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보니 세월호때 자식잃은 부모들에게 개소리햇던인간들 생각나네요 자식죽음 이용해 돈벌이수단이라고 ..... 그때 그렇게 욕하는 인간들 아마 자식없는사람들이겟지 같은 자식이잇는 부모라면 저딴 개소리못하지 ......햇엇는데 자식의 죽음 상상조차도 아니 그상상만으로도 소름돋고 눈물이 나는데 자식을잃은 당사자분들 그 심정이 어떨지.... ㅠㅠ 슬프네요
장인어른 장례치르면서 상조회사분과 얘기 몇마디 나눴는데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을때가 언제냐 여쭸더니 세월호 당시 자원봉사 나가셔서 염할때 자식앞에두고
부모가 우는 모습은 이일하면서 여러상황 겪었지만 제일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트라우마로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게되었다 합니다.
저도 친한 형네 부부가 둘째를 질식사로 잃었을때 병원에서 형과 와이프분이 운다라고 표현 할 수 없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이제 뒤집기 시작한 아가였는데... 엄마가 깜빡 졸은 사이에 뒤집어서 질식사로 먼저 갔습니다.
형은 병원 의사 붙잡고 울고 형수는 병원 정문 바닥에 주저 앉아 절규하며 자학하기 시작하더군요.
주먹으로 본인 머리를 때리고 뺨을 때리고... 미친년이라고 나가 죽으라고(본인에게) 소리지르며...
거기다 그런 형수를 바라보는 노모까지... 할머님은 절규하는 딸을 보며 의자에 반쯤 쓰러진채로 앉으셔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계셨습니다.
형하고 저녁 늦게까지 같이 놀다가 서로 집에 간다고 잘 인사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형한테 전화와서 운전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 받자마자
그 절규하는 목소리... '아이가 죽었데! 아이가 죽었데! 빨리 와봐. 빨리 와줘 어떡해! 나 어떡해!'
그 목소리 듣고 정말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습니다.
새벽녁 밤길을 어떻게 운전을 하고 달려갔는지 모릅니다. 가는 동안에 자꾸 눈물이 나고
계속 소름이 돋아서...정말 너무 무섭고 슬프고...
세월호때 가르치던 제자가 사고를 당해서 장지에 따라갔는데 그때 제자를 수목장하고 아버지가 절을 하는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그 뒷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네요. 가슴이 무너져내렸습니다. 3남매의 장남이고 하필 수학여행 가기전에 숙제 안해도 되죠?이랬다가 저한테 꿀밤 맞았는데....
아직도 세월호 아이들 창가에 붙은 동영상은 한번도 보질 않았습니다. 트라우마 생길까봐요.
잊혀질만 하면 생각이 나네요.
사고나고 일주일 안산 와동 골목은 정말 아이들 웃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웃집마다 상을 당했으니 그누구도 밝은 표정도 보이질 않았어요.
삼척 작은 항구에서 캠핑할때 갑자기 왠 아주머니가 우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중년의 부부가 오셔서 바다에 흰 박스의 재를 뿌리더군요. 그때 그 울음소리... 어찌나 처절하던지. 그냥 듣고만 있어도 오금이 다 저리더군요. 한참을 바다에서 울고 가셨는데... 아주머니 울음 소리만 들어도 자식이 먼저 갔구나 싶더군요. 먼저 간 자식이라 묘지도 제대로 못쓰고 바다에 뿌리는 마음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아마 바다가 그 자제분의 유해를 품어 넓게 여행시켜주리라 믿어요.
그때 그 울음소리 반년이상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
아주아주 작지만 느끼고 있습니다.
죽을때까지 가슴 저미며 살아갈 부모의 마음을 누가 알까요.
그래서 불효중 최고의 불효가 부모보다 먼저가는 거라지요..
이런글 읽으면 눈물이 납니다...ㅜㅜ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
아주아주 작지만 느끼고 있습니다.
죽을때까지 가슴 저미며 살아갈 부모의 마음을 누가 알까요.
그래서 불효중 최고의 불효가 부모보다 먼저가는 거라지요..
이런글 읽으면 눈물이 납니다...ㅜㅜ
민관군 모두가 투입되었죠.
사고잔해기 지점까지 갔다가
대책본부가 있는 초등학교에서 들은 유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정말 귀신소리라 해야하나 곡소리라 해야하나 소름끼칠정도의 울음소리를 들었네요.
그때 마을분들이 모두 도우러가셨다고...
대통령과 같이 찍은 사진이 집에 걸려있었던 기억이 있네요...
반 정도는 부모님 가슴에 못 박았을건데
아직까지 닭대가리뇬 부터 실실 쬬개는 대변인 부터 악마 같은 모습이 잊혀지지 안습니다.
대변인이라는 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네요...
자기 아들이 나랑 같은 부대(사단)인데 오늘 휴가를 나오기로 했는데 지금까지 연락이 안되서 지금 부대 가는 길이라고...
난 철없는 아들이 연락 안하고 어디 놀러갔나 했는데 휴가 복귀하고 보니 그날 사고사례에 휴가 나가는 차량 전복되서 장병들 사망..
근데 아침에 사고 났는데 저녁까지 부모한테 연락조차 안한건 참 군대 개같은 곳 이구나 싶었음
Sns로는 세월호 애들 냄새난다고 똑같은유족 되라고 지껄인 인간 쓰레기 한놈 봤네요
남편을 잃으면 "과부"
아내를 잃으면 "홀아비"
자식을 잃으면 .... 그슬픔을 말로도 표현할수 없기에 지칭하는 단어가 없는 거랍니다.
그런데 .. 그런 아이들을 잃고 그 진실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하는 부모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던 놈들!! 그런 놈들은 사람이 아니죠!!
지자식 죽었는데
처음엔 눈물 로 호소해서 감정여론 만들더니
합의금 두둑히 챙기고 명품백까지사고 하하호호 하면서 살더라구여 자기자식이 맞나 싶긴해요
주어는 없습니다
이건 상상도 못하죠..
다만 사람이라면.. 그런 일은 당한사람의 슬픔은 온전히 느껴질겁니다..
근데... 세월호 폭식투쟁하던새끼들은...인간새끼들이 아니죠.... 처죽여야 할 새끼들이죠..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을때가 언제냐 여쭸더니 세월호 당시 자원봉사 나가셔서 염할때 자식앞에두고
부모가 우는 모습은 이일하면서 여러상황 겪었지만 제일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트라우마로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게되었다 합니다.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이제 뒤집기 시작한 아가였는데... 엄마가 깜빡 졸은 사이에 뒤집어서 질식사로 먼저 갔습니다.
형은 병원 의사 붙잡고 울고 형수는 병원 정문 바닥에 주저 앉아 절규하며 자학하기 시작하더군요.
주먹으로 본인 머리를 때리고 뺨을 때리고... 미친년이라고 나가 죽으라고(본인에게) 소리지르며...
거기다 그런 형수를 바라보는 노모까지... 할머님은 절규하는 딸을 보며 의자에 반쯤 쓰러진채로 앉으셔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계셨습니다.
형하고 저녁 늦게까지 같이 놀다가 서로 집에 간다고 잘 인사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형한테 전화와서 운전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 받자마자
그 절규하는 목소리... '아이가 죽었데! 아이가 죽었데! 빨리 와봐. 빨리 와줘 어떡해! 나 어떡해!'
그 목소리 듣고 정말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습니다.
새벽녁 밤길을 어떻게 운전을 하고 달려갔는지 모릅니다. 가는 동안에 자꾸 눈물이 나고
계속 소름이 돋아서...정말 너무 무섭고 슬프고...
하여튼 이 글을 읽으니 그때 그 순간, 장면이 떠올라서 또 슬픈 마음이 듭니다....
저분도 하청업체 직원이겠죠?
산재사망률은 OECD국가 중 23년 동안 21회 1위를 기록.
2018년 산재사망자수 2,142명.
이정도면 일터에 나가는지 전쟁터에 나가는지 구분이 안될정도입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대한민국은 아직 전쟁중인 국가라고요...
아직도 세월호 아이들 창가에 붙은 동영상은 한번도 보질 않았습니다. 트라우마 생길까봐요.
잊혀질만 하면 생각이 나네요.
사고나고 일주일 안산 와동 골목은 정말 아이들 웃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웃집마다 상을 당했으니 그누구도 밝은 표정도 보이질 않았어요.
저런일들이 잃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촌형 상치르면서 3번 주저앉는데..
위로가 전혀 안되겠더라..
상치르고 바로 우울증 불면증 약 처방 받던데..
부모한테 효도하고 자식한테는 사랑주자
그때 그 울음소리 반년이상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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