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진단후 3100 여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23년 겨울에는 넘어지셔서 머리 수술 받으시고 그 뒤로는 병원을 전전하셨으니 고통스러운 날들이 많으셨던거죠.
넘어지고 나신 24년 부터는 일기도 안쓰시고 짧은 메모를 하셨던데,
얼마 안 남은 인지를 가지고 메모하셨던건 가족들의 생일, 조카들의 생일.
가족들의 생일을 아버지께 물어서 아버지가 써주시면 그걸 다시 마지막 인지의 망가진 글씨로.
21일이라면 이십201일 이렇게 말이죠.
아버지가 써놓은거 보자고 하시면 저기 있다고 안보여주시곤 했다네요.
본인 께서도 엉망인 글씨를 보여주기 싫으셨고, 본인의 인지가 엉망이 된걸 아셨는가 봅니다.
원래부터 고민을 스스로 감내하시던 성향이라, 낙상하고 머리에 피가 날때도 식구들에게 얘기 안하시고 작은 방 침대에 혼자 누워계셨었으니.
6/25 직후에 급사하신 어머니의 아버지, 일찍이 질환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여동생, 남동생과 어머니 두 분이 어려서부터 의지하며 일궈오신 가족들. 삶의 기복 때문에 어머니의 손을 거쳐 성장했던 어머니의 조카들.
사고로 일찍 잃은 큰 아들. 살고자 이민을 선택한 큰 며느리와 어린 손녀.
그래서 어머니는 비극적인 이별을 한탄하시던 글이 일기 곳곳에 나타납니다.
어머니 곁에 남았던 유일한 아들인 제가 어머니의 외로움을 채워드렸어야 하는데, 저 역시 어리고, 아직도 어려서 그걸 채워드리지 못했고.
병을 얻으시고 넘어지시고 고통과 혼란속에 인지와 감각, 육신의 기능을 잃어 결국 선종을 하셨습니다.
가족을 위해 그렇게 헌신하셨는데 이런 질병과 낙상이라니.
이것이 인생의 보람이고 보상인가 개탄스러웠지만,
낙상 이후의 600여일, 숨 쉴틈 없이 마를 새 없이 혼란스러웠던 기간을 돌이켜보니 급격히 인지를 잃어가시던 어머니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외로우셨으며 그 속에서 가족을 잃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을 하셨던건지.
그 사이에 어머니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주변분들이 꼭 존재했다는걸 깨닫습니다. 의사선생님 마저도 연휴중에 병원에 들러 살펴보고 가셨다니.
어머니께서 받은 인생의 보상이 개탄스러운 일들이 아니라 어머니의 삶에서 이어진 복이었다는걸 깨닫습니다. 우연히 한국에 입국중이던 큰 며느리가 부고를 받고 달려올수 있었던건 삶의 보상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복된 인생이셨던걸 깨닫습니다.
어머니가 가족을 중요시하는건 저 어린시절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네요.
힘들다고 바쁘다고 가족들에게 더 못해준 제게 큰 교훈을 남기셨군요.
과제 중심형 사고방식이라 가족들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던 제가 어머니를 보자니 어머니의 1/10 안되는것 같아서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순간에나 사진을 찍고 녹음을 하지만 건강하실때 도란도란 일상 대화하는것 녹음해 놓지 못한 것 너무나 후회 스럽고. 그 인자한 목소리 다시 못듣는게 속상하고. 영정사진에서 보여주시던 그 잔잔한 미소속의 눈 마주침을 더 볼 수 없어서 속상합니다. 어머니의 깊은 속을 이제서 깨달을 만큼 어머니와의 속 깊은 대화가 부족해 어머니의 외로움을 채워드리지 못함에 저의 미련함을 느낍니다.
어머니 건강하던 시절 같이 성당 다니자고 하실때 좀 더 자주 다닐걸. 그랬으면 좋은 기억들 더 쌓고 더 많이 대화했을건데.
글 보시는 모든 분들 가족들 건강하실때 깊은 대화 속에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며 행복이 깃드시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댁내 행복 가득한 날들 이어지시길 소망드립니다.
저도 어머니가 예전 모아두신 일기가 있는데
도저히 못 읽겠어요 나중에 돌아가시고 나서도
맘아파서 못볼것같아요
보다가 깊이를 느끼고 복받치면 읽기를 멈추고.
그래도 어머니의 온정이 느껴지기에 다시 꺼내들고 그럽니다.
맘 아픈것 맞네요. ㅜ
잔잔하게 써 내려간 글 속에서 많은 감정들이 느껴집니다.
저도 어머니를 치매로 보냈는데, 어느 날 저를 불러 본인의 물건들을 정리하시고는 자식 손주 며느리에게 나눠주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전화 누르는 법을 몰라 전화를 못하시고 받기만 하시다가, 이젠 전화 받는 법도 몰라 통화하기가 어려워짐에도
제 살기 바빠서 함께 많이 못했던 후회가 남네요.
글쓴님도 너무 많은 후회는 하지마세요.
저도 살아보니 인생은 매 순간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고, 그 선택 속에서 님께서도 최선의 선택을 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에서야 결과를 알기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본인의 선택에 아쉬움은 있더라도 너무 자책하시지 마세요.
이 나이에도 간간히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동안 그리움이 많으셔서 힘드실지도 모르지만, 님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지금은 그냥 어머니의 가족 사랑을 본받고 배워보려고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댁내 평화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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