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두려운것이 없었고, 내일이 없는 것 처럼 겁 없이 살았는데,
40대 중반부터는 가슴으로 삼키며 살아가게 되더군요.
술을 못 합니다.
마약을 안합니다.
자존심과 옳고 그름을 지키며, 그렇게 남자들의 세계에서
나름 괜찬은 생활을 하였죠.
나 개인의 사고로 학교를(교도소) 간적은 없었죠.
28살에 한 여자를 만나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내가 지켜야할 사람이 있는데...
그떄부터 그냥 그쪽 일들이 무겁더라고요.
손을 씻고
부산 서울쪽 25톤 장거리를 다니며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사랑하는 여자와는 몇년을 만나다가 헤어졌습니다.
7년전...
아버님이 계단에서 넘어지시고,
전신 불구가 되었습니다.
제가 똥 오줌 받아가며 모셨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결혼을 못 한것은 그만한 이유가 다 있었기 때문이란것을 ...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면,
전신 불구인 아버님을 곁에서 모실수가 없었겠죠.
그렇게 가슴으로 마음으로 삼키며 3년을 보냈습니다.
코로나가 전세계를 삼키며
혼란스러운
어느날 여동생의 딸이 태어났습니다.
태어날때무터 문제가 생겨 연세대학 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마음이 또 아파습니다.
6개월이란 시간 동안 병원 근처에서 동생과 조카의 병원 생활을
보살피며 보내었습니다.
다행이 두번의 수술로 퇴원을 하였죠
부산으로 돌아온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울먹이며 " 형님 XX가 유방암이라고 합니다 "
3기와 4기 중간쯤 된다고 하더군요.
빠른 수술이 필요 했고,
제부와 나는 여기 저기 수소문 하고 병원을 찾아 다니며,
정신 없이 보냈습니다.
수술을 받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동생을 보며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현실이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많이 좋아지고 별 탈 없이 5년이 지나면서
안정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너무 이쁘고 건강한 아들이였죠
그와중에 예전에
3년동안 아버님의 병 수발을 한다고
집(1억)과 상가(2억)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용 했는데,
새로운 법령으로 소득에 따라 대출의 한도가 정해지는 DSR이란것
때문에 은행에서 1억은 연장이 안되고 2억은 연장이 된다고
하며 1억을 상환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1억 때문에 집이 경매로 넘어 간다는 사실에
상가와 집 두채를 급매로 내어 놓았지만,
3개월동안 팔리지 않았어
일단 사채로 1억을 빌려 은행 대출을 갚고
1년 안에 물건 3개중에 하나만 팔면 된다는 생각으로
결국은 팔리지 않았고 경매로 12억짜리 집이 4억5천에
넘어 갔습니다.
사채 이자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아내와는 이혼을 하고
어머님과 남아 있는 여동생 명의로 되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돈이 없어 부엌 겸 거실 방 하나인 문칸방에 어머님을 모시고
3월부터 9월까지는 에어컨 기사 보조로 10월부터 2월까지는
현장직 노가다 농수산물 시장 야간 하역 같은일을 하며
아들 양육비와 어머님과 저의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작년 10월에 전 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로이가 자폐스펙트럼 장애라고
병원을 또 여기 저기 수십곳을 찾아 다니며
가슴 태우고 아파했는지
ABA 치료. 언어치료, 감통 치료. 사회성 훈련,
치료비? 수업비? 센터에서 하는데 돈이 돈이 어마무시 하더군요.
여전히 집 한채와 상가 하나가 있습니다만,
상가는 달세 받아서 은행이자 내고 나면 적자입니다.
집은 동생 명의로 되어 있는데,
2층 한세대(전세) 1층 두집 (전세) 그리고 1층에 문칸방에 어머님과 저가 살고 있습니다.
근뎅, 2월달에 1층 한집이 방을 뺀다고 합니다.
전세빼줄 돈이 없는데...
이 집에 대출은 없지만, 주택이라 세입자들을 찾기도 어렵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2026년 2월 어느날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 집을 못 찾겠다"
평생을 한 집에서 사셨는데, 고령의 나이에
새로 이사온 집을 못 찾을수도 있겠지 싶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좀 이상하다 싶어
대학 병원 신경과에 모시고 검사를 했습니다.
아니길 바랬는데,
치매라고 하더군요.
좋아질 일은 없으며,
최상의 방법은 현재 상태로 머물게 하는것이며
그 다음은 천천히 진행 되도록 하는것이 차선책이라고 하더군요.
3월부터는
군에서 허리를 다쳐 의가사 제대를 했는데,
요즘 무리하게 일을 한 탓인지...
허리가 너무 아파 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몇일을 몇주를 병원과 집만 왔다 갔다 하면서
집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제 인생이 참 슬프다는것을
제 인생이 가슴으로 마음으로 삼키며 살아온 일들이
아들 문제, 집 문제, 대출 문제, 전세금 문제, 제 허리 문제, 어머님 문제,
더 이상 얼마나 견디며 버티어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에
글 올려 봅니다.
요즘은
눈 감고 잠 들면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잠들어 있는 그 아무것도 느낄수 없는 그것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눈을 떠는 일이 없기를 간절하게 원합니다






































빚없이 평범하게 살고싶습니다
빚없이 평범하게 살고싶습니다
이거 여자가 쓴소설이네
의병이라고 해야하긴 하지요
아침, 새로움과 시작의 의미로 맞으시기를.!!
잠들어 있는 그 아무것도 느낄수 없는 그것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저 또한 매번 느끼는 고통이지요..
감히 이해한다고는 하지 못하겟네요. 하지만 이런 삶 또한 이어나가는데 이유가 있을겁니다.
힘내십시요! 한걸음이 소중합니다.
잘이겨내시길.
멀리 해야함
갚을 능력이 없어보이면
절대 돈 않빌려 주거든요
이분도 자산은 꽤 되는데
현금화가 않되서 어려우신
분이네요.이정도면 국가정책
으로 알아보셔도 숨통은 트이실듯한데.
상황이 너무 앞뒤옆 다 꽉막힌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언제고 꼭 좋은 날 있으시길 바랍니다.
감히 제가 뭐라 할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힘내시라고...
힘내셔요...
좋은날 꼭 오시리라 믿으며 멀리서나마 응원하겟습니다
길가는 사람들 얼굴은 평안하지만 다 하나이상의 걱정은 있어요
사회초년기에 진 죄가 많아 인과응보일지도...그게 세상 이치더군요
요즘은 평범이라는 말 자체도 그 의미가 다르게 쓰이긴 합니다만...
한편으로 제 스스로가 창피해 집니다.
하지만 이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살아야, 살아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갑자기 "폭삭 속았수다"라는 넷플 드라마에서 몇 회 인지는 기억 안나지만 이런 소제목이 생각이 납니다.
"살믄 살아진다.."
부디 힘 내시길, 이겨 내시길 마음속에서부터 응원합니다.
힘내시길 바랍니다!
더러운 짖하는 놈들은 잘살고
저리 천사같은 사람은 어렵고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힘내시길 응원합니다
결혼도 안해본 애가 쓴 소설ㅋㅋ
제~~~~~~부 라고 부른다고 ㅋㅋ
세상 두려운것이 없었고, 내일이 없는 것 처럼 겁 없이 살았는데,
40대 중반부터는 가슴으로 삼키며 살아가게 되더군요.
술을 못 합니다.마약을 안합니다.
자존심과 옳고 그름을 지키며, 그렇게 남자들의 세계에서
나름 괜찬은 생활을 하였죠.
나 개인의 사고로 학교를(교도소) 간적은 없었죠. "
이 말은 젊었을때 조폭생활을 했다는 걸 미화한것 같은데,
아무리 포장해도 조폭은 조폭이고 깡패예요.
남들 등쳐서 돈벌면서 살았다는 얘기죠.
님은 잃은 재산이 억울한듯 쓰셨는데, 그거 전부 남의 등 쳐서 번 돈이니까 넘어가도 님이 안타깝진 않네요.
그리고 여동생, 아버지, 어머니, 님의 아이, 조카까지 전부 힘든 상황인가본데,
님의 젊은 시절에 님에게 두들겨 맞거나, 돈뺐긴 사람들은 더 힘들었을 거예요.
보배가 젊었던 시절 조폭하던 사람의 인생사를 위로 해주는 공간은 아닌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버티며 잘 해왔잖아요.
이제부터는 분명히 좋은 일들만 가득 하 실 겁니다~!@
힘내세요~~~^^
보통의 일반인이 이런 말을 할수가 있나? 양아치고 조폭이고 뭐고간에 일단 교도소를 들락날락 일정도면 동네에서 얼라들 패고 다니는 수준은 아녔던 갑지
근데 매제를 제부라고 표현하는걸 보면 윗분 누군가의 말처럼 여자가 쓴 소설인가싶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살면서 동생의 남편을 제부라고 부르는 사람은 여자밖에 본적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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