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첫 기보사단 "수도 기계화보병사단"
안녕하십니까 20사단 소개글에 대해 썼더니 반응도 상당히 좋고
특히 해당부대 전역자 분들께서 열렬한 성원과 함께 라이벌 맹호부대
전역자분들도 많은 요청(?) 을 보내주셔서 이렇게 써봅니다.
오늘은 국군의 첫번째 기보사단 맹호부대 에 대해 설명 하겠습니다.
맹호부대는 한국군 최초의 차량화/기계화 편제가 된 사단으로써
6.25전쟁과 월남전 참전을 통해 수 많은 정예 전투요원들, 그리고
참전용사를 만들어냈고 현재까지도 그 명성이 국내외에서
꽤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해방이후 6.25전쟁 전에 창설된 국군 원년맴버 중 하나이자
국군 정규사단 중 유일하게 단대호가 없는 사단입니다.
<< ① 역사 >>
현재의 "수도 기계화 보병사단" 의 전신은 1948년 6월 용산에서
창설된 "수도 경비 사령부" 입니다. 이후 아시다시피 50년 6월 25일
발발한 6.25 전쟁으로 인해 수도 방위임무를 실패한 수경사를
다시 재편하여 그해 7월 8일 "수도 사단" 으로 개명한 뒤, 현재의
수방사의 기능을 인수하였고 그 이후 바로 6.25 전쟁에 투입됩니다.
대부분 잘못아시는게, 수도여단을 기초로 수도사단으로 승격한게
현재의 수기사라고 알고있는데,
1949년 수도사단으로 승격된 부대는 제 7 보병사단 (칠성) 입니다.
다만, 단대호가 육일명 제 17호 에 의해 6.25 전쟁 직전에 7사단으로
변경된거라 수기사와는 수경사를 거쳐갔다는거 빼면 관련은 없습니다.
6.25 전쟁기에는 여러 공비토벌 및 빨치산과 방어작전에 투입되었으며,
휴전 직전 53년 6월 18일 전남광주 육본직할로 창설된 모 부대의 인원
보충을 위해
휴전 이후 9월 18일 포천군 이동면 에서 산재하여 명령을 기다리던
중대장 안도현 대위 이하 장교들이 이끌던 2개 중대가 화천군 사내면
까지 도보 진격을 하고 포격을맞아 아무것도 없는 민둥산을 기점으로
독립된부대를 창설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제 27 보병사단 (이기자) 의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휴전이후 1961년까지 수도방위사령부 임무를 겸임하다가
그 해 수방사가 재창설되면서 수도방위임무를 분리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4년 뒤인 1965년에는 월남파병부대로
차출되어 1973년까지 파병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파병이 끝난 73년 그해 미군의 M113 장갑차를 공여받아 국군의
첫번째 기계화부대로 개편하였고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파란만장한 수기사의 역사입니다)
<< ② 편제 >>
- 전투 서열 -
(★) 사단 본부
(●) 제 1 기갑 기계화 보병여단 "번개"
여단본부 및 본부중대 및 직할중대
제 18 전차대대 (왕호)
제 101 기계화보병대대 (진호)
제 122 기계화보병대대 (천호)
(●) 제 1 기계화 보병여단 "비호"
여단본부 및 본부중대 및 직할중대
제 17 전차대대 (돌파)
제 102 기계화보병대대 (돌진)
제 133 기계화보병대대 (재구)
(●) 제 26 기계화 보병여단 "혜산진"
여단본부 및 본부중대 및 직할중대
제 8 전차대대 (기드온)
제 35 전차대대 (승호)
제 103 기계화보병대대 (노도)
(■) 사단 예하 포병여단 "상승"
여단본부 및 본부포대 및 직할대
제 10 포병대대 (백조)
제 60 포병대대 (충무)
제 61 포병대대 (북진)
제 808 포병대대 (기적)
(◆) 사단 예하 직할대
본부대
공병대대
기갑수색대대
의무근무대
정비대대
방공대대
보급수송대대
정보통신대대
사단 정찰대
화학지원대
헌병대
보충중대
(신교대는 맹호 762기 이후 해체됨)
자... 여기서 잘 보시면 전부다.. 네임드 부대들입니다.
업적은 따로 설명할라 그랬는데, 아주 쪼금 설명해보자면,
<< ③ 각 부대의 역사 >>
제 1 기갑 기계화보병여단 은 국군 최초의 기계화편제가 된
부대였고, 아시다시피 6.25전쟁때 국군은 장갑차 20여대가
끝이었고 전차도 없었는데,
그 없던 장갑차 20여대를 가지고 있던 부대가 바로 여기입니다...
연대로 시작해서 독립기갑연대로 된게 이미 1940년대 후반에서
6.25 전쟁 기간이었으니, 이 부대가 정말 국군 기갑의 시초입니다.
참고로 제 1 기보여단과 단대호가 같아보이지만, 여기는
따로 "번개" 라고 부르거나 "제 1 기갑여단" 이라고해서 분류
한다고 합니다.그래서 독립부대인 1기갑과 헷갈릴때도...
정식명칭은 제 1 "기갑" 기보여단 입니다.
제 1 기계화 보병여단 은 정말 국군의 모체가 된 부대입니다.
전군 최초 창설부대인 수경사 제 1 연대 를 바탕으로
내려온 부대로써 虎 연대 라는 별칭이 있다고 합니다.
예하에는 재구대대 라는 대대가 있는데, 기초훈련때
성실하게 참여하신 분들은 한번쯤 들어보셔서 아시겠지만,
강재구 대위(소령 추서)는 1965년 수류탄훈련도중 훈련병이
잘못하고 놓쳐버린 수류탄을 온몸으로 덮쳐 막아 100여명의
중대인원을 구하고 운명을 가르신 참 군인이시기에
그 분을 존경하고 추모하는 뜻에서 당시 해당대대 대대장이
국방부에 건의해 대대명칭을 재구대대로 바꾸었습니다.
제 26 기계화 보병여단 은 6.25 전쟁 당시 한반도
최북단 혜산진까지 진격하여 혜산진 부대 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군 최초로 3.8선 돌파를 했는데, 이게 사실 제가 예전에
쓴 백골부대 글에도 나와있지만 원래 실제로는 현재의 26여단이
백골부대 소속이었다가 38선 넘고나서 원산입성 후 현재의
진백골연대와 예속을 맞바꾸었기 때문에
서로 자기가 먼저 입성했다고 싸우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바로 이거
때문입니다...그래도 진백골연대도 전후 업적 세우고 했으니
뭐... 윈윈입니다. 이것만 봐도 부대부터가 국군 역사와 함께함은
물론 잔뼈가 보통 굵은게 아닌 걸 알 수 있습니다.
<< ④ 대적할 수 없는 업적들 >>
맹호의 전설은 사실 6.25 전쟁때 잘싸운부대 TOP 5에 들정도로
이미 시초부터 탄탄한 부대였지만, 거의 전설을 남긴 시절이 바로
월남참전 이후 입니다.
퀴논 상륙 이후 전술책임지역 1,200㎢ 내에서 1965년 10월 부터
1973년 3월 철수직전 까지 했던 작전들만 꼽아봐도
비호 6호 작전 / 두코 전투 / 맹호 5~12,16,17호 작전
오작교 작전 / 홍길동 작전 / 호랑이 작전 / 돌풍 작전
독수리 71-1호 작전 / 혜산진 10,11,12호 작전
번개 23호 작전 / 비호 26호 작전 / 안케패스 작전
기타 합동작전과 소규모전투 등
이 작전들에서 했던 업적만 모아도
적 18000여명 사살
포로 3000여명 생포
장비 9000여점 노획
대민 지원
전술책임지역 방어
중대전술기지 (Fire Base) 미군연구대상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게다가 맹호부대는 어디까지나
주권이 있는 남베트남(베트남 공화국)의 동맹으로써 파병 하였기에
공격작전이나 실질적인 정규전투가 아닌 위에 설명한 1200제곱키로짜리
전술책임지역 내에서 오는 베트콩,월맹군을 처리하고 전선을 유지하고
대민지원을 주로 했는데도
방어작전에서 저 정도 성과를 피해를 거의 입지않고 냈다는건 정말
방어의 대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한게 방어를 저렇게 잘하는
부대가 현재는 공격에 특화된 기보사단이 되었다는 것....
특히 월남파병 국군 1인당 적 24명넘게 사살하는
전설의 교환비가 가능했던 대표적인 이유가 위에 설명했던
중대급 전술기지 즉 Fire Base 인데, 이게 미군에게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미군과 달리 대규모
공세를 안하고 치안유지나 방어전을 통한 적섬멸 그리고
전술책임지역내 대민지원을 목적으로했는데
국군 특히 맹호와 청룡 백마 이 세개부대는 6.25전쟁때 빨치산과
무장공비에 데인적이있어서 그때 경험을 살려 정규군이 게릴라군을
부수기에 아주 적합한 중대 전술기지를 실천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이 중대급 전술기지는 제가 저번에 썼던
http://www.bobaedream.co.kr/view?code=army&No=101463
▲ 베트남전쟁 전설의 중대전술기지 글을 참조하시기 바라며...
어쨋든 그 만큼 대단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미군이 우월한 전력으로도 패전한이유는 베트남내 반전여론과
반미여론을 부추기고 게릴라군과 모든 사람이 싸우는 인민전쟁의
양상에서 파악안해놓고 전략촌 지정해놓고 방어도 제대로 안하고
대놓고 대규모 공세를 벌였기 때문입니다.
현재도 베트남 학살건이 많은 이유가 바로 위장 베트콩과
민간인 색출못하고 자기네 부대가 공격당하면 주변 마을이건
뭐건 PTSD 로 판단잘못하고 공격당한 부대의 지휘관이 다
쓸어버리라 하는 바람에 그게 전쟁범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군의 생각은 딱 "니네 중대규모로 떼놓면 무조건 박살난다 ㅋㅋ"
였고 "정규군의 우월한 화력을 봐라 이거면 다 이긴다" 였는데
막상 국군의 주적은 중무장을 한 정규군 즉 월맹군이 아니라
비정규 민병대수준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즉 베트콩을 상대로
전선유지와 방어 및 대민지원을 하는게 관건이라 오히려 사방에서
경무장해서 달려오는 게릴라를 잡기엔 딱이었습니다.
6.25 전쟁때 빨치산/공비 토벌작전 경험이 엄청난 빛을 발한거죠.
(역시 한국은 방어를 잘하나봅니다... 대첩들도 거의 다 방어작전..)
근데 다만 원형으로 빙 둘러서 중대규모로 집어넣는 중대전술기지는
대 게릴라전에는 효과가 있지만 기갑에 항공까지 끌고오는 정규군
을 만나면 진짜 미군의 생각대로 초전박살납니다.
그리고 중대전술기지와 전략촌에 방어작전을 꾸린것도 미군보다는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베트콩과 인민전쟁의 참전대상이 너무
넓어서 제대로 적과 민간인을 색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합니다.
대민지원도 상당히 잘했기때문에 미군과는 달리 주둔지내에서는
월남 민간인들에게 상당히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맹호부대 주둔지역이 안전지대라 여기고 외부 민간인들까지
다 들어오는 바람에 적에게 동향이 들킬번 했던 아찔한 이야기가
몇번 들리기도 했습니다.
베트남전 전쟁범죄와 각종 의혹 내용에 관해서는 마찬가지로
http://www.bobaedream.co.kr/view?code=army&No=101423
▲ 베트남전쟁 한국군의 전쟁범죄 글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파병종료가 된 1973년 무사복귀하면서
맹호부대는 국군 최초의 기계화보병사단 편제를 가지게됩니다.
참고로 국군의 두번째 기계화보병사단인 20사단이
기계화장비 인수하고 재편했던 시기가 1983년 이라
맹호와는 1번째 2번째인데도 무려 1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의 사단중 대표적인게 수기사입니다.
이유는 아시다시피 월남 파병때문...
그리고 단대호도 없고 수도사단이라는 특별한 칭호에
방패바탕에 포효하는 호랑이까지 있고 업적도 상당하니
이게 또 너무 멋있어서...
베트남전쟁이나 근현대사 공부하시는 국내외분들은
대부분 월남전쟁 내용을 담은 역사책에서 자주 맹호부대가
언급되는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Tiger diuision 이라고 구글에 치기만 해도
티거 전차 를 운용하던 옛 독일국방군 팬저사단이 뜨는
몇몇 거를 제외하면 호랑이 사단이 바로 이 수기사 맹호부대를
뜻하는 말입니다.
영문 정식 명칭은 Capital Mechanized Infantry diuision 인데,
사실상 이건 문서상의 내용일뿐 타이거 디비전으로 대부분
통칭합니다.
(아마 맹호마크는 사단마크 중 최강의 디자인이 아닐까...)
<< ⑤ 라이벌과의 관계 >>
기계화보병사단 개편이후 현재까지 숙적이자
제 1의 라이벌로 남아있는 부대는 바로 전 글에서 설명했듯,
제 20 기계화보병사단 입니다.
사실 국군 최초의 3세대전차 K1 전차 가 1987년쯤 맹호부대에
최초 실전배치가 되었을때 20사단은 이제야 기계화보병 편제한지
5년도 안되던 시절이었는데,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사실상 최신장비 비율과
훈련량과 우선순위가 20사단에게 밀렸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깊게 파고들어가자면 그 전력을 만든 실전데이터는 대부분
베트남전쟁 참전을 통해 나온 데이터와 해외파병 및 해외의
군사정보를 바탕으로 만든거라 그리고 어찌됬건 맹호가 20사단과
비교했을때 부대전통과 업적면에서는 정말... 상대도 안되기 때문에
(일단 맹호는 예하 여단들 역사부터가 다 전설급입니다...)
뭐 두 부대의 라이벌의식속에 서로 이기고 지고 비등비등한게
또 다릅니다.이 라이벌의식을 통해 전투력이 향상되는
기회였으면 좋겠네요.
<< ⑥ 그 외 부대내 이야기들 >>
인원부족과 훈련생 통합관리등의 문제로
기계화보병 특성상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맹호 신병교육대 가
2016년 9월 7일 맹호 제 762기 를 끝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이후 차출되는 신병들은 논산훈련소로 통합됩니다.
"수도" 기계화보병사단 이라 꿀빤다고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위에 역사단락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미 수도 명칭은
거의 수도에 가까운 정규사단이라는 호칭을 제외하면없고
진짜 수도방위임무는 1961년 진작에 수도 방위 사령부가 재창설되서
권한을 넘겨주었기 때문에 주둔지는 가평군 입니다. 근데 아셔야할것은,
맹호부대 자체가 국군 네임드부대고 20사단에 이어 기갑의 얼굴이기 때문에
실제로 가시면 훈련양을 보고 여기가 꿀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
진짜 수도에 가까운부대는 수방사 아니면 현역 보병사단으로는
일명 북한산부대 라 불리는 제 56 향토보병사단 이 있습니다.
20사단과 마찬가지로 국군에서 공격에 특화된 제 7 기동군단
소속입니다. 원래 전차가 그렇듯이 방어가 아니라 공격과 충격/돌격
작전에서 시너지가 극대화되는 장비이기 때문에
정말 국군의 우월한 기갑전력을 볼 수 있는 군단입니다.
라스트펀치 역할로 주둔지버리고 후방으로 내려갔다가
레프트 라이프 잽좀 날려서 몸좀 풀고 타이밍잡다가 쓰윽
올라와서 다 부수고 진격하는 20사단과 달리 처음부터 수도와
주둔지 인근에서 명령받으면 바로 올라가는 부대에 속합니다.
슬슬 글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여담이 하나 있는데
이름값이라도 하듯 월남파병시기 실제로 맹호부대가
호랑이를 잡은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호랑이가 호랑이를 잡은격...
당시 베트남이 사망자가 많아서 죽은 시체를 가져가 먹는
호랑이들로 인해 개체수가 전쟁기간동안 늘었다는 얘기도 있고
미군과 국군이 매복작전 도중 어슬렁거리며 위협하는 호랑이를
잡았다는 기록도 몇몇 있습니다. 일부러 사냥했다기 보다는 그냥
작전중에 습격이나 배회하는 바람에 잡았다는 경우가 많고 국군
기록에는 10마리는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외 미군과 백마부대가 잡은 호랑이 사진은 꽤 많습니다.
하긴... 맹호나 백마나 해병대나 주둔하던 전술지역이
중부와 중남부 전선이었는데, 그쪽이 딱 호랑이 서식지가
관통하는 지역이라 호환이나 호랑이 목격이 자주나올만 합니다.
창설시기부터 역사가 다른 부대입니다
전설을 남긴 참전용사들의 후예들은 오늘도 조국을
수호하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 부탁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추천후 감상들어갑니다..
290기 입니다~~^^
잘봤습니다.
그때는 항공대도 편제에 있었죠.
군사지식님 글 잘봤습니다. 양기사 얘기 나올때 댓글 달려고 했는데 ㅎㅎ
저는 옆에 9123부대에 있었습니다.
장갑차 뒤집어진 사고.. 정말 안타까웠고 그때 사망하시분의 명복을 빕니다.
전 95군번입니다^^ 기갑학교출신이고
장갑차정비병였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 하면 라찔하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네요
수방사인줄알고 개좋아했는데ㅠ
diuision 은 뭔가 싶었네요
한창 민주화시기라 전경차출엄청나게했었죠...
그거 자세히 까보면 원래 안갈사람은 안가야되는데 이사람 저사람 다 넣으니까 안그래도
징병제에 병력의 질이 떨어져서 계속 전년도에 아무나 밀어넣은 병력을 다음해에 또 채우니까
악순환이 반복되는거 같습니다.
기보사단은 그래도 보병사단과 다른 기동성과 장비조작 전문성이 바탕이 되야되는데 신교대 사라진건 좀 아쉽네요
올리시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혹시 다음에 밀리터리 토크x라는 채널?을 아시는가요?
지식님께서 보배에 글 올리신 뒤 똑같은 내용이 몇 번 거기에 올라와서 그냥 궁금해서 문의 드립니다. 일전에 20사단 내용도 그렇고 그 전에도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몇 번 있었고요~ 내용도 지식님 올리신 글 압축 요약한 수준이라~ 그냥 한 번 여쭤봅니다~ ^^;;;
저도 제가 직접 뭐... 첩보같은걸 해서 알아내는것도 아니고 위키피디아나 여러 사이트들 혹은 군사전문가들 보고서를 참조해서 글을쓰는지라 저한테 딱히 완벽히 글내용의 저만이 쓸 수 있는 저작권이 있는건 아니고해서 그냥 다함께 좋은 지식을 얻어가자는 의미로 글 퍼가셔도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ㅎㅎ.. 아마 퍼가셨던 분들중 한명아닐까싶네요
1.왜 수기사는 보급받는 순위가 20사단에 밀려 2등이 되었나요?
2.k2 전차도 보급도 11사단에 밀리고...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11사단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11사단이 7기동군단에 재편되면서 11사단도 기존에는 오뚜기나 전방 5개 기갑여단이랑 놀면서 기보사단치고 행군 좀 많이하는 부대로만 알고있었는데 요즘에는 상당히 최신장비 많이받고있더군요.아마 중동부전선에 주력 기보사단이라 그런것도 있고 여러가지가 복합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맹호부대는 기보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우선수위가 점점 밀리고 있습니다.지금도 맹호엔 K2 없는걸로 압니다.
군대에서도 장비에 대한 연한이 있는데... 수기사는 장비 교체 시기가 다가와야 최신 장비로 바꿀듯 합니다.
허리랑 무릎 안다치고 공병 제대한걸 감사합니다.(의가사 제대가 많았음), 한번 맹호는 영원한 맹호~~
늘감솨
우리 기보사가 미 2사단보다
화력 열세라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걔네는 신속투입이라 해서 스트라이커 장갑차같은거랑 헬기로 빠르게 기동하는거고 우리는 포병을 통해서 대량으로 쑥대밭만들고 대량의 병력을 밀어붙이면서 투입하는방식이라 교리차이가 있어서 어느지형에서 어떻게 싸우냐에 따라 다릅니다.
아, 그게...38선에서 잠시 대치일 때, 6사단 자체적 38선 돌파 명분을 위해 화천 파로호
넘어가서 댐을 점령하고 난 후, 이걸 보고받은 우리 군사령관이 공식적으로 백골에게
돌파 후 이북 목표 점령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 식으로 38선에 대치해 있던 우리부대들이
하나 둘 진격을 시작해서 유엔 사령부도 어쩔 수 없이 같이 밀고 올라가기 시작한게 그 내용입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38선 돌파는 군사령부 명령에 의한 10.1일 백골부대지만,
비공식적으론 사단작전명령으로 돌파한 6사단이 최초라는 겁니다.
화천 진격 사유는 파로호댐을 적이 폭파한다는 첩보를 입수했고, 그게 붕괴되면
수공으로 피해가 오므로, 적이 폭파 시키기 전에 점령한다....는 명분쌓기 작전이었습니다.
파로호댐은 일제때 만들어서 44년에 완공된 인공호수의 댐이에요.
평화의 댐이 그 상류에 있을 겁니다.
여담으로 제일 짜증나는 부대이지요...
2개군단 3개군의 통제를 받다보니... 현역시절 한달에 1주 쉬고 훈련 나간적 있습니다.
기갑여단은 홀로 포천에 있어서 (7군단 소속이나 5군단 의 통제도 받고 있었습니다.)
뭐 10여년 지나고 군대 편재도 많이 바뀌었다고 하니 현재는 잘 모르겠지만 지역 특성상 여전히 통제부대가 많을거라 예상되네요 허허허허허
현재 전방 독립기갑여단 5개에서 불무리 해체가 확정되서 예정대로 해체되고 분리독립하면 더 늘어날것 같군요
진짜 짜증나는 부대죠...꼬이다 꼬이다 더이상 꼬일데 없으면 온다는 기갑여단...전 제 친구하고 같이 있었네요...대학 동기넘이 한달먼저가서 122로 배치받고 전 18전차로...번개 교회에서 만나고 부둥켜 안고 울뻔했던...5군단 통제 훈련의 대표주자...대침투 훈련...진짜 아도니스 골프장 주변지형이 아직까지 생각나네요...정찰대나 기갑수색대가 아닌 8사단수색대가 대항군으로 들어오던 그 훈련...하루에 준비태세 4번에 4.2인치 지원소대는 일년에 전차포 사격만 6번 지원 나간다는...진짜 훈련양으로 따지면...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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