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40세
40세 당시 야당인 자유민주당 김준연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공화당 정권이 한일기본조약 협상 과정에서 1억 3000만 달러를 들여와 정치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공화당은 김준연 의원 구속 동의안을 상정했고, 이때 김대중이 필리버스터 의사 진행 발언에 나섰다. 그는 5시간 19분 동안 원고 없이, 한일 협정의 잘못된 점, 김준연 의원 구속의 부당성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고, 결국 구속 동의안 처리는 무산됐다. 연설 중간에 화장실에 다녀오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초선의원 시절의 김대중은 필리버스터를 했을 때 원고 한 장도 없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일장연설을 했었다. 주장의 근거와 구성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신변잡기식 잡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논리를 갖추어서 5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원고도 없이 즉석에서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라 거의 초인적인 능력에 가깝다.
노무현 40세
40세 당시 1989년 12월 31일, 제5공화국 청문회의 일환으로 열렸던 '5공특위 및 광주특위 연석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두환이 의원들의 질의와 항의에는 제대로 답변하지 않고 변명조의 일장 연설만 하다가 일방적으로 퇴장한 직후, 당시 통일민주당 소속 초선 노무현 의원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명패를 내던져버린 사건이다.
이의 있습니다가 그 당시였음.
이명박 40세
40세 되기전 이미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1965년(24세) 평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1968년(27세)에 과장, 1969년(28세)에 부장, 1971년(30세)에 이사, 1973년(32세)에 전무, 1974년(33세)에 부사장, 1977년(36세)에 대표이사 사장, 1988년(47세)에 회장에까지 올랐다.
이재명 40세
성남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2004년 정계 입문을 결심. 시민운동가 출신 변호사였던 그가 정계에 발을 들이기로 한 계기는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이다. 이 당시 이재명이 운동을 주도하고 시민 1만여 명이 발의해서 지방공사 성남의료원의 설립을 추진했으나 성남시정의 여당이던 한나라당이 병원 설립의 근거가 되는 의료원 설립 및 운영 조례안의 심의를 저지했다.
그러자 이재명은 분노한 나머지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터뜨렸고 일부 시민들은 성남시청에서 소요를 일으켰다. 이 일 때문에 이재명은 성남시내 한 교회의 지하 기도실에서 잠시 도피 생활을 했는데 이때 "정치를 해서 시민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실질적 정치참여는 41세부터 시작
이준석 40세
국민세금으로 국비유학 하버드 갔으며
하버드에서 같이 다녔던 마크 저커버그가 만든 페이스북 구경을 대한민국 최초로 했다함.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
주식자동투자프로그램 만들어서 혼자만? 쓰다가
26살때 박근혜 꼬득임에... 14년을 정치판에서 기웃거림...그래도 그 덕택에 여기까지 옮
물론 이명박, 박근혜, 유승민, 윤석열 관계 안 좋음.
이대로 죽을때까지 정치판 돌아다니면
김대중을 넘어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기 정치꾼임.
김대중은 30세때 정계 참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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