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9년 숙종 아들 훗날 영조 연잉군은 25세에 첫아들 효장세자를 낳는다.
할아버지 숙종과 백부 경종이 효장세자를 그리 이뻐했다고 한다.
그러나 9살에 병에 걸려 요절한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영빈 이씨에게 42살 당시론 평균수명에 낳은 후계자이다.
3년뒤 동복 영빈 이씨가 막내딸 화완옹주를 낳는다.
영조의 이쁨을 독차지하던 화완옹주는 친오빠 사도세자를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세자비 혜경궁 홍씨 한중록에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미쳐가는 오빠 기행을 숨겨주고 덮어주고 때론 공범도 되고
들키면 아비 영조에게 오빠 변호도 해주고 혜경궁은 기록하고 있다.
때로 그 변호가 실패하면 오빠에게 무지막지한 구타를 당하고
칼을 빼들고 죽이겠다는 협박도 받았다고 한중록에 나온다.
오빠가 죽고 화완옹주는 어린 세손 정조에게 집착한다.
혜경궁 표현으로는 자신보다 더 어머니같이 굴었다 한다.
세손이 혼인하고 세손비를 구박하고 모함하여 정조와 멀어지게 하고
하다못해 세손 정조가 읽는 책까지도 간섭하고 시기했다고 한다.
화완옹주 남편이 죽고 자식이 없어 시댁 친척 11살 아래 정후겸을 양자로 들인다.
세손의 보좌진은 체제공, 정약용 등 남인들이고 정후겸은 서인 노론이다.
정후겸은 노론 영수 정조 작은 외할아버지 홍인환과 정조 계조모
정순왕후와 손잡고 정조와 남인들을 제거할 궁리만 한다.
친고모 입장에서 고민도 많았겠지만 화완옹주도 양아들 정후겸 편에 선다.
총애를 독차치한 화완옹주의 한마디 한마디가 영조를 움직일수 있었고
정조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일례로 화완옹주 남편과 영조 왕비 정성왕후가 죽은 시점이 같았다.
신하들의 만류에도 영조는 마누라 시신을 냅두고 딸의 사가에 조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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