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침략에서 고려황제가 전라도 나주로 피난와서 나라를 정비했고, 거란을 결국 물리쳤음.
몽골과 전쟁에서도 삼별초와 전라도 군이 몽골군과 항복한 고려군을 밀어 경기도 까지 몰아냈어요..
몽골칸이 한강 이남을 포기하려고 하던 찬라에 공주와 합천이 몽고편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밀렸다고 함.
임진왜란은 다 알고..
병자호란때도 전라도 군이 청나라의 유명한 여덟개의 팔기군중 2개의 팔기군과 싸워 승리하고 최고 지휘관을 죽였죠.. 그러나 군수지원이 없어서 후퇴할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후기 세금과 병역 공역을 면제 받는 양반들이 많아지고 농민의 세금 부담이 커지자 동학혁명을 일으켜서 신분제 철폐와 세금제도와 탐관오리 척결하고 지방자치제와 유사한 집강을 설치했죠..
이후 이율곡의 노론 총수인 이완용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는 전라도를 3차에 거처 토벌을 했습니다.
일제는 임진왜란 패전 이유가 전라도 때문이라 보고 걸림돌을 제거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살을 햇다는 말도 있습니다.
손병희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전라도엔 어른 남자가 없었다고할 정도입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 만주로 도망가서 독립운동이 토대가 되어서
독립운동 하는 사람의50% 이상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재야 사학자의 연구도 있습니다.
내유외강형 지역임. 외적엔 강하고, 내부에선 항상 지기만함..
나주는 고려의 어향이고 전주는 조선의 어향..
두개의 왕조에서 어향으로 삼은 이유가 있겠지요
거란 침략에서 고려황제가 전라도 나주로 피난와서 나라를 정비했고, 거란을 결국 물리쳤음.
몽골과 전쟁에서도 삼별초와 전라도 군이 몽골군과 항복한 고려군을 밀어 경기도 까지 몰아냈어요..
몽골칸이 한강 이남을 포기하려고 하던 찬라에 공주와 합천이 몽고편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밀렸다고 함.
임진왜란은 다 알고..
병자호란때도 전라도 군이 청나라의 유명한 여덟개의 팔기군중 2개의 팔기군과 싸워 승리하고 최고 지휘관을 죽였죠.. 그러나 군수지원이 없어서 후퇴할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후기 세금과 병역 공역을 면제 받는 양반들이 많아지고 농민의 세금 부담이 커지자 동학혁명을 일으켜서 신분제 철폐와 세금제도와 탐관오리 척결하고 지방자치제와 유사한 집강을 설치했죠..
이후 이율곡의 노론 총수인 이완용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는 전라도를 3차에 거처 토벌을 했습니다.
일제는 임진왜란 패전 이유가 전라도 때문이라 보고 걸림돌을 제거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살을 햇다는 말도 있습니다.
손병희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전라도엔 어른 남자가 없었다고할 정도입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 만주로 도망가서 독립운동이 토대가 되어서
독립운동 하는 사람의50% 이상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재야 사학자의 연구도 있습니다.
내유외강형 지역임. 외적엔 강하고, 내부에선 항상 지기만함..
나주는 고려의 어향이고 전주는 조선의 어향..
두개의 왕조에서 어향으로 삼은 이유가 있겠지요
잘 알려지지 않은 남한 대토벌 작전입니다.
1909년 9월부터 10월말까지 2개월간 전라도 지역을 봉쇄하고, 독립운동 가족, 친지들을 다 토벌한
작전이죠. 일본제국육군 2개연대와 헌병대를 동원해서 차단 봉쇄 토벌을 두달동안 벌였었고, 독립군이 살던 동네는
다 불태워 없앴던 작전이죠. 여기서 살아남은 독립군들은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했었고, 나중에는 연해주까지 쫒겨갔죠.
작전명은 '동학잔당 토벌'과 '1차남한대토벌작전' 과 '2차남한대토벌작전'인데, 사령부를 영산강 주변에 설치하여 남한전체가 아닌 전라도만 집중적으로 학살을 했다고 합니다. 물런 호남의 노론 양반들중 일제의 학살에 적극 협력한자들이 많았고, 어른 남자가 없을 정도로 학살했다고합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인 손병희 선생께서는 호남이 가장 가열차게 항일운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일제의 잔혹한 학살로 인해서 성인 남자가 없어서 민족대표33인에 호남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한탄 했다고 합니다.
해방이후에도 부역하던 친일 세력의 호남에 대한 학살과 탄압은 계속되어 이승만은 여수와 순천, 제주4.3학살을 자행했고, 전두환과 친일 신군부는 5.18학살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라도를 약화시키기 위해서 호남에 속해있던 제주도는 분리시키고 논산 금산은 충청도로 분리시켰다고 합니다.
도꾼; 도 닦는 사람.
고조선부터 우리나라는 다 도꾼들이 지켰음.
승려도 있고 무당도 있고 유학자 선비도 있었음. 그들은 하늘울 우러러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다 가면 그뿐. 이라는 신념으로 살았음. 그래서 그분들은 작게는 남의 물건 탐해서 편하게 살면 하늘에 부끄러웠고 크게는 나라잃고 아무것도 안하면 하늘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서 그렇게 사셨음. 그런 도꾼들이 전라도에만 있었던 갓은 아님 경상도에도 계셨고 서울에도 충청도에도 황해도에도 강원도에도 계셨음. 문제는 그때도 경상도 전라도 선비들은 어울리지 못했음. 전라도 선비들이 대종교 만드니까 경상도 선비들도 부랴부랴 단군교 만든 일화도 있음.
몽골과 전쟁에서도 삼별초와 전라도 군이 몽골군과 항복한 고려군을 밀어 경기도 까지 몰아냈어요..
몽골칸이 한강 이남을 포기하려고 하던 찬라에 공주와 합천이 몽고편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밀렸다고 함.
임진왜란은 다 알고..
병자호란때도 전라도 군이 청나라의 유명한 여덟개의 팔기군중 2개의 팔기군과 싸워 승리하고 최고 지휘관을 죽였죠.. 그러나 군수지원이 없어서 후퇴할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후기 세금과 병역 공역을 면제 받는 양반들이 많아지고 농민의 세금 부담이 커지자 동학혁명을 일으켜서 신분제 철폐와 세금제도와 탐관오리 척결하고 지방자치제와 유사한 집강을 설치했죠..
이후 이율곡의 노론 총수인 이완용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는 전라도를 3차에 거처 토벌을 했습니다.
일제는 임진왜란 패전 이유가 전라도 때문이라 보고 걸림돌을 제거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살을 햇다는 말도 있습니다.
손병희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전라도엔 어른 남자가 없었다고할 정도입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 만주로 도망가서 독립운동이 토대가 되어서
독립운동 하는 사람의50% 이상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재야 사학자의 연구도 있습니다.
내유외강형 지역임. 외적엔 강하고, 내부에선 항상 지기만함..
나주는 고려의 어향이고 전주는 조선의 어향..
두개의 왕조에서 어향으로 삼은 이유가 있겠지요
어차피 지울 댓이지만
옛다 내가 답글 달아주마
몽골과 전쟁에서도 삼별초와 전라도 군이 몽골군과 항복한 고려군을 밀어 경기도 까지 몰아냈어요..
몽골칸이 한강 이남을 포기하려고 하던 찬라에 공주와 합천이 몽고편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밀렸다고 함.
임진왜란은 다 알고..
병자호란때도 전라도 군이 청나라의 유명한 여덟개의 팔기군중 2개의 팔기군과 싸워 승리하고 최고 지휘관을 죽였죠.. 그러나 군수지원이 없어서 후퇴할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후기 세금과 병역 공역을 면제 받는 양반들이 많아지고 농민의 세금 부담이 커지자 동학혁명을 일으켜서 신분제 철폐와 세금제도와 탐관오리 척결하고 지방자치제와 유사한 집강을 설치했죠..
이후 이율곡의 노론 총수인 이완용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는 전라도를 3차에 거처 토벌을 했습니다.
일제는 임진왜란 패전 이유가 전라도 때문이라 보고 걸림돌을 제거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살을 햇다는 말도 있습니다.
손병희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전라도엔 어른 남자가 없었다고할 정도입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 만주로 도망가서 독립운동이 토대가 되어서
독립운동 하는 사람의50% 이상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재야 사학자의 연구도 있습니다.
내유외강형 지역임. 외적엔 강하고, 내부에선 항상 지기만함..
나주는 고려의 어향이고 전주는 조선의 어향..
두개의 왕조에서 어향으로 삼은 이유가 있겠지요
1909년 9월부터 10월말까지 2개월간 전라도 지역을 봉쇄하고, 독립운동 가족, 친지들을 다 토벌한
작전이죠. 일본제국육군 2개연대와 헌병대를 동원해서 차단 봉쇄 토벌을 두달동안 벌였었고, 독립군이 살던 동네는
다 불태워 없앴던 작전이죠. 여기서 살아남은 독립군들은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했었고, 나중에는 연해주까지 쫒겨갔죠.
역사책에서도 감추고 거나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인 손병희 선생께서는 호남이 가장 가열차게 항일운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일제의 잔혹한 학살로 인해서 성인 남자가 없어서 민족대표33인에 호남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한탄 했다고 합니다.
해방이후에도 부역하던 친일 세력의 호남에 대한 학살과 탄압은 계속되어 이승만은 여수와 순천, 제주4.3학살을 자행했고, 전두환과 친일 신군부는 5.18학살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라도를 약화시키기 위해서 호남에 속해있던 제주도는 분리시키고 논산 금산은 충청도로 분리시켰다고 합니다.
고조선부터 우리나라는 다 도꾼들이 지켰음.
승려도 있고 무당도 있고 유학자 선비도 있었음. 그들은 하늘울 우러러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다 가면 그뿐. 이라는 신념으로 살았음. 그래서 그분들은 작게는 남의 물건 탐해서 편하게 살면 하늘에 부끄러웠고 크게는 나라잃고 아무것도 안하면 하늘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서 그렇게 사셨음. 그런 도꾼들이 전라도에만 있었던 갓은 아님 경상도에도 계셨고 서울에도 충청도에도 황해도에도 강원도에도 계셨음. 문제는 그때도 경상도 전라도 선비들은 어울리지 못했음. 전라도 선비들이 대종교 만드니까 경상도 선비들도 부랴부랴 단군교 만든 일화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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