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다고 10여년이 지났어도 어쩜 꿈에 한 번을 안오실까...이제는 엄마 목소리도 가물가물하고...한 번쯤 나와요. 꿈에서라도 좀 안기게요. 이모들이 울어야한다 속으로 삼키면 안된다 했을 때 못 울겠더이다. 살아 생전 이거 먹고 싶다 이거 갖고 싶다 할 때 귀찮아서 못 들은채하고 사고만 치던 막내아들인데 돌아가셨다고 우는 건 사치라 생각했으니깐요. 속으로 말했습니다. 니까짓게 이제와서 울어? 넌 울 자격도 없는 놈이니 참아라. 소리내 울지말아라. 엄마 내 나이 이제 마흔 중반이다. 오늘 꿈에 아들 한 번 보러 오셔
아이, 감정 파개자 성님 ㄷㄷ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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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존나 불쌍한척 연병하고 잇네. 병신새끼가.. 다 같이 없이 살던 시대인대 짜증나게
양발 빵구나면 꼬매신고 바지 찌져지면 꼬매입고 그렇게 다들 힘들고 어렵게 살았던 시대인데
혼자 센치해져서 연병떨고 있네 병신새끼가.
1988년도에 못가는 사람이 반에 몇명 있었을거 같냐???
1990년 초6 수학여행 반 52명중에 한명 못갔다 - 몸이 안좋아서
74라면 대부분은 수학여행 갔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ㅠ
뭔 개소리임... 어디 대도시만 살아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그때는 도시락도 못싸다녀 점심때 수도물로 배 채우는 애들 꽤 있었다.
육성회비 못내서 개맞듯이 쳐맞고 바리깡으로 머리깍이던 애들도 있었고.
수학여행은 무슨 수학여행. 신문배달 하던 애들 널렸었고만.
찌질하게 반응하는 빨끈한 인간 옹호할 마음은 1도 없는데, 사실관계는 챙기자고.
발꼬락님~ 좋은 글 감사용^^
돌아가셔 그것도 없네요
다만 집전화 번호는
주민번호만큼 않잊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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