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이 반도체 소외로 뿔났다. 이제 호남으로 묶지 말라. 제발 전북을 전남에 묻어가는 식의 호남이라는 단어로 퉁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전남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발표에 전북에서도 타지역 못지 않게 반발이 거세게 일어난다.
지난 7월 1일 한상오 새만금환경생존연합 대표는 전남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발표와 관련해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미어진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제발 전북을 전남에 묻어가는 식의 ‘호남’이라는 단어로 퉁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대표는 지난해 12월 ‘반도체 클러스터 새만금유치추진위원회’를 공동 출범해 전북 지역 19개, 군산 지역 10개 시민·사회단체를 이끌고 서명운동, 기자회견 등 유치 활동을 이어왔다.
한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전북을 언급하며 지역균형발전 전략을 짜겠다고 하셨기에 도민들이 큰 기대를 걸고 지지했다”며 “전북과 새만금을 통째로 외면해 버리니 도민의 소외감과 배신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앞서 전남광주는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용인, 평택 등 경기 남부에 이은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선정됐다.
향후 800조원 규모를 투입해 전남광주 등 서남권에 삼성전자 2기와 SK하이닉스 2기 등 총 4기의 반도체 팹(Fab)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정작 전남광주와 함께 같은 ‘호남권’으로 묶이는 전북에서는 이 같은 계획에 대한 반발이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등 타 지역 못지않게 거세다.
취임 초 체면 구긴 친청계 이원택
새만금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가 무산되면서 이원택 전북도지사가 취임 초부터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오는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청계’로 분류되는 이원택 전북지사는 전남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계획 발표 직후인 지난 6월 30일 “이재명 대통령도 전북이 겪는 ‘3중 소외’, 특히 호남 내 차별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매우 실망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대통령이 지난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전북을 언급하면서 “수도권 집중에 따라서 지방 차별을 1차로 받고, 영호남 차별에 따라서 2차 차별을 받고, 호남 그러면 전남광주만 호남에다 몰빵을 해서 3차 차별을 받는다”는 말을 상기시킨 것이다.
전북 지역 정치권에서는 “친명계로 분류되는 김관영 전 지사, 안호영 의원이 만약 전북지사에 당선됐더라면 이 같은 결과가 나왔겠느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여기에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3선, 전북 익산을)를 비롯, 민주당 현역 의원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5선, 전북 전주병), 김윤덕 국토부 장관(3선, 전북 전주갑) 등 전북 출신 고위인사들도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아 도민들의 실망도 크다.
실제로 전북 새만금에 반도체 팹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은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전반기 제22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이었던 안호영 의원(3선, 전북 완주·진안·무주)은 지방선거를 6개월여 앞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송전선로 건설 지연으로 조성에 차질을 빚던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의 대안으로 새만금을 제안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안 의원은 당시 “전기를 억지로 수도권으로 끌고 가는 대신, 전기가 넘쳐나는 준비된 곳으로 기업이 내려오는 것이 해법”이라며 새만금을 반도체 클러스터로 들고나왔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 의원이 던진 이 같은 제안은 초기만 해도 용인, 평택 등 경기 남부 지역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반도체 남방한계선 등 기존 생태계를 고려하면 현실성이 없다”는 혹평도 쏟아졌다.
여기에 민주당 내 전북지사 경선을 앞두고 박스권 지지율에 갇힌 안 의원이 중도하차를 선언하면서 힘이 빠졌다.
결국 ‘대리비 지급’ 논란을 빚은 김관영 전 지사의 전격 제명으로 안 의원은 다시 경선에 참여했으나 이원택 현 지사가 공천되면서 재차 유야무야됐다.
반도체 클러스터 새만금추진위원회에 참여한 전북 지역의 한 인사는 “이원택 현 전북도지사와 김관영 전 전북도지사, 안호영 의원 간의 삼파전이 치열해지면서 다들 ‘안호영이 하는 일’이라며 새만금 유치에서 발을 뺐다”며 “좋은 취지의 운동이 일종의 선거운동처럼 비치게 돼 동력을 잃은 부분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북에서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로 기대를 모았던 새만금이 제외되자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는 아쉬움도 크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 입지의 핵심 요소인 부지·전력·용수 측면에서 새만금은 광주에 크게 뒤질 것이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우선 반도체 팹용 부지확보 측면에서는 광활한 새만금 매립지를 활용할 수 있다. 기존에 반도체 생태계가 형성돼 있는 용인, 이천, 화성, 평택 등 경기 남부와 천안, 아산(온양), 청주 등 충청권과의 물리적 거리 역시 새만금이 광주에 비해 더 가깝다.
또 새만금은 북쪽으로 금강, 동쪽으로 만경강·동진강 등 3개 하천을 끼고 있어서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대량의 수자원을 영산강 하나에 의지해야 하는 광주보다 낫다는 평가다.
24시간 주파수 변동이 거의 없는 안정적인 고품질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전남 영광 한빛원전까지의 거리도 광주와 거의 차이가 없다. 영광 한빛원전에서 새만금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45㎞ 가량으로, 광주(첨단지구)까지의 거리와 거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영광 원전과 새만금까지는 바다를 건너는 ‘해월(海越)송전망’ 구축이 가능해 육상부를 통과해야 하는 광주보다 토지보상, 환경피해 문제 등의 대처가 더욱 용이하다는 평가다.
다만 전북의 한 인사는 “전력 자립을 둘러싼 지역 이기주의와 송전망 이용 갈등이 크게 심화된 상황이라 전남 영광 원전에서 전력을 끌어다 쓰는 방식은 또 다른 지역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며
“ ‘지산지소(地産地消)’ 원칙에 맞춰 새만금개발청과 전북도가 ‘전북의 전기는 전북에서 생산해 쓰겠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전북이 ‘3중 소외론’만을 내세우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현대차그룹의 대규모 새만금 투자 계획이 추진되고 있고, 전북도청 소재지이자 국민연금 본사가 있는 전주를 중심으로는 전북국제금융센터(JIFC) 등 제3금융중심지 조성 사업도 추진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월 27일 정부·전북도와 ‘새만금 로봇·수소 첨단 산업 육성 및 AI 수소 시티 조성을 위한 투자 협약(MOU)’을 체결하며 10조원 규모의 로봇 파운드리(양산 핵심시설)와 부품 클러스터, AI 데이터센터 등을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2월에 전북은 서울을 제치고 오는 2036년 하계올림픽 국내 유치 후보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 비하면 ‘배 부른 투정’인 셈이다.
하지만 전북이 거둔 이 모든 성과는 전남광주에 쏟아질 ‘800조원’이란 막대한 돈 앞에 작아지는 것도 현실이다.
전북상공회의소협의회 김정태 회장은 “국가 균형발전에서 가장 소외된 전북에 대형 전략 사업이 오지 않으니 도민뿐 아니라 지역 기업들조차 깊은 허탈감에 빠져 있다”며 “전북에선 매년 6000명의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는데 실질적인 알맹이가 채워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