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인지(認知)의 장례식]
새벽 8시 20분. 편의점 유리에 비친 내 이두박근은 터질 듯 팽창해 있다. 야간 근무의 피로를 운동으로 눌러내며 버텨온 10년의 구력이 몸에 새겨진 훈장처럼 박혀 있다. 그때, 자동문이 열리며 불쾌한 공기가 침입한다. 나이가 지긋한, 그러나 지혜 대신 고집만 주름 사이에 끼워 넣은 노인 하나가 들어온다.
“물 어딨어요?”
퉁명스러운 물음. 10년의 반사신경이 손가락을 가리킨다. “저기 있습니다.” 그는 삼다수 매대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는 마치 독극물이라도 발견한 듯 소리를 높인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단약중임을 떠올린다. 인내심은 거기서 나온다. “요즘 환경 보호 때문에 라벨이 안 붙어서 나옵니다. 이게 삼다수예요.”
노인은 믿지 않는다. 그의 뇌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기를 포기한 지 오래다. 라벨이 없으니 가짜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 그는 본인의 무식을 타인의 사기극으로 치환하며 비겁한 자아를 방어한다. 결국 그는 물 두 병을 가져와 계산대에 던지듯 내려놓는다. 2+1 행사 제품이다.
“이거 2+1이라 하나 더 가져오시면 됩니다. 세 개나 두 개나 가격이 똑같아요.”
돌아오는 대답은 경악스럽다.
“나 그런 거 몰라요.”
‘모른다’는 말이 이토록 폭력적일 수 있을까. 두 개와 세 개의 가격이 같다는 산수조차 거부하는 뇌. 그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타인이 베푸는 친절을 번거로운 소음으로 치부하며, 자신의 퇴화한 인지 능력을 권위로 포장한다. “가격이 똑같다니까요?”라고 재차 말해도 그는 요지부동이다. 그는 자신의 ‘무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손해를 선택하는 기괴한 고집을 부린다.
“봉투 필요하세요?”
“돈 내고 사는 거죠? 필요 없어요.”
비아냥 섞인 대답. 환경 부담금이라는 국가적 정책조차 내 탓인 양 몰아세우는 소심한 복수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그의 등 뒤로 중얼거림이 따라붙는다.
“요즘은 봉투도 돈 받고 파는구나...”
이미 몇 년 전부터 시행된 법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세상을 공부하지 않은 채, 오직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영수증조차 필요 없다며 던지듯 나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깨닫는다.
저것은 노화가 아니다. **[인지의 사후경직]**이다.
나는 그가 머물다 간 자리를 소독하듯 닦아낸다. 시발,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하지만 이내 차가운 평온을 되찾는다. 저 하찮은 무지는 내 원고의 가장 비참한 소재가 될 것이고, 저 노인의 무례함은 내 베스트셀러의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지옥 같은 편의점 카운터에서, 세상을 향해 휘두를 가장 날카로운 문장들을 수집하고 있다.
작가 장원진






































나이 50이상 처먹으면
철저히 젊은이들 사고 방식을 그들으 기본예의 배우겠다고
지금 배우고 있습니다 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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