연 누구의 작업이며, 누구를 위한 설계인가. 주민투표라는 가장 기본적인 민주적 절차조차 생략된 채, 밀실에서 번개 불에 콩 볶듯 추진되는 이 해괴한 통합을 두고 전남·광주 지역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민주당 중앙당과 정청래 대표 등 주류 세력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 많던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도, 날카로운 펜대를 자랑하던 일부 언론도 어찌 된 일인지 이 정체 모를 ‘작업’을 그저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의혹 제기도, 날 선 비판 성명 하나 내놓지 않는 이 기괴한 침묵 속에서 호남의 운명은 여의도 권력자들의 정략적 계산대 위로 올라갔다. 졸속 추진에 합리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을 던져야 할 공적 감시망이 통째로 마비된 사이, 오직 공천권을 쥔 이들의 이해관계에 맞춘 거대한 막후 정치만이 횡행했을 뿐이다.
이것은 호남의 역사에 대한 모욕이다. 과거 호남은 민주당이 안일에 빠지거나 오만해질 때마다, 매서운 회칙을 들어 대의(大義)를 바로잡았던 한국 민주주의의 최후의 심판자였다. 호남이 매섭게 꾸짖고 밀어주었을 때, 비로소 전국적인 민주화의 도도한 흐름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시스템과 절차적 정당성이 완전히 무너진 이번 공천은, 호남을 그저 특정 진영과 계파의 안위만을 위해 무조건 표를 바쳐야 하는 '당연한 표밭'으로 전락시켰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정당의 공천이, 정청래 대표와 중앙당 주류의 오만한 손길 속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호남의 자존심을 짓밟은 것이다.
공천장이 떨어진 자리에 남은 것은 가슴 시린 피로감과 냉소다. 정치가 광장을 부수고, 일부 언론과 시민사회마저 한통속이 되어 침묵하는 모습을 보며 호남의 유권자들은 묻고 싶을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가 겨우 이토록 허망한 것이었냐고. 여의도 밀실에서 기획된 정략적 작업에 춤추는 정당과, 그 정당이 툭 던져준 후보를 어쩔 수 없이 찍어야 하는 이 무력한 현실이 과연 우리가 피 흘려 얻어낸 법치와 민주주의란 말인가 하고 말이다.
호남의 공천장이 울고 있다. 이 눈물은 민주당 중앙당의 오만과 정청래 식 독단에 대한 서글픈 경고이자, 이성을 잃고 맹신과 침묵에 빠져든 우리 시대의 시민 의식을 향한 뼈아픈 통곡이다. 상대 진영을 섬멸해야 할 적으로 보는 부족주의를 멈추지 않는 한, 시스템과 절차보다 눈앞의 권력자에게 의존하려는 포퓰리즘을 걷어내지 않는 한,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다.
과거 호남 광장은 뜨거운 열정과 민주주의를 향한 건강한 토론이 살아 숨 쉬던 역동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광장은 서로에 대한 맹신과 눈먼 진영 논리 탓에, 합리적인 비판이나 대화가 불가능한 ‘영혼이 죽어버린 황폐한 공간’, 즉 침묵의 사토(死土)가 되어버렸다.
이제 호남이 다시 대답해야 한다. 진영 논리의 전장이 되어버린 황폐한 땅을 딛고 일어나, 무조건적인 지지라는 봉건적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내 고향의 미래를 흔드는 정체 모를 밀실 ‘작업’들과, 권력의 단맛에 취해 이를 방조한 이들의 부끄러운 공천장을 향해, 다시 한번 호남 특유의 매서운 이성의 눈초리를 들어 올려야 한다.
그것만이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호남의 진짜 역사적 책무이자 마지막 자존심이다. 광장의 촛불이 침묵의 사토에서 다시 찬란한 생명의 불꽃으로 피어나길, 호남의 매서운 겨울 이성은 온 힘을 다해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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