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과연 체벌때문에 교화가 될까?
절대 아니라고 봄.
오히려 마음속의 분노만 키울뿐.
차라리 몇번의 기회를 준 후에도 문제 일으킬시 위로 올라갈수 있는 기회를 막아버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 학생들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끔 만드는게 낫다고 봄.
예를들어 경고 누적시 학년 유급을 때려버리는 식으로.
경산중앙초등학교 김기한선생님은 진짜 선생님이셨는데..아침마다 서예,단소 가르켜주시고,농악대 만드셔서 전국대회도 데리고 가주시고, 사과,연필 예쁘게 깍기 대회, 육상부도 만드시고..등등
체벌하신적도 없으시고 제일 크게 혼내신게 복도에 서서 자기의 잘못에 대해 반성이 끝나면 교실들어오라고 하신것.
아무튼 찾아오는 졸업생도 많았고
5학년때 담임이셨는데 6학년이 되고 1학년 맡으신 선생님 교실에 매일 놀러가서 애들 시험지 채점,청소도 도와드리고 선생님이랑 이야기하고 놀다 집에 가고 그랬는데..
경산이라 하셔서 김기한선생님이 생각나네요.
안타깝지만 그렇지 못한게 현실입니다
이미 그런 촌지와 폭력에 찌든 교사들은 명예롭게 은퇴했죠
자기와 가족들, 자기 나름은 평생을 교육에 헌신하며 40년 교직 인생을 마무리했고
퇴임할땐 보통 훈장도 받았으며, 엄청난 호봉과 연금 이자율 덕분에 최고액의 연금까지 20년넘게 수령하면서
교육자 집안이는 좋은 기억만 가지고 생활했을겁니다
지금 있는 교사들은 보통 그때 맞았던 애들이 교사되고 학부모 되어서 그때처럼 우리 자식들 맞지않을까 불신이 극에 달해 있는 현실입니다. 가해자는 명예롭게 은퇴하고 남은 피해자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꼴
한 학년이 15개반이 있을정도로 학생수나 교사수가 많았던 시절. 그 많던 선생님중에 매를 들지 않는 참교육 선생님이 딱 한 분 있었던 시절. 온 갖 화풀이를 학생들에게 할정도로 이유없는 폭행도 많았고, 가학성 변태들인지 모르겠지만 고통을 주는 방법만 연구한듯한 각종 체벌도구와 방법들.
그 당시는 교사라는 직업이 쉽게 접근가능했을때여서 아마 막장들이 더 들어간듯하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매를 들지 못하는 현 살태를 악용해 인성나쁜 애들의 놀이터가 되가고 있는듯하죠. 몸집이 작은 여교사를 희롱하고 반항하고 폭행하는 교육현장에 교사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수가 없죠. 과거와 지금이 너무 갭이 커버리니 현시점은 교권과 학생인권의 갭이 너무 차이가 커져버렸어요
82년생입니다..
학교 다닐때 선생님들한테 많이도 맞았죠..
정말 수많은 도구와 방법을 보고 학교를 다녔는데..
선생한테 당한것중에 마흔이 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건
1991년 목포 xx국민학교 3학년 10반 박x례 선생..
아들이 같은 학교 5학년에 다니는 여선생이었죠..아들 이름은 x모
차라리 맞았으면 기억도 안날텐데
당시 꾀죄죄하게 다녀서 그런지 항상 교탁 앞에 불러놓고 큰 소리로 자기 하는 말을 크게 따라하게 했었어요..
"나는 거지다"
"나는 깡패다"
"나는 바보다"
반 친구 전체가 보는 앞에서 부끄러워 목소리가 작아지면
크게 할때까지 계속 했어야했던 그 단어들을 30년이 넘은 지금도 기억합니다
10살짜리가 그런 말을 크게 따라해야 할만큼 큰 잘못이 있었나싶기도 하고..
내가 나이를 먹어보니 애한테 꼭 그렇게 시켰어야 했나싶기도 하고..
그 선생이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과연 체벌때문에 교화가 될까?
절대 아니라고 봄.
오히려 마음속의 분노만 키울뿐.
차라리 몇번의 기회를 준 후에도 문제 일으킬시 위로 올라갈수 있는 기회를 막아버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 학생들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끔 만드는게 낫다고 봄.
예를들어 경고 누적시 학년 유급을 때려버리는 식으로.
고등학교 임시 소집 일 삼촌 카센터에서 알바하다 늦었다고 선생인지 뭔지 모르는 아저씨 한테 뺨 오연타 맞음
입학식 하고 교실에 앉아 루키라는 농구 잡지 보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들어와 떠듬 그냥 학습지나 교복집 아저씨가 홍보하러 온지 알았는데
갑자기 나한테 오더니 발로 차 자빠진걸 밞아 댐
담임 이었음 그러더니 너 임시 소집일때도 나한테 맞은 놈이지 이럼
가끔 고딩때 친구들 만나면
우리학교 개교이래 임시소집일 입학식 연짝으로 맞은 애는 니가 유일할거라 놀림ㅋ
솔직히 말해 다시 그때를 생각해보면 체육선생들 학교 경비만도 못한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수학도 못해 영어도 못해 애들 빠따로 때리는건 취미고 남학생들 젖꼭지 사타구니 잡는건 기본이요... 그냥 공 하나 던져주고 놀아 하면서 지는 어디 구석가서 쳐 자고 창고 컴터실에서 발올리고 고스톱 치고... 진짜 학교 경비만도 못한 체육선생들 많았지 매일 아침마다 학교청소 검사하고 잘 안되었거나 지저분 하면 매일 때리고 그럴거면 니들이 청소나 해라!!
에휴... 저거 보면서 내 친구들 지금까지 정신 못차리는놈들 보면 90년대 2000년대 학교 다닐때 선생들한테 빠따 그렇게 맞고 다니던 애들이 지금도 원한도 없는지 지금까지 학교 찾아가서 스승의 날마다 과일세트 사다주고 음료세트 사주고 술사주고 그러는데 지금까지도 가스라이팅 당하는걸 보면서 니들 부모님한테나 잘해라
그나마 맞기 싫어서 자중하던
쓰레기같은 족속들이 더 쓰레기로 성장중
체벌은 필요함
절대 아니라고 봄.
오히려 마음속의 분노만 키울뿐.
차라리 몇번의 기회를 준 후에도 문제 일으킬시 위로 올라갈수 있는 기회를 막아버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 학생들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끔 만드는게 낫다고 봄.
예를들어 경고 누적시 학년 유급을 때려버리는 식으로.
그걸 선생년이 동생편들어서 같이 때린다고 오해하고
인정할때까지 패더라고요
억울해서 선생 죽이는 꿈도 자주 꿨었는데
싸리빗자루다가 다 떨어져나갈떄까지 얼굴을 맞았습니다 ㅋㅋ
그 고요함속에서 말이죠
ㅎㅎ저도 아직도 생각하면 ..ㅋㅋ ..
체벌하신적도 없으시고 제일 크게 혼내신게 복도에 서서 자기의 잘못에 대해 반성이 끝나면 교실들어오라고 하신것.
아무튼 찾아오는 졸업생도 많았고
5학년때 담임이셨는데 6학년이 되고 1학년 맡으신 선생님 교실에 매일 놀러가서 애들 시험지 채점,청소도 도와드리고 선생님이랑 이야기하고 놀다 집에 가고 그랬는데..
경산이라 하셔서 김기한선생님이 생각나네요.
이미 그런 촌지와 폭력에 찌든 교사들은 명예롭게 은퇴했죠
자기와 가족들, 자기 나름은 평생을 교육에 헌신하며 40년 교직 인생을 마무리했고
퇴임할땐 보통 훈장도 받았으며, 엄청난 호봉과 연금 이자율 덕분에 최고액의 연금까지 20년넘게 수령하면서
교육자 집안이는 좋은 기억만 가지고 생활했을겁니다
지금 있는 교사들은 보통 그때 맞았던 애들이 교사되고 학부모 되어서 그때처럼 우리 자식들 맞지않을까 불신이 극에 달해 있는 현실입니다. 가해자는 명예롭게 은퇴하고 남은 피해자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꼴
한편으로는 이런 점이그때 감정이 실린 풀스윙 마대자루로 맞았을때보다 더 분하고 열받습니다
어질게 바뀌셨습니까 ㅎㅎ
그나마 맞기 싫어서 자중하던
쓰레기같은 족속들이 더 쓰레기로 성장중
체벌은 필요함
진짜 제대로 안맞아본 사람들이 이런 소리 함
학교 운동부 생활 하면서
시멘트에 머리박고 빠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맞음
그래도 참고 버티는 이유가 뭔지 아냐??
목표랑 동기들선후배들 정이 있으니까
참고 버티는거여
체벌이 아니라 목표와 꿈을 만들어 주는게 학교여야
되고 체벌이 있다 하더라도 “사랑의매” 에서 “사랑”이
있어야 교육이 되는거여
그래서 당시 학교일진은
동급학생이 아니라
대부분 교사였음
일진위에 폭력교사
모든 선생놈들이 균일한 완력을 쓰고 균일하게 힘조절 하면서 따금함을 수치로 측정해 정확히 힘 계산해서 때릴 수 있다면 가능하겠죠.
사랑하는데 폭력?
그 당시 사랑의 매를 방조한 교육부가 사이코임.
고한초등학교 출신입니다
그 당시는 교사라는 직업이 쉽게 접근가능했을때여서 아마 막장들이 더 들어간듯하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매를 들지 못하는 현 살태를 악용해 인성나쁜 애들의 놀이터가 되가고 있는듯하죠. 몸집이 작은 여교사를 희롱하고 반항하고 폭행하는 교육현장에 교사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수가 없죠. 과거와 지금이 너무 갭이 커버리니 현시점은 교권과 학생인권의 갭이 너무 차이가 커져버렸어요
그냥 걸리면.....그런 좆같은 시절도 있었죠
등교 시간 관계없이 무조건 자기 바로 뒤에 오는 넘 1대 그다음 오는 넘 2대 그다음 오는 넘 3대 .... 야구 빠다 풀 스윙...
아침마다 복도에서 들리는 그 소리 들으며 , 우리반 담임이 아닌 걸 얼마나 행복해 했던지..
벌써 강산이 4번 변했슴.
학교 다닐때 선생님들한테 많이도 맞았죠..
정말 수많은 도구와 방법을 보고 학교를 다녔는데..
선생한테 당한것중에 마흔이 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건
1991년 목포 xx국민학교 3학년 10반 박x례 선생..
아들이 같은 학교 5학년에 다니는 여선생이었죠..아들 이름은 x모
차라리 맞았으면 기억도 안날텐데
당시 꾀죄죄하게 다녀서 그런지 항상 교탁 앞에 불러놓고 큰 소리로 자기 하는 말을 크게 따라하게 했었어요..
"나는 거지다"
"나는 깡패다"
"나는 바보다"
반 친구 전체가 보는 앞에서 부끄러워 목소리가 작아지면
크게 할때까지 계속 했어야했던 그 단어들을 30년이 넘은 지금도 기억합니다
10살짜리가 그런 말을 크게 따라해야 할만큼 큰 잘못이 있었나싶기도 하고..
내가 나이를 먹어보니 애한테 꼭 그렇게 시켰어야 했나싶기도 하고..
그 선생이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30년전에 있었던 일이 어제 일처럼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당시 감정적으로 폭력 일삼던....
선은 지켰지만 국어선생 류필강은
완전 쓰레기였죠.
그외 다수.....참 지금생각해도 죽여버리고
싶은만큼의 분노가 차 오른다!!
잘못해서 때렸다기보단 그냥 본인들의 화풀이
혹은 감정조절을 못해서 학생들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
절대 아니라고 봄.
오히려 마음속의 분노만 키울뿐.
차라리 몇번의 기회를 준 후에도 문제 일으킬시 위로 올라갈수 있는 기회를 막아버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 학생들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끔 만드는게 낫다고 봄.
예를들어 경고 누적시 학년 유급을 때려버리는 식으로.
자의든 타의든 그런애들 모아 놓고
에너지 풀수 있는 공간 만들어주는게 더 좋을듯
그런 친구들은 보통 집에서 부모 감정쓰레기통으로
큰 애들이 많아서 진짜 특이케이스 몇몇 빼곤
애너지 풀어주고 보듬어주면 잘 자람
생각을 해봐라...
지금도 골빈년 천지인데
20년 30년 40년전에 오죽했겠냐..
나도 기억은 많이 나지만 그냥 좆밥년들이라 그랬겠거니 한다.
어짜피 존나 잘살지도 못해요. 죄다 좆밥년들이라
하는짓은 촌지좀 받고 애들좀 후드려까고 갈보짓좀하다가 시집가서 애낳고 사는건
지금이나 그때나 매한가지야.
그냥 잊어 어짜피 죄다 죽을 년들이다.
희안하게 남자새끼들도 씨발샛기들 많았는데 여교사년들이 개쌍년들이 진짜 많긴했어 ㅡㅡ아 시발 정옥채랑 김인숙 개년들 30년이 지나도 생각나긴하네..
봉투를 받고 난 후.
저렇게 심하면 안되는거지만
체벌은 필요하나
감정폭행을.필요에의한 체벌로둔갑시켜서그게문제지
입학식 하고 교실에 앉아 루키라는 농구 잡지 보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들어와 떠듬 그냥 학습지나 교복집 아저씨가 홍보하러 온지 알았는데
갑자기 나한테 오더니 발로 차 자빠진걸 밞아 댐
담임 이었음 그러더니 너 임시 소집일때도 나한테 맞은 놈이지 이럼
가끔 고딩때 친구들 만나면
우리학교 개교이래 임시소집일 입학식 연짝으로 맞은 애는 니가 유일할거라 놀림ㅋ
담날 걔네 엄마 찾아왔는데 어케 되었는진 모르겠네
저는 반장을(인기투표),선도반장도같이...
공부는 뒷전이고 놀기좋아하고
청백계주 주자로 뛸정도로
달리기도 잘했고
고기집하시던 부모님은 그냥 건강하게 자라라고 터치 안하시고,,,
이인구 이사람은 그런제가 자기반반장인게 쪽팔리다고 항상 못마땅했고 그러면서 선생들 다 데리고와 고기 공짜로 쳐먹고(자주왔음) 촌지는 촌지대로 빵빵하게 챙기고..
그런 어느날 하교시간에 종례 마치고 다가와 아주 나지막히 "넌 내가본사람중 가장 천박해"
이인구샘 혹시 보고있나요?
저 김태우입니다
유성에서 불고기집했던 아들내미 입니다
심심하면 엄마불러와라 그러셨죠?
우리엄니는 그당시 구두상품권30만원 매일같이 갖다바쳤구요 지금보면 그때30 만원이 어마무시하게 크네요 빌어먹을자식같으니라구...
천박하게자란 저는 지금 프랜차이즈 전국에200개가 넘는 본사총괄팀장 으로 일하고있습니다
천박하게 더 열심히 살아가보렵니다
이인구씨 돈 그만밝히시고 따뜻하게 교단에 서시길..
국어선생 강두완!!
길거리에서 내 만나지마소!!
아!!숙환으로 별세했을지도...
이름도 얼굴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초3학년 5학년 담임이엿는데
나한태 왜그랫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모르겟어요
아직도 생각나네요...
그별명 언제생겼는지도 몰겠음 입할했을때부터 그렇게 불리는거 보니 선배때부터 계속 대물림된듯
80년 90년 학창시절 어떻게 살아 남았나 몰라요.... 정말 많이 맞아는데....
군대에서도 그렇게는 안 맞아 봤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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