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 스테이츠맨은 국산차인가 수입차인가?
글/ 황순하(대우자동차판매 기획실 상무)
지난 봄 필자의 회사 내에서 시판을 앞둔 대형세단 스테이츠맨을 놓고 한 동안 가벼운 설전이 벌어졌다. 논쟁의 주제는 판매 실적을 국산차로 분류하여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 통계에 넣을 지, 아니면 수입차로 분류하여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통계로 잡을 지였다. 몇 번에 걸친 토의 끝에 결국 국내 시장점유율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고 싶어한 GM대우 측 주장에 의해 스테이츠맨의 판매실적은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 통계에 넣기로 했다. 하지만 엄연히 호주에서 완제품 생산되어 8% 관세를 물고 들어 와 법적으로는 수입차인 스테이츠맨을 국내 브랜드인 GM대우 엠블렘을 붙였다고 국산차 분류에 포함시킨 조치는 어딘가 아귀가 딱 들어맞는 것같지는 않다. 재미있는 것은 수입물량의 제한으로 인해 월 200여대의 판매실적을 보이고 있는 스테이츠맨이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 통계에서는 다른 국내산 차량들의 판매대수에 밀려 그 존재를 알기가 어려운데 반해, 만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통계에 포함되었다면 국내 수입차 판매순위 1위에 오를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어디에 포함시키든 회사 입장에서야 많이 팔리기만 하면 상관은 없으나, 이는 단순히 국내에서 만들었다 해서 국산차로 분류하고 해외에서 만들어 수입하면 수입차로 분류하던 과거의 기준이 더 이상 깨끗하게 들어 맞지 않을 만큼 우리 주위의 자동차의 세계가 다양해졌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예가 되겠다.
국산차를 말 그대로 ‘Made in Korea’로 해석하여 순수하게 국내에서 만든 차를 얘기한다면, 그 동안 국내에서 개발되어 만들어져 온 대우차나 쌍용차는 이제 외국기업 소유가 되었어도 계속 국산차로 분류될까? 당연히 국산차가 될 것이다. 그러면 외국모델을 그대로 갖고 들어 와 국내에서 만들어 외국 브랜드를 붙여 팔면 어떻게 될까? 원칙대로 한다면 국산차가 되겠으나 국내 소비자들이 그렇게 받아 들일지는 의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현대자동차가 미국 Alabama공장에서 만든 쏘나타를 국내 시장에 갖고 들어 온다면 ‘Made in USA’로서 8% 관세를 내고 들어와야 하니 법적으로는 수입차이나 과연 국내 소비자들이 그렇게 생각할까? 수입업체들이 쉬쉬하면서 밝히지 않아서 그렇지 국내에서 비싼 값에 팔리고 있는 수입브랜드 차종들 중에서도 그 브랜드의 원산지 국가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져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경을 넘어 경영자원이 자유로이 이동하는 글로벌 경제시대에 살다 보니 겪게 되는 이 같은 현상이 비단 자동차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시장과 식당에서 접하는 한우고기라는 것 중에 말 그대로 순수한 고유의 누렁소를 국내에서 키운 뒤 잡아서 내놓는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외국에서 수입한 젖소들을 잡아서 내놓으면 수입육인가, 아니면 한우고기인가? 그 소들에게 먹이는 사료도 거의 다 수입품이라는데 외국에서 키운 소들하고 뭐가 다를까? 또 수입한 젖소들이 국내에서 낳은 새끼들은 어떻게 분류될까? 이에 대해서는 몇 년 전 정부 당국에서 태어났든 수입되었든 국내에서 6개월 이상 양육되면 한우로 분류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놓아서 일견 어색하나마 정리가 되어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지금 미국이나 호주에서 우리 전통의 누렁소 한우를 수입해서 우리나라에 수출할 목적으로 열심히 키우고 있다는데, 그 고기는 우리나라에 들어 오면 수입육이 되어야 한다. 원가가 많이 들어간 수입육이니 아마도 ‘수입한우고기’라는 이상한 명찰을 붙여서 비싼 값에 내놓겠지만 말이다.
앞에서 예를 든 소고기의 경우에는 축산물이라 국산의 개념을 일단 ‘Made in Korea’의 원칙으로 정의하였으나, 현재 원산지 국가가 아니라 각 제품의 브랜드를 앞세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자동차업계의 흐름은 이와는 달리 조립지나 경영권이 아니라 혈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작금의 세계 유수의 자동차업체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각자의 Brand Identity를 강조하는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BMW나 Volkswagen같은 독일 브랜드들은 독일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특징을 디자인의 기본으로 하여 ‘German Engineering’의 이미지를 한껏 활용하면서 그 위에 각 Brand별 Design Theme을 확고히 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 어디에서 만들어지든 게르만 혈통의 우수한 모델들이니 사서 독일식 라이프스타일을 마음껏 즐기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Made in Germany’가 아닌 ‘Made by German’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같은 독일내 자동차제조업체지만 Opel이 GM그룹에 인수되었어도 여전히 독일 소비자들에게 독일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음에 반해, 다른 나라에서 이미 개발된 자동차를 독일에서 만들면서 시작한 Ford는 외국 브랜드로 취급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이렇듯 자동차 공장들이 전 세계에 흩어지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생산원가를 낮추거나 아니면 주력 시장에 근접하기 위해서이나,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생산기술의 발달과 품질의 표준화 및 균등화이다. 최근 들어 자동차는 배기가스 감소와 편의성 증대라는 시장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전자부품들을 속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전자화가 새로운 경쟁 키워드로 떠오른 반면, 기존의 경쟁요소였던 기계적 특성들(연비, 주행성능, 안전 등)의 품질은 오랜 기간 연마한 만큼 상대적으로 안정화되었고 브랜드 간 우열차이도 많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세계 어디에서 만들든 현지부품을 좀 쓴다 하여도 품질관리만 확실히 하면 기본적인 기계적 품질은 별 차이가 없고, 정교한 전자부품들은 자국에서 만들어 가져다가 조립하거나 메이저 부품업체의 현지공장에서 조달해 쓰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글로벌 생산시스템은 앞으로 더욱 확대되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원산지 기준에 의한 국산차와 수입차라는 양분식 구별은 이제 무의미하다. 수입관세를 냈느냐, 안 냈느냐에 따라 법적으로 국산차와 수입차의 행정적 구분은 가능하나, 시장에서는 탄생혈통에 의한 국내 브랜드들과 해외 브랜드들의 국경을 넘어선 처절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자동차 시장 통계에는 각 브랜드 별로 판매대수가 하나의 표에 다 나온다. 웬만한 시장규모를 가진 나라 중에 수입차 통계를 따로 내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와 일본정도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따로 통계를 잡고 있는 것이나, 회원사의 대표이사가 돌아가면서 회장을 하게 되어 있는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가 외국업체가 경영권을 가지고 있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GM대우와 르노삼성의 대표이사를 회장순번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것은 세계 시장의 큰 흐름을 도외시한 속 좁은 행태라 할만하다.
*필자 소개
황순하(대우자동차판매 기획실 상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미국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 근처 Ann Arbor에 있는 미시간대학교의 경영학석사(MBA) 취득. MBA과정 중 교환학생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경영대학원 수학. 귀국 후 기아자동차에 입사하여 수출, 비서실, 동경주재원, 상품기획, 그룹기획조정실, 독일판매법인 등을 거쳐 97년 기아자동차 부도유예 사태 이후 기아그룹 구조조정 업무와 매각입찰 과정의 실무팀장을 맡음.
그 후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아더앤더슨(Arthur Andersen)에서 자동차산업 담당 파트너로서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주요 구조조정 업무를 도맡아서 진행함(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 빅딜,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대우자동차 구조조정 및 GM과의 매각협상, 현대/기아자동차 합병 후 통합 및 계열사 육성방안, 대우자동차판매 신규사업 및 GM과의 협상 등)
현재 대우자동차판매의 기획실 담당 상무로 있으며 Cadillac & Saab의 판매와 A/S를 담당하고 있음. 2000년에 순수문화의 대중화를 위한 벤처기업 Artlifeshop.com을 세워 운영하였음. 그 동안 중앙일보 인터넷신문인 조인스닷컴에 ‘자동차와 문화’라는 컬럼을 1년 넘게 연재해 왔으며, Amis de Vin이라는 와인동호회와 Gourmet Club이라는 식도락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음. 소규모 개인 컬렉션을 갖고 있는 미술품 애호가임.
저서로는 ‘자동차문화에 시동 걸기’가 있으며, 현재 자동차문화라는 주제로 강연과 컬럼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