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대 (고려말) : 왜구 침략 (경상도 → 전라도 → 개경까지 부족한 식량을 뺏기 위해 침략)
1510년 (중종) 3포왜란 : 허가된 무역지인 부산/진해/울산에서 왜인들의 폭동 발생
1544년 (중종) 사량진왜변 : 통영 사량진에서 왜구 침략
1555년 (명종) 을묘왜변 : 수십척의 배를 이끌고 전라남도 해안가 습격
1592년 (선조) 임진왜란
1597년 (선조) 정유재란 : 임진왜란 이후 재침입.
1696년 (숙종) 안용복이 울릉도에 출몰하는 일본 어민 격퇴
1875년 (고종) : 운요호 사건 : 운요호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 해안과 영종도 포격
1876년 (고종) 강화도 조약 체결로 부산/인천/원산 3항 개항, 치외법권을 인정하여 일본 상인의 약탈적 무역 활동
이후 후속된 다양한 조약 체결로 경제 수탈 가속화.
1894년 전봉준의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일본군대가 한국으로 들어옴.
1895년 을미사변 : 명성황후(민비) 살해
1896년 아관파천 : 일본의 내정 간섭을 피하기 위해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
1904년 조세 징수권 장악당함.
1905년 러-일 전쟁 중 일본이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다케시마로 명명하며 독단적으로 자국 영토로 편입시킴
1905년 을사조약 :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 (일본군이 전략요충지를 마음대로 사용하며, 일본 동의 없이 제3국과의 조약 체결 금지)
1906년 일제의 친일 앞잡이 신문사를 설립.
1907년 고종 강제 퇴위 & 군대 해산
일본의 강제적인 차관 제공으로 나라 빚 상승 → 국채보상 운동 →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
애국적 언론사들을 통제하기 위한 신문지법 제정.
1908년 동양척식 주식회사 설립 : 토지 조사 사업 명목하에 국유지/공유지를 빼앗아 일본의 농업이민자를 모집하여 싼값에 넘김.
사립학교법 제정하여 민족 교육 금지
1909년 간도협약 : 일본이 청나라에게 간도 지역을 청나라 영토로 인정해 주는 대신 남만주 철도부설권과 탄광 개발권을 얻음.
일본군의 남한 대토벌 작전 : 호남지역의 의병들을 무력 진압
대한제국의 사법권, 감옥 운영 권한 박탈
1910년 안창호의 신민회를 탄압하여 진압.
대한제국의 경찰권 박탈
한.일 병합 조약 체결 : 대한제국의 국권 소멸
조선총독부 설치하여 행정/입법/사법/군사등 전부분의 절대권력 행사
회사령 공포로 한국인의 회사 설립을 어렵게 하여, 토종기업 발전을 막음.
1911년 조선 교육령 공표 : 일본어 보급 중심
삼림령 공포 : 국토 전반에 걸친 대부분의 임야를 국유지로 강제 편입후 일본인들에게 매각.
조선 어업령 공포 : 어업활동을 총독의 허가 사항으로 함.
1912년 학교 교원에게 제복 & 칼을 차도록 함.
한국인은 적법절차나 재판없이 즉결처벌 하도록 함.
일본 황족에 대한 불경을 범죄로 처벌.
조선인에게만 태형령 집행.
토지 조사 사업 시행(신고 주의)으로 까막눈인 지방 농민의 미신고지, 지역의 공유지, 국유지를 수탈
1915년 조선 광업령 공포 : 한국인 소유의 광산 등록을 거부하고, 경제성 좋은 광산은 일본인에게 이관시킴.
1919년 3.1운동 이후, 소수 정예의 친일분자를 키워 민족끼리 이간/분열시키는 정책으로 선회 → 이 당시 지식인 중 변절자 다수 등장.
1920년 산미 증식 계획 : 일본내 산업화로 자국내 식량부족 현상이 발생하자, 부족한 쌀을 한국에서 수탈하고자 쌀 증산 계획을 진행.
증산 계획에 투자된 돈은 소작농이 부담하였고, 생산량보다 많은 수탈량으로 인해 한국내 쌀 부족 심화됨.
간도 참변 : 봉오동 전투 - 청산리 대첩의 패배에 대한 일제의 보복으로 간도에 사는 한인 학살, 마을을 불태움.
1925년 치안유지법 제정 (광범위한 항일 운동 탄압)
1930년 청구 학회를 만들어 한국사 왜곡
1931년 만주사변,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을 거치며 한국의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황국 신민화 정책 시행.
중국으로의 물자 전달 용이를 위해 북부지방에 중화학/광업 시설 투자...이 후 패망시 대다수의 시설을 폭파해 버림.
신사참배, 창씨 개명 강요. 일상생활내 조선어 사용 금지.
육군 지원병 공포 (1938) - 해군 지원병 공포 (1943) - 학도 지원병 공포 (1943) - 징병 실시 (1944)
1939년 국민 징용령 : 노동자를 강제로 동원.
식량 배급제 실시하여 식량 통제, 가정내 놋그릇/절과 교회의 쇠붙이마저 강제 징발.
1940년 학교에서 군사훈련 (교련) 실시
1948년 반민족 행위 처벌법 공포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반민 특위) 결과 : 682건 조사 → 221건 기소 → 40건 재판 회부 → 대다수 무혐의 또는 집행유예.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